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디자인의 이해 청강생입니다.
문화와 문명의 공통점, 유사점, 차이점을 논하시오.
첫 Report의 주제이다.
지금부터는 <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문화는 (1)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전체 (2) 정신적이고 지적인 발전과정 (3) 사람들이 살아가며 따르는 가치, 관습, 신념, 상징적 실천들 (4) 총체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문화를 예술이고 지적인 의미로 보면 당연히 혁신이 포함되지만, 삶의 방식으로서 문화는 일반적으로
습관의 문제다.
문화가 새로운 협주곡을 작곡하거나 새로운 저널을 출판하는 일을 가리킬 수 있지만, 더 넓은 의미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문화적 사건이라는 발상은
약간 자기모순적인 느낌을 풍긴다.
그럼에도 그런 일들은 실제로 당연히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당신이 전에 했던 일, 당신의 조상들이 수백만 번도 넘게 해왔던 일을 가리킨다. 당신의 행위가 타당하려면 조상들의 행위와 연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는 아방가르드가 될 수 있으나, 생활 방식으로서 문화는 대게 관습의 문제다.
종종 예술적인 문화에는 소수의 것으로서, 당연히
접근이 쉽지 않은 작품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발전과정으로서의 문화는 더 골고루 많은
사람이 접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예술적 문화와 차이를 보인다.
지금 교양 없는 사람들이 나중에 교양을 쌓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문화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강아지나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는 독감처럼 즉각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culture의 어원은 cultivate(경작하다)인데, 이는 경작하기 전, 즉 인간의 손이 닿기 전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와 반대 의미다. 그런 점에서 문화는 노력을 통해 경작된 인간의 정신으로서의 ’ 교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우편함은 문명의 일부고, 우편함을 무슨 색으로 칠하느냐는 (예컨대 아일랜드 우편함은 녹색이다) 문화의 문제다. 현대 사회에는 신호등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적색이 ’ 서시오‘를, 녹색이 ’ 가시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게 문화는 ’ 무엇을 하는가 ‘보다 ’어떻게 하는가 ‘와 더 관련이 있다.
문화는 스타일, 테크닉, 기존 절차의 집합체를 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을 경영하는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르노의 문화와 폭스바겐의 문화를 대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문화 개념을 탄생시킨 조력자 역할을 한 것은 산업문명이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 문화‘라는
단어는 광범위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 일상의 경험이 삭막하고 빈곤해질수록, 그와 대조적인 방식으로 문화는 이상적인 것으로 홍보되었다.
문명이 더 지독스럽게 물질적으로 변해갈수록,
문화는 더 고귀하고 현실 초월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가 낭만주의적 개념이라면, 문명은 계몽주의의 언어에 속한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소설책이 필요하고 소설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제지공장과 인쇄기가 필요하다. 문명은 문화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교회와 국가의 구성에
대하여>에서 도덕적 안녕이라는 의미에서 문화를
언급함을 써 문화와 문명 중 문화가 더 근본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사실 문화는 자신이 일정한 정신적
기반을 대여해주려 애쓰는 대상인 바로 그 문명이
만들어 낸 피조물이다.
문화는 가치의 문제고, 문명은 사실의 문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각 용어는 규범적이고 기술적인 방식 모두에서 공히 사용될 수 있다.
19세기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문화와 문명 모두를 ”지식, 믿음, 예술, 도덕, 법,
관습을 포함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이 성취해낸 모든 역량과 습속을 포함하는 복잡한 총체“라고 정의, 그는 기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명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함께 묶는다. 문명은 우리 주위에 규모가 큰 건물들, 독창적인
시설들, 정교한 조직들이 많이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도덕적 안녕을 증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암시한다.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에서 모든
문화가 궁극적으로는 문명으로 굳어지는 쪽으로
향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기적인 것에서 기계적인 것으로 몰락을 제시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문명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쓴다. <물리적 편리의 증가, 지식의 발전과 보급, 미신의 쇠퇴, 상호교류의 용이함, 유연해진 예의, 전쟁 및 개인적 갈등의 감소, 강자의 약자 폭압이 점진적으로 누구러짐, 다수의 협업으로 세계 도처에서 성취되는 위대한 작업들(...) >
밀은 문명의 부정적인 측면을 열거, 특히 문명이
만들어내는 부자와 빈자 사이의 중대한 불평등을
다룬다. 밀에게 문명은 도덕적, 물질적, 사회적, 정치적, 지성적인 것 전체를 포괄하며 그런 의미에서
사실과 가치 모두를 아우른다. 문명은 물질적으로
발전된, 일반적으로는 도시에 기반을 둔 삶의 방식을 의미하며 동시에 품격과 세심함을 갖추고 어떠한
일을 하는 것을 암시한다. ’
‘문화‘라는 단어는 애초에는 ’ 문명‘과 동의어였고
한동안은 그렇게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문명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가치들의 집합을
의미하게 되었다.
문명이 그렇듯 문화도 물질적 제도들을 포함하나
일차적으로는 정신적 현상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문화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활동들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문명에 대해서는 많은 작가가 그것이 가치의 문제라기보다 사실의 문제라고 여겼다. ’ 문명‘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을 가리킨다. 문명은 자연에서 시작해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거의 모든 것에서 인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지점까지 가는 것을 포함한다.
'문화'와 '문명' 두 개념 모두 어느 정도의 범위로 바라보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Report를 작성하여 제출한 뒤 내 안에 질문이 생겼다. 작성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는데,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맥락으로 "문화가 먼저일까? 문명이 먼저일까?" 였다.
고민하고 남편과 생각을 나누다가
친구들과도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도 친구들은 진지하게 답해준다. 우린 친구니까, 비록 타 지역에 있고, 코로나로 몇 년째 만나지 못하는 사이버 친구지만 매일 나누는 일상은 소중하다. 6명의 친구들과의 대화 내용이
철학적이고 결론이 마음에 아주 닿았다.
"문화가 먼저일까?" "문명이 먼저일까?" ,
"동시?"
"문화"
“문명"
"나도 문명 먼저"
"먹고살만해야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나오고 하지 않을까?"
"문화를 어느 정도까지 정의의 범주에 넣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문화가 문명을 발달시킬 것도 같고, 문명이 생기니 문화가 생기는 것도 같고"
"문명이 포괄하는 개념으로? 문화는 문명의 개체인가?"
"문화는 습관 같은 것도 포함되잖아"
"동시다 동시"
"글을 몰라도 습관이나 뭔가 관습 같은 게 있었을 것도 같고 그러다 답답해서 글을 만들고?"
"그러고 보니 한낱 인간의 존재는 참 아무것도 아닌 것 같네"
"학자마다 다르더라고, 중요한 건 어떤 범주까지를 문화나 문명으로 보느냐인 것도 같고"
"문화가 모여 문명을 이룬다는 측면에서 보면 문화가 먼저인 것도 같고"
"뭐가 먼저인지 답은 없다가 정답이다"
"뭐든 답은 없다, 전부다"
답은 없다. 세상의 전부가
아주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갑자기 생긴 나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사유의
결론은
“답은 없다."
전부다
시원하고도 명쾌한
너무 마음에 드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