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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몽 Mar 07. 2023

영국에서의 첫 직장, 비디오에디터

25-27, 29 Oct 2021

25. Oct 2021


드디어 업무 기록. 한 달 전, 랜드로드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하우스에 뷰잉을 하러 갔었다. 이때 랜드로드와 함께 티타임을 가지다, 내가 영화를 공부했으며 직접 영화도 감독한 적 있다는 말을 했는데, 어느 날 이 아저씨께서 그걸 기억하시고 전화가 온 거다. 자기 친구가 영상 편집자인데 급하게 편집자 한 명을 구한다고. 문제는 Avid라는 나는 사용해보지 못한 툴을 사용한다는 거였는데, 파이널 컷 프로와 프리미어를 다룰 줄 아니 뭐 비슷하겠지 싶은 자신감에 덜컥 받은 업무였다. 


그렇게 편집실이 위치했던 해머스미스로 아침 일찍 출근.



맡은 편집 콘텐츠는 메디컬 다큐멘터리였다. 일단 시나리오 보면서 러프 컷 이어 붙이는 거야 프로그램이 달라도 같은 논리니 할만했다. 이후에는 자막 삽입. 이것도 뭐 비슷한 논리라 별 문제없었다. 


자그마한 편집실에서 둘이 나란히 앉아 편집하는 게 좀 숨 막히고 어색하긴 했어도 일단 생산적인 하루 끝.




첫 만남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지 퇴근하니 피곤이 몰려왔다. 괜히 웨스트필드 들려서 스시랑 프레첼 들고 귀가. 집에서는 빅뱅이론 보면서 라면이랑 스시. 





26 Oct 2021


출근 둘째 날.


편집하면서 계속 봤던 아저씨 얼굴. 꿈에 나오실 듯



이 날은 아저씨보다 일찍 출근해서 아비드 툴 공부를 좀 했다. 툴이 거기서 거기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아비드는 파이널 컷프로나 프리미어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미세한 편집을 요했던 둘째 날에 아저씨가 원하는 만큼 내가 효율을 못 내는 거다. 무능한 나도 스트레스고 아저씨도 답답해해서 분위기가 꽤 오전 내내 무거웠었다. 이게 기술직이다 보니 일당이 400파운드나 되었는데, 내가 400 파운드치 일을 못해낸다는 생각에 완벽주의자인 나로선 스스로가 너무 한심한 거다.


점심 때는 싸왔던 샌드위치를 뒤로하고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자 외출해서 옆 식당에서 혼밥 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 아비드 툴 사용법 유튜브 영상봄. 


그렇게 툴을 미친 속도로 습득해 나가며 아저씨 짜증이나 잔소리받아가며 겨우 하루 업무 끝. 


사용해보지 못한 툴로 업무를 하니 생각보다 정말 훨씬 고된 날이었다. 내가 그 툴을 배우러 간 거였음 몰라 돈 받으면서 잘  몰라하는 모습이니 스스로 못 봐주겠는 거다. 아저씨는 그래도 편집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내가 아비드 전문 편집자보단 물론 못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몫은 충분히 해내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저녁엔 요리할 힘이 없어 친구랑 피자.




27 Oct 2021


마지막 출근 날. 

이 날은 처음으로 역 앞 작은 가판대에서 햄치즈 크루아상 사 먹어봤고.




오늘도 조금 더 일찍 출근. 

어제 오후에 업무 마무리할 때쯤, 내가 애프터 이펙트 툴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듣자 아저씨가 화색을 띄며 마지막날엔 그럼 효과 소스 좀 만들어줄 수 있냐고 했다. 이 아저씨가 아빠 나이대 셔서 그런지, 이런 효과툴을 아직 만질 줄 모르셨던 거다. 때문에 이 날은 내내 애프터 에펙트로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소스들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메디컬 다큐멘터리다 보니 수술 경과를 보여주는 움직이는 시계나 달력, 그리고 무빙 타이틀 등. 원래 소스들은 외주를 맡길 생각이었다고 하시니 결국에는 나름 내가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기술이 돈이라 애프터 이펙트까지 하는 편집자는 사실 돈도 더 받을 수 있고 스케줄이 꽉 차 이렇게 급하게 보충되는 인력으로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꽉 찬 3일간의 편집 업무가 끝났다. 겨우 3일이긴 했지만 영국 사업체를 위해, 그리고 영국인과 intense 하게 일한 첫 경험이었다. 


아저씨는 아비드도 이제 곧잘 하는 것 같고 애프터 이펙트까지 할 줄 아니,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있을 텐데, 같이 일을 많이 해보자는 식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아저씨다. 일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이 아저씨랑 좁은 공간에서 같이 일하기가 싫은 거다. 성격이 너무 예민하셨고 편집 스튜디오 직원들도 너무 하대하길래, 게다가 은연중에 내게도 말할 때 은근히 내려다보는 시선이랄까. 인종 차별 때문인지 Sexiest 성향인지 모르겠으나(사실 둘 다 인 것 같음), 아무래도 좁은 편집실에 단둘이 있다 보니 3일간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내내 기분 나쁜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편집 파트너 하는 거 어떻냐는 말에 대충 얼버부리며 허그하고 뛰쳐나오듯 나왔다. 


새로운 툴로 일 하면서 가진 압박감, 내내 듣고 리액션해야 했던 아저씨의 코멘트들에 스트레스가 쌓였던 지라 후련하기도 하고 수다로 3일간의 일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다행히 친구가 번개에 응해 웨스트필드에서 만나 같이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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