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무늬 창문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카페나 레스토랑, 펍 등으로 오픈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지 오래이고, 그곳들이 모여 있는 곳이 **단길, **거리로 불리며 범위가 점차 확장되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전포 카페거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맛집을 찾아보았다. 인터넷으로 찾은 첫 번째 집은 그 거리의 범위가 확장되며 거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홍콩 느낌이 물씬 나는 중식당이었다. 음식 맛이 괜찮았지만 위치 때문이었을까? 손님이 우리 테이블뿐이었다. 1차를 가볍게 마무리하고 그 근처로 2차 장소를 찾았다.
마흔의 나이인 우리에게는 레트로스러운 공간이 눈에 담긴다. 물결무늬 유리는 어린 시절 우리들 집에 있었던 걸까? 아니면 지나가며 스쳐 만났을까? 80년대 감성을 마구 뿜어댔고 좁고 계단이 많은 건물 사이를 지나 자리를 잡으며, 어떤 음식과 분위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찾은 이 장소가 꽤 괜찮기를 기대했다.
우리가 찾은 와인바는 예스러움과 현대가 아주 적절히 조화로웠고, 무엇보다 와인에 곁들일 음식이 과하지 않고 적절히 조화로웠다. 와인글라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해 보고, 어둠이 내려앉는 색감과 젊음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나오는 길에 다시 만난 물결무늬 창문은 어둠이 깔리는 중에 은은한 빛을 내며 아까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친구와 예전에 많이 보던 창문이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감성에 젖었다. 옛 감성들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을 ‘업’시킨다.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이론으로 만나면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 흐름에 따른 디자인의 역할 변화 등을 연구하는 수업들을 중복해 만나게 되었다. 미디어와 디자인 수업에서 통신수단 파트를 연구하고 발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미래를 예측하는 부분에서 여러 가지 용어들을 공부하며 준비를 하였지만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쏟아지는 기술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에는 올드해진 마인드에 닫힌 흡수력 때문인지, 모든 게 안개에 가린 듯 불명확하게 닿았다. 하지만 과거의 통신수단 미디어들을 다시금 찾아 만나며 나는 한껏 들떴다. 공식적이고 아주 이성적으로 과제를 연구해야 하는 시간에 플러스 감성이 닿아버려 신나게 과거의 통신기기들을 양껏 과제물에 넣어버렸다. 지나고 나니 투머치였던 부분이었지만, 물결무늬 창문을 보며 느낀 따뜻함이 그때의 과제 준비시간과 맞닿으며, 옛 감성의 힘을 느꼈다. 이상한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과거, 그 시절 첫 만남에 설레었고 내 두 손에서 소중하게 여겨졌던 모든 물건들이 이제는 옛 감성으로 고스란히 설렘을 주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물건들의 실체는 사라졌지만 검색을 하면 이미지들을 찾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설렘은 충분했다.
그런데, 환경은 다르다. 세월의 크기만큼 변화한다. 예전에 다니던 골목길과 쓰임새가 없었던 공터, 낮고 낡은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 높고 번쩍거리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이곳이 그곳이 맞는 걸까?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오래된 만남의 장소가 그곳에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도를 한다. 오늘 20년 만에 내 걸음으로 예전의 그 장소에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지나다니긴 꽤 했으나, 두 발을 붙여보니 예전의 공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사진도 없으니 그저 내 기억에 의존해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보다 그마저 희미해 관두었다.
이 마음이 옛 건물의 감성을 살려 공간을 개조한 카페나 식당들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