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 그런갑다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세금이 살살 녹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업무'라는 것은, 사기업이나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다.
강당의 문이 삐그덕거려서 열고 닫는데 힘이 들어 빨리 고쳐야 한다던가
학교 사물함이 낡아서 몇 개 고쳐야 하는데, 제조회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부품이 없어서 전체 교체를 하느냐 일부만 구매하느냐를 회의한다던가
누군가 자꾸만 복도에 노상방뇨를 하는 것 같은데, 얼른 범인을 잡아야 한다던가
말벌, 뱀, 쥐, 바퀴벌레 이슈들
교사의 수업이라던가, 행정직의 회계업무와 같은 중요하고 굵직굵직한 업무들이 있지만, 보통 수백에서 천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내는 학교는 매일매일 다양하고 귀찮은 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해결하건
힘을 합쳐서 해결하건
꼼수나 잔머리로 순간을 모면하건
어쨌거나 그 일을 '처리'한다.
그것이 직장이니까.
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그러시지 않는다
뭐가 불만인지
"업무가 많다!" 며 대노하신다.
지금 교사가 (오마이뉴스의 이런 기사는 정식 기자가 취재를 해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 시민기자라고 하는 '이해당사자'가 자기주장을 할 뿐이다) '교육의 질'을 인질삼아 하고 싶은 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실 것이다.
대강 보면 '그냥 맞는 말 한 건데 뭘 그러냐'라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 제목을 잘 음미해 보시라.
교육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게 아니다.
교육의 질이 '저하되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교사들은 이 엉망인 공교육에 책임이 없고, 뭔가 잘해볼 생각도 없는 것이다.
그저 남 탓이다.
교육의 질이 엉망이라는 건 나도 동의하는 것이지만, 그 이유가 교사의 행정업무가 과중해서라는 주장은 어이없을 뿐이다.
공교육의 질이 엉망인 이유는
교사의 자질과 태도 때문이다.
교사들의 주장이 어이없음은 우습게도 해당 기사 본문에서 알 수 있다.
시작해 보자.
첫 문장부터 음미하면서 읽아보자.
교사들은 여전히 온 학교를 돌아다니며 cctv 개수를 세어 해마다 보고해야 하고
cctv 개수를 세어 보고하는 업무가 있다고 치자. 몇 사람이 필요하겠는가? - '교사들은'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cctv가 몇 개인지는 cctv 모니터에 몇 개의 화면이 뜨는지 보면 된다. cctv의 고장, 수리, 구입 등은 행정실에서 cctv업체와 '계약'하여 처리하므로 교사와 관련이 전혀 없다. - '여전히'라는 표현으로 cctv의 업무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교사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은 모양인데, 상식적으로 'cctv 개수세기'가 뭐 큰일이라고 이게 첫 번째 행정업무의 사례인지 이해할 수 없다.
cctv 개수는 세느라 온 학교를 돌아다닌다는 표현으로 교사임에서 불구하고 '육체적으로 아주 힘든' 업무를 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전달하고 싶었나 본데, 역시나 왜 하필 'cctv 개수세기'인가?
왜냐하면 교사들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안 하니까.
과도한 행정업무의 예를 들고 싶은데
실체가 없다 보니,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된다.
마지막으로, '해마다 보고해야' 한단다. 우리는 (예상하다시피) 이 'cctv 개수 세기'가 1년에 한 번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수십 명의 교사들 중에 단 한 명이
1년에 한 번, 넉넉잡아 10분쯤 하면 되는 일이다. (무식하게 학교를 돌아다니며 확인해 봤자 1시간)
잘 기억하시라.
CCTV 개수를 세어 보고하는 업무는
교사가 '과도한 행정업무의 예시'로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다음 문장도 보자.
통학비나 입학지원금 영수증을 10원 단위까지 맞춰 정산하고 있으며
웃기는 것 하나.
정산은 당연히 10원 단위까지 하는 것이다.
본인 용돈 쓴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정산이란 당연히 정확해야 하는데, 우리 세상물정 모르는 교사님들은 이것이 '너무하다'라고 생각되나 보다.
대충 해도 좀 넘어가지. 쳇
뭐, 이런 느낌인가?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통학비와 입학지원금의 성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가 맡은 '사업'의 정산은 당연히 교사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어느 교사에게는 '학교 동아리활동 지원 사업'이 배당되었다고 하자. (교사가 수업 외에 여러 사업을 맡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부당하다 생각하는 교사들도 꽤 있는데, 당연히 교사의 업무이다.)
그러면 동아리에 관련한 현수막, 간담회, 물품, 행사비 등등 배정된 사업에 해당하는 예산을 사용할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을 '품의'라고 하고, 사용 후에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보고하는 것은 '정산'이라 한다.
그러니까 예산을 쓴 놈이 정산을 해야지
그럼 누가 하냐?
당연히 1년에 정산 업무란 것은 한 두건이 불과하고,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요와 금액만 적는 간단한 형식은 두세 시간, 활동증빙과 결과보고까지 필요한 형태라고 해도 며칠 수준이다.
모든 교사가 하는 일도 아닌데, '10원 단위까지'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마치 필요 없는 일을 강요당하느라 허덕대는 이미지를 전달하려 한 것 같다.
그 뒤에는 보건교사는... 영양교사는... 운운하고 있는데.
보건교사, 영양교사는
1년에 수업하는 시간이
극히 적은 '교사'다
그 일도 안 할 거면
도대체 직장은 왜 다니는 건가?
충격적인 것은, 본문에 나오는 그 업무들 또한 보건교사, 영양교사들이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건 언젠가 따로 얘기하겠다.
오늘의 결론
교사의 행정업무와 관련된 기사는
찬찬히 잘 읽으시길 바란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나 사회인의 눈에
그들은 정말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