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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4. 2024

다시

다시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너무 뻔한 질문인가? 질문의 이유는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탈출하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지금의 시간이 힘들거나, 숨 쉬는 것이 답답해져 인공호흡기가 다급하게 필요함을 느낄 때가 있다. 괜히 현재를 트집 잡고, 붙잡을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한다. 그래서 나는 "그랬다면... 어땠을까?"의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닌 듯해 왠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삶에 예기치 못한 폭탄이 떨어지던 날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삶은 매 순간 선택이다.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니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니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무언가는 패스하자. 친구 역시 내 선택으로만 만들 수 없는 인연이니, 그것도 패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의 결혼, 전 남편과 사랑을 했긴 했다. 무엇이 이끌리게 했는지 그 남자라면 아직 살아보지 못한 무수한 내 삶들을 함께 해도 괜찮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평생 함께 살아갈 문제는 정말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문제다. 미래를 모른다는 가정하에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이 남자와의 결혼을 또 선택했을까? 그 질문을 나에게 하고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아무래도 심심한가 보다. 괜히 현재를 트집 잡고 과거에 집착하며 쓸모없는 생각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연우는 내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이렇게 세월에 끌려 겨우 하루를 보내는 내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마음이 계속해서 다시 과거를 붙잡으려 해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때도 일상청소는 매일 했다. 그날 이후 대청소는 처음이었다. 집은 흰색에 가까운 회색 벽돌집이다. 3년 전 내 의지로 전 남편을 설득해 아담한 주택을 지은 것이다. 어디 하나라도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흰색이 가까운 컬러들이 햇빛을 머금어 눈으로 뿌리는 색의 온도가 참 좋다. 그것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집의 안과 밖이 하양에 가까운 컬러 들이다. 쿠션부터 앞치마, 심지어 내가 즐겨 신는 덧신까지 모두 하양이다. 초록의 잎들은 포인트다. 잎들의 크기와 색감, 질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기에 여러 종류를 내 마음에 드는 곳에 배치하여 심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왠지 마음도 깨끗하고 맑아지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 집에서 외로운 날들이 많았었다. 전 남편은 잦은 출장, 모임을 이야기했고, 거짓의 핑곗거리는 나를 속이기에 딱 좋았다. 비도덕적임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는 그것이 무뎌진 정당 함이었으니 그것이 나에게는 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그를 평생 함께 할 상대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평생 함께 할 상대를 깊은 생각 없이 선택한 게 아닐까? 그 선택은 다시 되돌리기 힘든 것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많은 것을 살펴봤어야 했다. 결혼은 방법과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돌린다는 것에는 큰 상처가 있어야 하니, 그것은 누구나 바라지 않는 일이다. 결혼을 선택하며 ‘다시’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혼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어떤 결정을 내린 뒤,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저 다시 돌아간다면 십 년이라는 시간보다 조금 더 빠르게 상황파악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나의 미련함을 탓해본다.


두 번째는 나의 ‘다시’는 벚꽃이 흩날리던 그날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10년 전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혼자의 힘으로 극복했어야 했다. 그의 언어들이 의지가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 전화에 설레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계를 보니 9시다. 당연한 듯 울리는 전화진동소리에 오늘은 깜짝 놀랐다.


그: 뭐 하고 있었어?

나: 그냥… 이런저런 생각

그: 내 생각?

나: ……

그: 어, 내 생각했구나. 하하 , 그림은 그렸어?

나: 아니, 오늘은 오랜만에 대청소

그: 우리 연화가 마음이 좀 그랬나?

나: 다시… 가 떠올라서 좀 그랬어.

그: 다시?

나: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거 있잖아. 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를 붙잡았을까? 나는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뭐 그런 것들. 또다시 돌아간다면 그날 너한테 전화를 하지 않는 건데.

그: 그건 좀 섭섭한데….

나: 너한테 피해를 주는 거 같아서.. 마음 가는 대로 두고 싶은데 내 상황이나 우리 나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하네.


진심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배려하지 않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의지했다고, 벚꽃은 핑계였고 나를 진실되게 사랑해 주었던 네가 생각났었다고, 네가 그리웠다고..., 그런데 그날 전화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에게 위로받는 시간들이 미안했다. 무너지고 망가진 나를 그에게 던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괜한 책임을 주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가 여전히 나를 최고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나를 빛나게 할 줄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다. 앞선 십 년이 란 세월이 없었던 시간들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이건 멈추어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며 그 멈춤을 하려고 꺼낸 이야기가.. '다시... 돌아간다면'이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가 던진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좋아해


언제나 그랬다. 일에서도 신중하고, 대인관계에서도 늘 조심스러운 그는 나에게는 대범했다. 다시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머릿속이 하얘져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십 년 전으로 돌아가려나보다.


나의 ‘다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 <인생의 춤>은 마치 뭉크의 일생의 일기와도 같다. 그림에는 다시 돌아간다면의 질문도 담겨 있다.


흰색 드레스의 여인은 태어나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앞쪽에 피어있는 꽃에서도 에너지가 느껴진다. 무표정한 얼굴의 검은색 드레스 여인은 현재를 부정하고 과거에 집착하며 '다시....'를 되뇌고 있는 듯 보인다. 뒤편의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쩐지 괴기스럽다. 그것은 둥근달을 통해 빛이 드리워진 바다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산하고 불안한 느낌은 중앙에서 춤을 추는 듯한 커플의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불안한 듯 쓸쓸해 보인다. 좌우로 배치한 여인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어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다시 돌아간다면 그 지점은 어디이길 원할까?


뭉크의 그림은 마치 소설과도 같다. 색을 통해 보았을 때, 흰색 드레스 여인에서는 순결, 젊음, 순수함, 천진함이 느껴진다. 검은색 드레스 여인에서는 슬픔과 질투, 죽음, 불안, 불안, 분노, 억압의 감정이 느껴진다. 붉은색 드레스는 사랑, 기쁨, 흥분, 즐거움의 감정이 색에는 담겨 있지만 여인의 표정을 통해 빨간색의 다른 상징인 금지와 위험, 긴장의 감정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각 여인들에게 상징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흰색 드레스 여인은 젊음과 순진한 인생의 시작, 가운데는 사랑에 빠진 여인, 검은 드레스 여인은 인생의 끝자락에 선 외로움을 나타낸다. 화면 속 장면은 삶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삶의 이야기들이 그려진 것일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생의 장면이 담긴 걸까?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지금에 머물러 10년 전 그를 내 삶으로 다시 데리고 오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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