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순간들이 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토록 흔들렸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시간들.
이상하게도
이해는 늘 가장 마지막에 온다.
설명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해진다.
세월이 흐르고 난 어느 날,
예전에는 차갑게만 느껴졌던 사람이
사실은 표현이 서툴렀던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도 하고,
그때 나를 아프게 했던 말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 어딘가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렸던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삶을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당시에는 너무 가까워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그때는 버티기에 바빠
느끼지도 못했던 감정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오래 붙잡고 살아가지만
사실 그 질문의 답은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른다.
결국, 지나온 날들의 의미는
돌아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급하게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해는 늦지만,
늦는 만큼
더 깊어진다.
TIP.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열심히 이해하는 방법
하루가 끝나고 마음이 묘하게 무거운 날, 그 이유를 분석하려 들기보다 그저 “오늘 나는 서운했다”, “오늘 나는 질투가 났다”, “오늘 나는 외로웠다”라고 적어보는 일. 그 단순한 문장이 나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출발선이 된다. 이해는 판단이 멈출 때 시작된다.
“그래도 그럴 수 있지”, “그럴 만한 상황이었잖아” 같은 설명은 때로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진짜 이해와는 다르다. 이해는 해명보다 인정에 가깝다. “그래, 나는 그때 많이 두려웠구나.” “나는 그때 외로웠구나.” 이유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해도 괜찮다. 감정은 언제나 논리보다 먼저 존재한다. 나를 이해한다는 건, 잘 설명된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