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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Dec 10. 2023

카림 라시드, 1,000원에 그의 작품을 사다.


10년 전, 초등학교(1학년)에 다니는 아이가 텀블러 물병을 학교에 두고 와 등굣길에 생수를 사서 보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 학교 가는 등굣길에 가장 가까이 파리바게트 빵집이 있었고, 혹시나 싶어 들어가 냉장고를 살피니 알약같이 생긴 생수병이 보였다. 그 당시 가격은 1,000원이었고 생수병을 집어 드니 단단한 느낌이 꽤 신뢰감을 주었다.


오, 파리바게트 생수병에 디자인이 담겼다는 생각을 하며 뚜껑을 여니 뚜껑이 물컵으로 사용 가능했다. 엄마의 입장에서 뚜껑이 바닥에 세워지면 아이가 쓰기에 훨씬 유용할 것 같다는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것은 디자인 형태와 콘셉트를 무너지게 할 것이니, 욕심이었다. 그 당시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의 삶을 몇 년째 이어가고 있었던 탓에 그 생수병이 유명디자이너의 작품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단지 마음 안에 디자인이 담긴 생수병의 경험으로 파리바게트 브랜드의 인지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었다. 그 뒤로도 아이들이 소풍을 가거나 가족 나들이를 갈 때 일부러 생수를 파리바게트에서 구입하곤 했다.


https://pin.it/5itD59a


그것은 1,000원의 가치보다 훨씬 큰 풍요로움을 주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엄마라는 이름 + 디자인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디자인 트렌드를 레퍼런스 하면서이다.  파리바게트 생수 브랜드 '오'(EAU)'는 세계 3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카림 라시드의 작품이었다.


나는 1,000원으로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살 수 있었던 거다. 그것도 몇병이나… 그는 어린 시절 보온병의 뚜껑으로 물을 먹었던 기억으로 이 병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그가 궁금해졌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은 꽤나 감성적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디자이너', '돈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디자인 ', '삶을 예술로 만든 디자이너', '일상이 명품이 되는 순간', ’ 디자인 민주주의’ 등은 그의 디자인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다.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1960년, 이집트 출생으로 캐나다의 오타와 칼턴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1993년, 뉴욕에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여러 나라의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디자인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LG, 현대카드, 한화, 파리바게트 등과 협업하여 디자인 활동을 하였으며, 이탈리아 나폴리의 지하철역 인테리어 디자인, 독일 도이치 은행과 아우디, LG 하우시스 등의 전시 디자인까지도 진행하며 조그만 소품부터 제품, 가구, 공간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좋은 디자인이란 소수가 아닌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실용적인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안에는 디자인은 우리의 일상이 특별하고 풍요롭게 만든다는 전제가 있다.


@Karim Rashid_ GARBO for Umbra, 1996


왠지 익숙한 이 쓰레기통은 카림라시드가 스스로 선정한 디자인 Best 3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나 생활용품점에서 본듯한 디자인이다.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 된 디자인으로 형태와 기능. 그리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바닥보다 상단이 더 넓기 때문에 쓰레기를 넣을 때도 쉬우며 손잡이가 있는 부분을 조금 더 위로 길게 만들어 손에 들었을 때 쓰레기가 손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또한 형태와 재료 덕분의 한 번의 사출만으로 제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Karim Rashid_ kenzoamour for kenzo, 2009


카림 라시드의 겐조 향수병 디자인의 콘셉트는 여행을 떠나고 싶거나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지는 역동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병을 타고 올라가는 듯한 곡선의 실루엣은 역동적이고 가벼운 느낌을 선사한다. 자연을 담은 유기적인 형태가 주는 감정적 언어이다.


@Karim Rashid_ 이자녹스 패키지, 2008


LG생활건강의 ‘이자녹스 셀리언스 라인’은 현재는 단종됐지만 단일 브랜드로 2년간 100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 경이적인 제품이다.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하여 2007년 출시된 ‘이자녹스 셀리언스 라인’은 패키지디자인도 패션의 일부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Karim Rashid_ 한화로고, 2006


2007년,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화의 CI가 탄생했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한화의 의지를 반영한 ‘트라이서클’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트라이서클은 변화와 혁신을 통한 진화와 성장해 나가는 3개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3개의 원은 고객, 사회, 인류의 내일을 키우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하는 한화의 의지를 담고 있다. 카림 라시드는 ‘제조/건설, 금융, 서비스/레저라는 한화의 큰 사업 군을 하나로 표현하면서 소비자 친화적인 21세기형 CI를 디자인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전하며 어려움은 있었지만 변화와 쇄신을 원하는 한화의 긍정적인 기운을 느꼈기 때문에, 역동성과 부드러움을 모두 전달할 수 있는 CI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다음은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제품 영역에서의 그의 디자인이다.

@Karim Rashid_ kouplebathtub for saturn bath, 2008
@Karim Rashid_ juga chair for muma, 2012
@Karim Rashid_ heartbeat for nienkamper, 2019
@Karim Rashid_ kink lamp for fontana arte, 2015
@Karim Rashid_ flo bidet for 코웨이, 2019
@Karim Rashid_ 현대카드 블랙, 2003


그의 작품들에서는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유기적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핑크, 그린과 같은 원색적인 컬러를 활용해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을 디자인하였으며, 소수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대중에게 통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카림라시드는 “직선은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없다. 직선인 상품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만들기 쉽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험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오직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디자인된 거다. “ 라며 유기적 디자인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디자인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나타 내면서 대량생산용 제품인지, 하나의 아름다운 오브제인지 모호하게 디자인해 와인을 다 마셔도 병을 버리기 싫은 디자인을 선호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좋은 디자인이란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주고, 그러면서도 비싸거나 한정돼서도 안 되는, 소수보다는 대중에 가까워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그의 디자인을 만났을 때 형태에서 오는 감정적 언어들이 마음에 닿아 감성디자인 쪽에 가깝게 느꼈졌다. 그의 철학을 알아가며 모두가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 영역에서의 고민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 그와 늘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특별한 대중적인 제품이 마음에 들어온다면 검색해 보자. 그것이 카림 라시드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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