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4,000명 직원 중 700명 정도를 다른 사업부에 나눠줬다. 나는 기꺼이 나눠지는 인력이고 싶었으나 내 팔자에 무슨. 남겨져서 일 독박을 맡게 되었다. 그래, 일이라도 하자, 과하게 앓는 소리하고 적절히 빵구내면서.
회사는 그와중에 개발팀 스웨덴인으로 고과권자를 바꿔주고,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해주던 중간관리자를 다른 사업부로 가도록 컨펌해줬다. 시발 나는 SCM 담당인데. 앓는 소리를 영어로 해야된다니.. 그냥 혼자 앓게 되었다.
잡일과 과하게 벅찬 일 사이를 항우울제, 각성제, 수면제 도움으로 적당히 멍한 채로 이격을 두고 어찌저찌 시간에 쫓기며 시간의 흐름을 모르면서 잘 살았다.
그러다 8/28일 수요일 아침 출근길, 습도와 햇빛의 농도가 달라진 초가을 냄새에 나는 주저앉았다.
팔에 닿는 선선한 바람, 짙은 하늘색의 하늘, 바람따라 일렁이는 가로수 잎파리마다 부서지는 아름다운 햇살, 아직은 초가을의 흉내에 그친 모습이었지만 그저께와는 확실히 달랐다.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가을의 기운.
그날밤 아기가 죽을지도 모르고 칠렐레 팔레레 신나라했던 4년전 구월 아침. 이 정도면 행복한 인생 아니련가 안분지족하는 나 자신이 성숙하다 우쭐하며 깝치던 그날. 등신같이.
구월초까지도 열대야가 지속된다고 해서 내가 안일했다. 피곤하고 짜증 투성의 일상을 꾸려가느라 내가 안일했다. 집에 있는 만2세 아이가 생생하게 예뻐서, 너를 낳을 일이 없었음 좋았을텐데, 를 다시 퍼올릴 줄 몰랐다.
어떤 과거도 후회하면서 발목 잡힐 것이 없단 말을 요한복음으로 여기고 뻔뻔히 살았는데.
옅게 설핏 날락말락한 초가을냄새가, 유한락스를 확 뒤집어 쓴거 같았다. 실제로도 살이 화닥화닥했다. 스텐레스처럼 비싸고, 제기능을 다하고 강하고, 예측가능한 인간이고 싶었는데.. 그래서 반찬통 후라이팬도 싹 스텐으로 바꿨는데 말이다. 유한락스 닿은 스텐이 순식간에 부식되고 속수무책 녹이 퍼지는 것처럼.
나는 이것이 응급상황이라 생각되었다. 닷새전에 28일치 약을 받아왔지만 급히 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의사는 그럴만하고 그럴수 있다 했다. 나는 그 의사가 이해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사람이 필요한건 아니다. 쎈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다. 일상을 처리할수 있도록.
구월, 폭염의 꼬리가 길었으면 좋겠다. 폭우가 오는 것도 좋다. 사실 지진도 좋다.
내색하지 않고 싶다. 구월에는 셋째 아이의 생일도 있고 모처럼 다 만나는 추석도 있고..
가슴이 아프고 이따금 눈앞이 하얗다. 며칠째 변을 못보고 있다. 차라리 이렇게 물리적으로 아프니 안도감이 든다. 우리 애기, 갓난애일때도 참 예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