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소소하게 논란이 되었던 사건을 하나 보고 가자.
요약하면, 어느 회사에서 명절 연휴 전날 대부분의 여사원들이 '생리휴가'를 쓴다는 것인데, 댓글 반응은 그야말로 대동단결하여 '너무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어이없는 일이 있다.
바로 교사들의 41조 연수이다.
지금까지의 41조 연수와 관련한 사실들을 되짚어보자.
교사들은 공무원이므로, 방학기간에도 근무해야 하고, 출근의 의무가 있다. (교사에게 방학이 있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다. 방학이 있는 직장인은 없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꾸준히 연구활동을 해야 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이 중요하므로 연구활동의 편의를 위해 교육공무원법 제41조 연수 규정을 두어, 근무지 외에서도 연수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연구활동도 폭넓게 근무로 보아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교사는 방학을 제외한 급여를 12개월로 나누어 받는다는 것은 질 나쁜 거짓말이다)
교사들은 '수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사용해야 하는 41조 연수를 방만하게, 누구나 사용하고 있다. 교사들은 아예 교사에게 방학이 있으며, 방학 때는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거리낌 없이, 죄책 감 없이
블라인드 등 커뮤니티에서 만난 교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사의 41조 연수 사용에 대한 지적에 '배 아파서 그러냐'는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아마도, 41조 연수사용이 교사에게 혜택이며,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별 피해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나 또한 41조 연수 사용에 큰 불만은 없고, 대다수 선생님을 존경하거나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는
교사들이
41조 연수를 남용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를 짚어보아야 한다.
첫째, 41조 남용의 부작용이 있는가
둘째,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41조 연수규정 남용의 부작용
1. 공교육 질 하락
공교육이 위기이며, 공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은 (놀랍게도) 교사들도 동의하는 것 같다. 물론 교사들이 판단하는 공교육 위기의 주범은 학생과 학부모, 과도한 행정업무와 사법리스크(?) 등이지만.
기본적으로 41조 연수는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사용하는 것이므로, 교사들 대부분이 41조 연수를 사용하는 현실에서 행정업무 과다나 수업연구 시간 부족 따위는 논의할 바가 아니라는 점을 우선 짚고 넘어가자.
그럼 무엇이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왔나.
학생은 세계 최고수준. 교사는 평균 이하. 교사의 귄위가 무너진게 진짜 문제학생, 학부모 탓인가? 2016년 자료이기는 하지만, 기사본문에서도 나와있듯이 교원 간 국제비교는 희귀하므로 가져왔다.
또한, 2016년이면 IMF이후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정점을 찍어, (성적면에서) 우수한 교사들이 일선 학교에 많이 투입된 시기인 데다, 학업능력 부족으로 교사가 퇴출된 사례가 없다시피 한 대한민국에서 2024년 현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생
국제 평균 이하의 교사
한 번의 조사로 단정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 조사가 충분히 사실에 부합한다면, 나는 이 사태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으로 41조 연수를 꼽겠다.
상식적으로
1년에 두 달을 그냥 노는데
역량이 우수할 리가.
혹시나 싶어 부연하자면, '과도한 행정업무와 잡무 등으로 수업연구나 역량강화를 꾀할 수 없다'는 주장은 교사 대다수가 '바빠서' 41조 연수조차 사용할 수 없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2. 직업적 해이
나중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교사는 41조 연수로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도 그와 관련한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
뭐? 출근을 안 했는데, 증빙자료를 안 내?
대부분 학교에서 사실이다.
예비군 훈련을 가도 '참석증'을 챙겨야 하고, 학교의 학생들도 교외체험학습 신청서와 결과 보고서를 '증빙자료'와 함께 '자필'로 제출해야 하지만, 교사는 두 달 내내 41조 연수를 한다고 '신고'만 하면 아무런 증빙 없이 출근하지 않을 수 있다.
초등학교의 교외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 양식. 출석 한 번 안하려면 아주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출근하지 않아도 뭐라 안 하고
아무런 의무도 없이 한 두 달 지내보면
어쩐지
내가 학교의 왕이고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면 안 되고
감히 나를 평가하면 안 되고
무엄하게 잡무를 시켜선 안되고
딱! 수업만 하는 전.문.직
그런 기분이 들 것도 같다.
비뚤어진 주인의식과 방학기간 반복적인 경력단절은 필연적으로 업무의 해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불을 잘 정리하는 등, '군기'를 바짝 들게 하는 일이 결국 '전투력'과 관계가 있듯이, 반대로 출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책임 없는 자유는 직업적 성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객관적일 수 있는 자료를 가져왔다.
2024년 7월 기말고사 기간에만 한정해서, 부산, 울산, 전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재시험' 소동이 일어났다. 기사를 보자면 어쩌다 발생하는 일도 아닌 그야말로 '매년' 반복되는 일이란다.
책임감 있는 직업정신이라 보기에
매우 힘들다.
그리고 그 원인 중 큰 것으로, 나는 41조 연수의 남용을 꼽는다.
3. 증명할 필요 없는 직장생활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
공교육의 질 저하와 교사들의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지는 현상이 나에게는 분명해 보이는데, 교사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입장'이란 것도 있으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사들이 '평가'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평가에 항의할 수는 있는데,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건 좀 이상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한데,
방학 때 연수도 증빙할 필요 없이 넘어가는데
우리가 왜 평가를 받아야 하지?
뭐, 이런 거 아닐까? 요즘엔 그 '교권'이란 것도 있으니 핑계도 좋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교육부의 무관심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교육부의 탓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부는 매년 (아마도) '교원연수중점추진계획'을 내어 각 시도 교육청에 하달한다. 계획에는 당연히 제41조 연수에 대한 내용도 있으며, 교육부 공식 입장으로는 '절대 휴식이나 여가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한 두 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교육부가 저리 명확하게 41조 연수가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는데, 일선 교사들은 무슨 배짱으로 41조 연수를 휴가처럼 사용하는 걸까?
왜냐하면
교육부가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교육청의 무관심
그렇다면 교원연수중점추진계획을 교육부로부터 받아 일선학교에 이를 시행토록 하는 시도교육청은 어떨까.
대표 격으로 서울과 부산 교육청에 같은 내용으로 문의해 보았다. 결과는 대동소이했는데
41조 연수의 승인자는 학교장이므로 교육청은 관계없다
학교장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41조 연수의 승인을 하며, 연수 결과도 '필요할 때' 제출받을 수 있다
결국 연수결과 확인도 학교장, 승인도 학교장이다. 교육청은 모른다.
내 생각엔 교육청이 이를 관리해야 할 책임이 충분히 있는데, 그냥 손 놓고 있는 것 같다. 교육부로부터 내려온 교원연수중점추진계획을 일선학교에 전달하고, 이를 잘 이행하도록 관리 감독하는 것이 교육청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보다시피 아주 해맑게 '무시'하고 있다
학교장이 알아서 할 일
연수와 연구활동을 이유로 방학 때 출근하지 않아도 급여를 지급하는데, 막상 연수를 승인하고 결과보고를 받는 주체는 학교장이란다. 이것은 마치
문제 출제와 채점을 짝꿍끼리 하면
내신점수를 인정해 주겠다
와 비슷한 상황이다.
미쳤네.
짬짜미
그럼 마지막으로 학교는?
41조 연수의 승인자가 학교장이고, 연수 결과보고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학교장에게 있다면
학교장의 의지가 있으면
41조 연수의 남용을 막고
내실 있는 연수를 실현하고
질 높은 공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거 아냐?
이상적으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고,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방학에 41조 연수로 복무신청을 하면서, 이것이 승인될지 안될지 전전긍긍하거나, 승인이 잘되게 하기 위해 계획서를 첨부한다거나 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원하는 기간에 비행기표나 숙소 따위를 예약해 두고, 그 기간에 혹시 출근할 일이 있을 거라던가 하는 걱정을 하는 모습 또한 본 적이 없다.
41조 연수 승인은 당연히 되는 것이고
결과 보고는 당연히 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선 학교의 상식이다.
일반인의 상식과 동떨어진 교사들의 이런 '상식'은 교사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성실하지 않아도 되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고,
성과가 좋지 못해도 문제가 없다.
업무상 어려움은 '본연의 업무가 아니다'로 남에게 떠넘길 수 있고,
교사만의 업무에서 미진한 부분은 행정업무가 많아서, 잡무가 많아서, 학부모가 무서워서, 요즘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 수당이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이라 말해도 모두 넘어간다.
세상에 이런 직업이 없긴 하다.
교사들끼리, '혜택'에 가까운 복무신고를 승인하고, 보고 받고, 책임지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짝꿍끼리 문제를 내고, 채점을 한 결과를
그대로 내신 성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이것을 짬짜미라 하겠다.
가스라이팅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므로, 41조 연수와 관련되어서는 오래전부터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작았고, 뭉치지도 못했다
여론전에서 졌다고나 할까.
41조 연수에 대한 비판은 보통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방어하는 쪽은 교원 '단체'다. 게임이 되기 어렵다.
50만 명의 교사들은
커뮤니티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연봉제라느니,
방학이 근무 조건이라느니,
41조 연수를 안 하면 교사에게 돈을 더 줘야 한다던지
교권이 무너져서 힘들다느니
박봉에 과로라는 푸념이라던지
거짓말과 과장과 논점 흐리기로
아직까지 이 말도 안 되는 규정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는 이것을 가스라이팅이라 하겠다.
교사가 힘든 거랑 규정을 남용하는 게 무슨 상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