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같은 날들

흘려도 괜찮아

by 환희

5월에는 술 마실 꺼리를 많이 만들었다. 집에서는 다른 이들이 의식되고, 바야흐로 40, 자식과 배우자와 출근할 곳 있는 복 있는 여자들, 시간 맞추기 존나 어렵다.

3년전에는 솔직히 객사할까봐 혼자 술 못마셨다. 꼭 애 화장해본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돌이켜보면 애시당초 술을 마신 이래 나는 객사할 일이 허다했다. 3번의 임신, 출산으로 금주기를 가졌기에 40까지 운좋게 살아남은 축이다.

오늘은 팻 매쓰니 공연을 봤다. 지난주에는 한스짐머 봤다. 겁나 메이저네..술 마실 꺼리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관람을 핑계로 공연 앞뒤로 시간을 번다. 착석 전까지 부지런히 마신다. 사실 공연장 안에서도 내내 마신다. 공연 끝나고는 본격적으로 마시..다가는 남편한테 면목이 없어서 귀가했었지만 지금은 을지로에서 마시고 있다네. 작년 5월 올림픽공원에 자빠져 있던 나와, 담주 금요일 다시 올림픽 공원 똑같은 돗자리 위에서 웅크리고 있을 나 사이, 변한 것이라곤 늘어난 지방 5000g.

문제는 야근인거 같다. (아 물론 +5kg 지방의 원인도)

야근 뒤 보상심리로 거실에 누워 기껏 숏츠나 연이어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본거지. 아이를 엎고 경찰서로 뛰어들어온 아버지. 도와주세요. 애기가 숨을 안쉬어요. (다급)뭘 잘못 먹었어요?아니요. 그냥 자고 있었는데 숨을 안쉬어요. 119가 올때까지 경찰의 긴급 CPR조치로 아이는 숨을 되찾는다(초등학생인듯)

일단은, 애가 숨 안쉰다고 다른 데도 아니고 경찰서로 뛰어들어간 부분. 생각지도 못했다. CPR. 나는 2년전에나 겨우 교육받았다.

나는 그런 것도 몰랐지. 그것도 모르고 숟가락으로 분유물이나 떠먹여보려하고, 아가야, 가만히 안고나 있고, 구급차는 커녕 새벽 빈 도로의 모든 신호를 지키고, 얌전하게 주차를 하고.

현악기 연주가 거세어질 때 생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CPR.. 그 즉시 내가 CPR을 했더라면. 내가 그걸 생각해낼 줄 알았더라면.

예전처럼 매몰되지는 않으나, 아직도 캐낼 '-했더라면'이 남았다는게, 글쎄 뭐, 누가 들을까 무섭지만, 황망하다.

오답노트처럼, 그래, 담번엔 C..P..R.. 이렇게 적어놓고 재차 다짐하는 것도 비극적이라 느끼지만 막상 그것이 가장 생산적인(?) 결말로 느껴진다.

웃기게 나는 오늘을 기대하며 옷도 사입고 불편한 신발도 신었다. 여기까지 오늘 길에 섹스어필이 흘러넘치는 커플들을 보며 흐뭇하였다.

누군가는 청춘이다. 나의 딸도 사춘기로 고속으로 날아가고 있다. 나는? 나는? 나는 내일 광화문 갔다가 서교동 갈거다. 일단 다음주 공룡박람회는 가야하니 그때까지는 기필코 살아있는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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