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마음이란 것이 흙으로 물레 성형을 하여 형태를 만들듯 만져지고 보이는 어떤 것이라면 어떨까? 지금까지 살아오며 다양한 형태와 다채로운 색의 마음들이 어느 날은 기쁘게, 어느 날은 숨 쉬는 것조차 싫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신체의 컨디션까지 망가트리니, 마음이란 녀석은 참 대단한 것처럼 느껴진다.
화가 나는 건, 그 마음이란 녀석은 내 마음대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부풀어 오른 마음의 형태를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끙끙거렸다. 몇 달 전과는 사뭇 다른 색을 뿜어대는 마음을 다독여보기도 하고 모른 척도 해보았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그인 것을.
망가져 있던 나에게 던지는 그의 말들이 나를 원래 상태로 회복시켰고, 회복기간이 지나자 이 마음이란 녀석이 자기 마음대로 들썩거렸다. 그의 예쁜 말들은 마치 솜사탕 기계에서 나오는 바람과도 같았다. 바람에 날리며 솜사탕이 커지듯, 달콤하고 가벼운 마음이 부풀어 내 몸 밖으로 새어 나가자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이유가 그의 언어 때문인 것을.
그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나를 앎에는 부족하고 약하고 단점 투성이인 모습은 없다. 언제나 그랬다. 잘하고 있다고, 잘할 거라고, 충분하다고, 더할 나위 없다고, 이대로만 하면 된다고, 최고라고, 그냥 좋다는 이야기들을 매우 적재적소에 자연스럽게 예쁜 언어로 전한다. 그때처럼 내 삶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빛나버린 마음을 꾹꾹 눌러 접기로 했다. 꾹꾹 눌러 접으니 빛이 가려진 듯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들을 싹둑 자르면서 주변이 맑아지며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설레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나: 현이야, 요즘 나 참 좋아.
현이: 와! 서연화! 연화야!
나: 응? 응?
현이: 너! 구연 우지? 나는 못 속여
나: …. (들켰다.)
현이: 나는 무조건 응원해. 진짜!
나: 응, 현이야. 난 좋다고 한마디 했는데.. 너 지금 엄청 흥분했어. 진정 진정
현이: 응원! 연화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가자
나: 뭐야? 너 왜 다 알고 있는 거야? 내 맘에 들어왔다 간 거야?
현이: 왜 내가 모르겠어? 네 맘 다 알지. 솔직히 구연우랑 연락하고 지낸대서 난 걱정 푹 놓았잖아. 연우가 너한테 어떤 애였냐? 그날 네 얘기 듣고 진짜 두발 쭉 펴고 잤다니까.
나: 근데 있지. 난 내 맘을 안 들키고 싶어. 지금이 좋아. 더 깊어지진 않을래.
현이: 그 마음도 알 것 같아.
현이와 계속 마음 이야기를 했다. 내 마음은 이렇다. 네 마음을 알 것 같다. 내 마음에 들어와 있는 양 현이의 말들은 나를 뜨끔하게, 그리고 후련하게도 했다. 타인을 통해 들은 내 마음은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림에 몰입하기로 했다. 연우를 향한 마음은 이 정도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선택이었다. 현이와의 전화를 끊고 작업용 책상으로 갔다. 창가에 책상 하나를 옮겼다. 많이 무겁지도 않은 책상을 어찌나 요란스럽고 우스꽝스럽게 옮겼는지, 그땐 이 공간에 혼자 있음이 서글펐다. 그래서 힘껏 용을 쓰며 책상을 창가로 가져다 두었다. 주방과 거실이 연결되는 지점에 길게 창이 있다. 서쪽으로 나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은 위로다. 그 햇살이 커튼 너머 내 그림에 닿을 때가 참 좋다.
수채화의 매력은 첫 붓질이 완전히 마른 뒤 겹쳐 색이 스며들 때이다. 겹쳐진 부분과 처음 칠해진 부분 색의 차이가 오묘하게 날 때, 그 경계의 색이 어렴풋이 진한 느낌이 나에겐 끌림이다. 그것은 물의 양에 의한 스며듦의 시간차이다. 스며드는 것, 누군가에게 스며드는 것,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며 ‘스며든다’는 생각을 했다. 구도가 어긋나 있지만 시선은 불편하지 않은 건물의 원금법은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그것이 정답인 듯 느껴진다. 장면의 시간대는 해가 나지막해진 오후 시간쯤 될 것이다. 캔버스 위로 마치 햇살이 내려앉은 듯 느껴진다. 낯선 길에 맞닥뜨려 어딘가를 헤매는 기분도 든다.
키리코 그림의 열쇠는 ‘형이상’이다.
형체가 없어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고, 오로지 직관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초자연적이고 관념적인 것.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마음이 이것이지 않을까?
소녀의 굴렁쇠가 굴러가는지, 멈춰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득한 원근법과 빛이 담은 정적은 숨이 막히기도 하고 호흡을 뻥 뚫리게도 한다. 빛과 그림자는 긴장과 불안, 혹은 안정감을 준다. 건물 뒤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위협일지, 안도일지 그것들은 우리 마음이 알려준다.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주>는 감추어져 있는 장면과 슬며시 드러낸 부분들로 그것이 현실일지, 현실 너머의 세계일지를 질문하고 있다.
강렬한 태양, 오후의 풍경, 건물의 비밀, 긴 그림자, 양지와 음지의 강렬함, 지나가는 사람, 굴렁쇠 소녀
어두운 그림자로 들어가는 걸까, 그림자에서 나온 걸까? 키리코의 작품은 마음에서 해석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