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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몽 Mar 22. 2023

영국국립미술관, 학예직에 합격하다

11-13 June 2022

11 June 2022


엄마랑 보내는 마지막 주말.

저번에 본 메리포핀스가 너무 좋았어서 급히 다른 뮤지컬을 예매했었다. 뭘 보면 좋을까 하다 런던에서 유명한 <위키드>로 정했다. 급하게 예매한 지라 남은 좌석이 몇 없어 3층까지 갔다.



사실 <메리 포핀스>만큼의 감동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집트 왕자등 다른 뮤지컬 볼 때랑 비슷한 감흥. 그냥 <메리 포핀스>가 워낙 내 취향 저격이었나 보다.





13 June 2022


월요일 오후, 반차 쓰고 엄마 공항 데려다주는 길.

엄마가 게이트 들어가시면서 "잘 지내고 있어"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

그 와중에 저 개념 없는 흰 원피스 여자가 사람 앉을 수 있는 좌석 앞에 자기 캐리어 놔둬서 아무도 못 앉고 다들 저 자리 바라만 보면서 서서 감.






















그렇게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지하철 타고 오는 길. 가족이랑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뭐 하는 것인지. 사실 한국에서 내가 쌓아온 뮤지엄 커리어를 계속하는 것도, 내가 영국에서 공부한 현대미술이론를 딱히 살리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왔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마케팅 쪽에서 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수하기 보다, 그저 상황에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 지. 딱히 이제는 외국살이에 욕심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잘 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그렇게 내가 한 선택에 대한 고민과 회의감으로 뒤섞여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람이 감이라는 게 평소 같으면 광고 전화네 싶었을 텐데 직감상 이게 뭐지 싶었다. 전화가 끊기고 남겨진 보이스 메일.

"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 큐레이터 누구누구인데 너 합격소식 전하려고 연락했어, 메일로도 팔로우 업할게, 시간 되면 전화 줘!"

그리고 곧이어 온 메일.

 






























믿기지 않았다. 내가 영국 국립미술관에 인턴도 아니고, 한국관도 아니고, 내 경력 다 살리면서 영국인들과 경쟁해서 V&A 에서 개관하는 새로운 현대미술관의 학예직을 얻다니. 그간 내 취준 생활들이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갔다. 회사 다니면서도 퇴근 후 스타벅스에 가서 계속 자소서를 쓰던 수개월, 엄마가 영국까지 오셨는데도 면접 준비한다고 오후에는 면접 공부에 시간을 할애했던 날들, 매일 밤까지 연습하다 새벽 늦게 잠들던 시간들. 내 답변을 녹음해서 음악대신 매일 듣고 다녔던 출퇴근길.

엄마와 눈물겨운 이별을 하고 영국 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서 힘없이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소식이라니. 사람 인생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나 보다. 엄마에게 전화하니, 다행히 비행기 타기 직전인데, 한국 너무 행복하게 돌아 갈 수 있겠다며,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다시 이 시기를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보니 새삼스럽다. 여전히 이 미술관에 다니고 있다. 매일매일이 고난과 배움과 영감의 연속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엔 내게 수고했다고 포상으로 버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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