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90년대 초반, 부모님들은 없는 형편에도 내 자식이 뒤쳐질세라 학원에 보냈다. 친구들은 학원에 빽빽하게 모여 수업을 들었다.
내가 다녔던 학원은 주산학원이었다. 웅변도 배울 수 있었고 (국, 영, 수, 과) 전 과목을 가르치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동네 작은 종합학원에서 우리는 오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그곳에서 배운 것들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억지로 억지로 기억을 찾으려 해도 생각나는 건 학원이 있었던 장소와 외형의 느낌이다.
기억력이 참 없는 나에겐 그것도 사실 잊혔어야 할 기억인데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왠지 특이하고 재밌었던 아이가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교실 한 칸 틈이 없이 빽빽하게 책상이 들어가 있었다. 학생수도 많았지만 학급수도 많았기 때문에 같은 반이 되지 않았음이 그럴 만도 했다.
그 아이는 여자 친구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두 손 모아 소중한 듯 가지고 온 초록색 사탕 바구니로 학원이 들썩거렸다.
그날은 바로 화이트데이였다.
“소곤소곤” “숙덕숙덕”
수업시간 내내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놓은 초록색 포장지에 한 알 한 알 감싸져 꽃바구니 모양으로 담겨 있던 사탕바구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뒤에서 그 사탕바구니를 보고 있자니, 엄청 소중한 뭔가를 떨어뜨릴까 염려하며 두 손에 꼭 쥐고 , 또 그 두 손은 계란을 잡은 듯 힘을 빼고 발걸음까지 조심조심 학원에 들어오던 그 아이 모습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
친구들의 관심은 내내 그 사탕 바구니의 주인이었다.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저렇게 숨김없이 당당하게 고백을 하고자 하다니,
저 친구는 왜 저렇게 용감하고 당당한 걸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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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들을 들썩이게 했던 그날,
학원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봄이 온듯한 따뜻한 기운에 기분이 좋았다.
어둠이 깔리기 전, 하늘에 짙은 초록색이 뿌려진 듯 해 고개를 들어 학원 건물 위 하늘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친다.
뒤돌아보니 내 눈앞이 초록빛이다.
10년 뒤 아이는 바나나맛 우유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