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민족 국가 출신 토종 한국인인 나는 밥오...
아침부터 도서관 가려고 일찍 일어났다. 도서관 갈 준비 = 도시락 가방 한 가득.
자리를 잘못 예약했다. 난 이런 독서실 칸막이에 쥐약인데 silent room 이라더니 이 방.
그래서 그냥 내 맘대로 앉음.. 9-13시 타임에는 사람이 많이 없더라.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넴..ㅎ
대신 14-16시 타임엔 사람이 꽤 찬다. 사르트르의 <상상력>이 리딩 리스트에 있어 읽는 중인데 정말 너무 어렵다. 흑 철학 그 자체인데 영어로 하는 거 정말 후.. ㅎ^^ 게다가 <상상력>은 그의 주요 서적도 아니라 정보도 거의 없다. 한국어 E-book 도 나와있는 게 없길래 포기할까 하다가 글이 너무 어려워 결국 부모님께 부탁했다.
공부하는데 코스메이트 Bberttam에게 너 본 것 같아 1시에 같이 점심 먹을래? 하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배고파서 결국 벌써 12시에 간식 가방 개봉. ^^
버탐은 덴마크인 남자애인데 목소리가 정말 정말 작다. 나도 목소리 작은 걸로는 한 자리하는데 얘는 정말..ㅜ.. 너무 안 들리는데 크게 해 달라 하면 무례할까 봐 약간 20 퍼만 알아들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더니 당연 계속 뚝뚝 끊기고 서로 딴말함.. 버탐도 약간 계속 할 말 잃어가는 게 보였다. ㅋㅋㅋ
그 와중에 작가나 전시 얘기하다가 얘 교수님이 한국인이셨다는 거다. 덴마크에 입양된 분이셔서 무슨 아일랜드에 관한 작업을 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제이 진 카이젠 작가이고 제주도 작업.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이기도 했고 유명하신 분인데 덴마크에서 교수를 하시는구나 싶어 놀랬다.
그래도 갤러리랑 작가도 몇 명 추천받고 주문한 케밥도 너무 맛있었다. 버탐도 화수분처럼 아는 작가와 작품이 계속 나왔다. 숨어있는 작은 갤러리들을 많이 알려줘서 결국엔 어찌 돼었건 대화가 유익했다. 이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내 부족함에 늘 속상하다. 나는 왜 그 작품을 모를까. 세상 모든 작품을 다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난 한국 작가나 한국 작품 많이 알잖아 하는 게 너무 옹졸하게 느껴진다.
오후에는 니코의 분노의 챗을 보고 학과 Staff 진과 교수님들이 참여하는 문제 조정(?) 시간에 나도 참여했다.
학생들의 불만이나 의견들을 수렴해주고자 모인 건데 난 저 오른쪽 2번째 교수님께서 선글라스 끼고 있는 게 그냥 웃겼다. + 맘에 안 든다는 표정과 자세는 덤. 1번째 줄 2번째 학생도 자세 보면 학교 세상 맘에 안 듦. 마지막 줄 2번째 니코도 뭐 안될 때마다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채팅 로봇이랑 말하는 거 너무 짜증 난다고..ㅋㅋㅋ
그러다가 저거 보니 니코가 학교에 있길래, 나도 학교인데 만날래? 하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아무래도 버탐이랑 둘이 맥주 한 잔 하기로 했다고. 나도 나중에 합류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갔다.
프렌즈 보면서 켈로그로 저녁 먹고
Depford에 있는 약속 장소인 Bar로.
니코는 내 옆에서 담배를 계속 말아 피는데 너무 바로 옆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펴서 힘들었다.
그래도 오전과 달리 니코의 영어는 매우 클리어해서 discussion을 함께 꽤 많이 했다.
학사까지 런던에서 했던 니코 덕분에 영국의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학생들은 어떤 지 이것저것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우리 학과 수업 중에 Ocean's Archive라는 게 있었는데 바다 생물체 아카이브 같은 건가 했던가 했던 내 추측이 틀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다로 인해 파생되거나 바다를 거치는 모든 사회적 문제 노예무역, 이민자 등을 다루는 수업이라고 한다. 한편 영국도 이런데 독일은 얼마나 이런 교육을 많이 시킬까 싶기도 하다. 이런 모든 사회적이고 아카데믹한 부분들은 확실히 석사생으로 왔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 같다. 리옹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는 캐치 못했던 부분들이다. 늘 만남이 끝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리딩 그룹 아이들. ㅎㅜㅜ
I would love to discuss together regarding Lacan proposes! 라깡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은 아이들.
공부하러 갔으면서 왜 이렇게 찡찡되냐면 우리 수업 목록 ..ㅎ
사실 큐레이팅으로 갈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굳이 학문적으로 깊고 풍부해지고 싶어 이론을 택했다.
그래도 현대미술이론 학과가 이렇게까지 사회학 경제학 철학을 그 각각의 학과만큼이나 깊게 다룰 줄은 몰랐지만. 게다가 사실 미술은 거의 어디에도 없다. 뭐 그래도 이런 내용을 알 필요는 물론 있다. 현대미술 작가들이 다루는 주제가 이러니까.
다만, 학사를 하고 바로 석사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중간에 몇 년 일하다 보니 머리가 너무 굳었다. 물론 학사 때 미학을 배웠지만 겨우 학사가 뭘 알아....
그때 배운 건 다 날아갔고 어렴풋이 인상만 남아있다.
오늘 저녁은 플랫 메이트인 필립포와 샨나와 피자를 배달해 먹기로 했었다.
그리고 다 먹음.
오늘 저녁 대화는 정말 유익했다. 무엇보다 덕분에 또다시 내 부족함을 현저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기억나는 것만 나열하자면, 내가 무심코 종종 얘기하는 Asian 은 어쩌고 하는 말들에는 사실 중국 한국 일본인만 속했어서,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Middle East인 중동과 인도 모두를 포함해 이해하고 얘기를 듣던 필립포와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북아시아만을 아시안이라고 자연스레 가정하고 얘길 했다는 게 꽤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무슨 중화사상도 아니고. 근데 정말 한국 내에서 우리끼리 아시안이 어쩌고 저쩌고 할 때는 늘 다들 동북아시아로 한정하고 논의 했던 것 같다.
게다가 흑인 차별 뭐 다 알겠는데 아시안이 받는 인종차별은 아무도 신경 안 쓴다니까 racism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었다고. 이탈리아인도 갱스터 아니면 여자 홀리는 바람둥이, 아니면 피자집 사장으로 나온단다. 하긴 흑인 아시안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나 스테레오 타입이 다 있고 그게 곧 인종차별인 것 같다. Black lives matter 도 자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꼭 흑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백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고.
"백인이니까 흑인에 대해 폭력을 행사했다"라는.
사실 그 남자 본인의 인성 문제인데, 그 남자를 백인 대표로 삼고 일반화시키고 하는 게 결국 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거다. 얼마나 세상에 인종 불문하고 싸이코나 나쁜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이 '백인이기에' '흑인을' 이 될 수 있냐며. protest를 제대로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한 개별 사람과의 이슈를 기점으로 증오심을 가져야 할 게 아니라 특정 정책이나 구조에 대해 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버스를 같이 타지도 못했던 시기에, 그런 불합리함에 대해 마틴 루터 킹이 나서고 인권 운동이 일어났던 것처럼.
African-American에 대한 얘기도 했다. 흑인에 대한 대체 용어로 그게 과연 맞는 걸까.
영국에 사는 흑인에게 African-British라고 안 하지 않냐고. 피부 색깔로 대륙을 판단하고 대륙+국적으로 구속시키고 부르는 게 영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실은 아프리카는 심지어 백인이 꽤 많이 사는 대륙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도 저 용어 속에는 배제되어 있다.
이민자에 관해서도 내가 한국인들이 여행 오면 중동 사람 또는 흑인에게 위협을 많이 받는다. 그런 부분을 예상하고 한국은 이민자가 오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넌 걔네가 이민자 일 것 같냐고. 페컴 같은 동네는 그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이민자가 사는 곳이 아니다. 걔네 하나하나 다 브리티시다.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살던 토종 브리티시들인데 땅값이 저렴한 동네에 모여 살다보니 저런 동네가 형성되는 거다.
반면, 이민을 올 수 있는 그 소수의 이민자들은, 실질적으로 돈이 많았거나 많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전쟁국가에서 이민 오기까지 얼마나 거금이 드는지 아느냐 등등의 얘기를 해주었다. 한국인은 왜 전혀 다른 맥락 속의 사람들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냐며. 저 동네가 그렇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 것은 '영국의' 정책 실패로 인한 social mobility, 즉 사회 이동의 문제이고, 그로 인해 파생된 가난이지 이민이 아니다는 거다.
오늘 나눈 많은 얘기들은 한국적인 사고에 갇혀있던 나를 깨우는 말들이었다.
여기서 한국적인 사고라는 것은 다양한 인종에 대한 사유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
다양한 인종과 부대끼며 살아온 유럽인 필리포에게, 내가 뱉은 말들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유학을 온 당위성을 여기서 또다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