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일이란
일 [표준국어대사전]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
“선생님은 일을 하러 학교로 가시나요? “
그 질문을 나에게 하고 답을 찾기 위해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학교로 가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며, 출근길의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나는 학교의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쓴다. 그것은 무엇을 이루기 위함일까? 그것으로 인해 나는 적절한 대가를 받고 있을까?
며칠 동안 나의 일에 대한 생각을 했다. 학교 안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업무를 할 때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어쩌면 강박일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정의가 되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최인아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아직 완독을 하지 못했기에 앞서 나온 일의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나의 일과 연결되며 나만의 정의를 찾고 싶었다.
계절은 봄인데, 학교 안은 공기도, 바람도 차가웠다. 겨울 코트를 계속해서 꺼내게 하는 날씨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땅은 알고 있나 보다. 봄이 이미 와 있음을..., 동백꽃이 빽빽하게 피어 동백 나뭇잎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것 마냥 꽃반, 잎반의 모습으로 시선을 끌었다. 내 시선에 달콤함이 한 스푼 담겨 자연스레 광대는 올라가고 눈빛은 반짝였다.
어느새 아이들의 하교시간이다.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알게 된다. 나에게 일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했을 때 무엇을 이룸이 느껴졌다. 수업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활동하고, 무언가를 배워감이 느껴질 때 그 이룸은 더 채워졌다. 아이들과의 대화와 관계, 차곡차곡 쌓임이 느껴지는 성장의 지점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뢰와 연결, 그것이 교사의 일 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일'을 하러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하루 안에 '일'은 분명 기저에 깔려 있지만, 구름처럼 폭신폭신하고 뭉게뭉게 한 설레는 이야기들을 만나러 나는 학교에 간다. 그것이 내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