1998년 어느 가을날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
말수가 없고,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이상하게 내 시선에 자꾸 들어온다.
그림을 그린다.
다음날 또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함께 여러 날 동안 그림을 그렸다.
수다스러운 여자아이들이
그날따라 주변에서 시끄럽다.
얼굴이 하얀 그 아이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게 바로 ‘나’라는 거다.
수다스러운 아이들은 마치
1층에서 10층을 마구 뛰어다니는
느낌처럼 소란스럽다.
그 소란 안에서
시간이 멈춘 내 심장은
‘쿵’
그날부터 온 신경이 그 아이를 향한다.
그것이 설렘이었을까?
좋아하는 마음이었을까?
그 소란스러움이 어떻게 잠잠해졌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저 계속해서 우리는 그림만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 어느 날 그림을 멈추게 되며
만날 수 없게 된다.
일 년쯤 지나 그 아이에게서
군대를 간다며 연락이 왔다.
어느 겨울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보았다.
그 아이는 나에게 무언가를 잔뜩 선물했는데,
그중에 책이 한 권 있었다.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군대를 갔고, 편지를 몇 번 주고받다 소식이 끊겼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소식을 묻는 메일을 여러 통 받게 된다.
서로가 하는 일들, 있는 곳을 알게 되었고
몇 번쯤 만난 기억이 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소식이 끊겼고
그 사이 메일을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마치 몽환적인 풍경화처럼
예뻤던 기억들이기에
나는 참 궁금하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서툴고 어찌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해 바라만 보다
끝내 만나지 못했을까?
아니면, 예쁜 삶의 한 자락이고 싶었을까?
다가오고 다가가다 멈춘
1998년 어느 가을
수다스러운 아이들이 전한
그 아이의 마음에
덜컥거린 내 마음의 느낌으로
그 아이를 기억한다.
어느 노래가사가 마음에 맺히며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풋풋한 마음이
문득 생각이 나 먼 기억들을
끄집어 내어본다.
예뻤던 그 한자락이
언제 어디서나
하늘호수에서 여행 같은 삶을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