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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Nov 07. 2022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생활기록부를 공개합니다.

콩트, 내 이야기

'두뇌가 명석하나 이지적임.'

나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생활기록부의 '행동 발달 상황'란에 쓰여 있는 문구이다.

여러분은 초등학생에 대한 수식어로 이보다 더한 찬사를 본 적이 있는가?

간혹 똑똑한 학생들에게 '두뇌가 명석하다'라고 써 줄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나외에는 세상 어떤 학생도 그 나이에 '지혜롭다'거나 '이지적이다'이란 평가까지 담임선생으로부터 받을 수는 없을 터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모든 분들이 느끼는 나의 첫인상인 '이지적理智的'이란 평가는 확실히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식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얼마나 멋진 수사인가!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사물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이 이미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형성되었슴을 담임이 꿰뚫은 것이 아니겠는가?

얼굴은 잊었지만 선생님 또한 틀림없이 나 만큼이나 이지적인 분이었을게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나는 이렇게 어려서부터 총명聰明하고 이지적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혹시 초 중등 학생 때의 생활기록부나 성적을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지금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먼저 인터넷으로 해당 교육청의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그곳의 전자민원 창구에 들어가면 제증명 민원 신청란이 있다. 여기서 우편으로 신청하면 된다. 졸업증명서, 생활기록부, 성적증명서 등 자신이 원하는 증명을 선택한다. 교육청에서는 각각의 학교에 보관하고 있는 서류들을 팩스로 송부받아 발급을 대행해 줄 뿐이다. 원본은 각 학교가 가지고 있어서 원본이 큰 사이즈 생기부 같은 케이스는 학교에서 A4용지 크기로 축소하여 교육청으로 팩스 전송하는 모양이다. 이것을 교육청에서 받아 학교를 대신해서 민원인에게 우송해주므로 서류의 해상력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인쇄체 글자는 잘 보이지만 손으로 쓴 글자는 흐릿하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성함을 알고 싶어 생활기록부를 뗐는데 가운데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워서 전화로 다시 해당 학교로 직접 물어보기도 하였다.


생활기록부



그렇다해도 여러분들은 발급 신청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 좋겠다. 나의 이지적인 판단에 의하면 담임선생이 바라본 어렸을 때 모습이 당신의 바램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르는 법이다. 나에게서 처럼 '두뇌가 명석하나 이지적임'이라는 평판은 아무에게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자화자찬自畵自讚이라고 생각하거나 비위가 거슬리는 이지적이지 못한 분은 이쯤 해서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말고 그만두시라.

만약 어릴적 학교 생활에 대하여 그저 막연한 환상이나 그리움이 당신 맘 속에 자리 잡고 있다면, 또다시 말씀드리지만 생활기록부나 성적증명서 등을 발급받는 것은 제발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 즐거웠던 소싯적 추억이나 유소년기의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날라 갈 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떡메에 떡살 맞듯 호되게 당할 수도 있다.



아무튼 아무도 이런 조언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떡 대가리 같이 무턱대고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와 성적표를 발급받았다.

이미 고백한 대로 성적 증명서에서는 '미'가 두 개 들어 있는 초라함으로 충격을 받았다.

보건-요즘은 체육이라 함-과목에서는 미를 받은 것도 감지덕지다. 5년여를 땅고를 배웠어도 밀롱가에 가면 어찌할 줄 몰라 머릿속이 하얘지고 30여 년간 골프를 치고 있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90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미는 음악 과목에서 나왔다. 악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며 반박자 쉬고 들어가는 노래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담임 선생 평가가 그럴 만도 하겠다.

'지능 교과는 우수하나 예능교과가 뒤 떨어짐'


이러한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 다른 아이의 부모로부터 촌지(와이로) 받았기 때문에 내가 최우등 상장을  아이에게 빼앗겼다는 상상을 얼마 전까지도했다. 그럴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에 애꿎은 여담임만 '와이로 선생'이라는 누명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도‘주홍글자 B를 가슴에 단 선생님’라는 글에서 실토했다모든 것이 명명백백히 다 밝혀진 지금에 와서 그 와이로 선생님-이제부턴 '님'자를 붙이겠다-을 찾아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도리아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하여 앞서 말한 대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선생님 성함을 알아 내려고 교육지원청에 신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편으로 받은 복사본 서류에서 선생님 성함은 글씨와 도장이 겹쳐져 있어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문서에 적혀있는 번호로 삼성초등학교 행정실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담당자 송명희씨죠. 54회 졸업생입 박정양니다. 내가 며칠 전에 교육청을 통해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았는데요. 흐릿하고 알아볼 수가 없는 글자가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담당자는 뜻밖에도 나를 알아보았다.

"네에, 박선생님이시군요. 50여 년 전의 기록부를 발급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제가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서류를 아직 치우지 않아 내 책상에 있네요. 어느 부분을 정확히 알고 싶으신가요?"

"네에... 1학년 담임선생님 성함을 알고 싶어요. '김'하고 다음이 무슨 글자인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은 '옥'인데요 "

"아, 네. 김영옥 선생님이라고 쓰여 있는걸요. 그리고 그외에 물어볼 것은 혹시 없나요..."

상대방은 예의바른 나와의 대화가 상당히 유익한둣 말을 이어 나갔다.

"예, 성함 중에서 가운데 자가 영인지 명인지 헷갈렸어요. 나머지는 그런대로 다 잘 보이네요. 생활기록부와 성적표가 분리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오랫동안 서류 보관을 잘해 주시고 또 친절하게 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에게 마음껏 이성적인 어귀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네, 별말씀을요. 근데 박 선생님은 어렸을 때 머리가 좋으셨나 봐요? 성적이 좋으시네요." 그녀는 사무실 일이 무료했던지 아니면 목소리도 좋고 이지적이기까지 한 나에게 호감을 느꼈던지 계속 통화를 원하는 듯이 보였다.

"웬걸요. 떡도 떡이지만 그릇이 좋다고, 뭐.. 공부는 그저 그렇지만 행동발달 쪽의 평이 나를 기쁘게 하더군요. 성적표말고 생활기록부를 한번 보아주세요.

'이지적이다' 요로콤 쓰여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나는 기분이 한껏 고무되고 스스로가 너무나 자랑스러워 저절로 웃음보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수화기 건너편 저 쪽 공기가 싸늘해지면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사실대로 알려드려야 하겠네요. 아마도 교육청에서 팩스를 받았을 때 해상력에 조금 문제가 있었던 듯합니다. 여기 원본에는 요렇게 씌어 있어요. '두뇌가 명석하나 이기적이다'라고."

 

"뭐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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