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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의 사고 방식 차이

문제가 생겼을 때 나의 사고는 어디서 출발하는 가

by 시몽


나랑 필립포는 상극이다


그런데 상극이라 아웅다웅할 때도 많지만 그에게 예기치 않게 위로를 받게 될 때도 많다.


이를테면, 이 곳 런던에서의 수업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반복하거나 더 뚜렷하게 그리는 쪽이 아니라, 전혀 몰랐던 세계를 배우는 거라,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따라가야 함에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이 스트레스를 이해 못한다. 내가 "나는 그들이 말하는 사상가나 작가들을 전혀 알지 못해 내가 너무 한심해"라고 하면 "왜 거기서 너를 재단하는 거야, 넌 네가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러 온 게 아니고 배우러 온 거야"라고 라고 말한다.


또한 내가 질문을 하는 애들을 당하지 못하겠다고, 한 주에 할당된 리딩 리스트 책 3권을 넘어서 심지어 그 작가의 다른 서적까지 읽어 오는 애들도 있는데 나는 이 리딩 한 개도 못 끝냈다며 슬퍼하면, "미리, 네가 말하는 애, 매번 질문한다는 애, 그거 몇 명만 반복적으로 그러는 거 아니야? (정말 몇 명만 특히 그러는 거였음..) 걔만 그런 거야. 원래 질문하는 애 1-3명 늘 그렇고 그것도 실제로 들어보면 그냥 말하기 좋아해서 아무 질문이나 던지는 거야, 나머지 삼십몇 명은 다 너 같아 소수가 전체라고 생각하며 너를 비난하지 마"라고 말하는 식.


필립포 말대로 물론 그들을 보며 나도 저만치 되고 싶다고 동력을 얻는 다면 좋겠지만, 계속 지금처럼 낙담하고 자신감을 잃어만 간다면 그건 또 문제가 맞는 것 같다. 자신감을 잃으니 계속 말 수도 줄어드는 게 문제다. 극복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필립포는 "평소에 너를 보면, 계속 무언가 일이 생길 때마다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데 그게 아시안적인 사고인지 네가 유독 그런 건지 모르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특히 저번 코카인 일화에서 당시 내가 코카인을 보통 애들이 이렇게 즐기는 건가? 지금 자리를 벗어나면 나를 너무 선비라고 생각할까? 고민하며 머물었던 게 본인에겐 꽤 충격이었단다.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고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이상한 게 맞고 나왔어야지 걔들이 널 어떻게 생각할까를 왜 걱정하고 있냐며.


사실 필립포랑 얘기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종종 생기는데 그게 실은 정곡이 찔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러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태껏 한 번도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던 점이며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면 누군가 이미 말했는데 내가 새겨듣지 못했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젠더에 따른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흔히 남자들이 샤워 후 본인의 젖은 모습을 보며 잘생겼다고 느끼는 반면 여자들은 거울을 볼 때 왜 이렇게 뚱뚱하지? 라고 생각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이별을 수용하는 방식에서도 이는 가시적인 부분이다. 이별을 마주했을 때 여자들은 그가 왜 날 떠났을까 라며 본인에게서 문제의식을 찾는 경우가 남자들보다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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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필립포의 의문대로 아시안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있겠지. 익히 알려진 일본 사람들의 민폐 문화처럼 남의 시선을 과도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동북아시아 쪽엔, 사실 중국 쪽은 또 잘 모르겠긴 한데, 여하튼 일단 일본과 한국에는 다소 있으니. 아 그런데 일본도 잘 모르겠다. 오타쿠 문화, 성 문화, 예능 프로그램의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특징 등 또 어느 한편으로는 개성이 강하게 분출되고 그걸 존중하는 지점이 있어서.


나는 유독 여기 와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면 늘 이런 사고로 지내왔던 걸까. 앞으로 나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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