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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Nov 30. 2022

최경주의 멀리건 Mulligan

이제 12월이 코앞이니 곧 지지난달의 일이 되어 버렸네요.   밤부터 비바람이 심상치 않게 몰아쳤는데도 불구하고 꼭두새벽부터 고교 동기회 골프 경기 나섰습니다. 날씨도 그렇거니와 새벽 운동이니 만큼 당연히 첫 홀부터 모두들 정신없이 허우적 대었습니다. 미스샷으로 인해 심장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큰 상처를 받을 성싶어 우리 넷은 그 라운드에 한해 각자 필요시 멀리건을 하나씩 쓰자고 타협을 봤습니다. 누가 먼저랄  없이 서로서로 이심전심 작당을  버렸습니.


평소에 모든 샷이 워낙 정확한 나는 멀리건이라는 말만 들어 그때까지 한번  볼 새도 없었습니다. 멀리간은커녕 내 평생 거짓말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그날 청렴하고 고귀한 나의 골프 인생에 먹칠을 하였기에 후회가 마구마구 밀려왔습니다. 18 라운드 내내 얼굴이 화끈거려 캐디 눈과 마주치기조차 스스로 용서가 안되었습니다. 범법자가  나를 경찰이 당장이라도 잡으러  것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영 께름칙해서 손에 진땀이 다 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라운드 도중 룰을 적용함에 동반자 간 다툼이 생겼어요. 기실 '룰'이라 하기엔 약간 면구스럽지만요. '세컨드 샷이나 써드샷에 미스를 범하였을 때 써먹어도 합당한가?'에 의견이 엇갈렸지요. 멀리건 자체가 원래 규칙 위반이라 골프 규정집에는 이러한 사항이 쓰여 있지 않아요.

왈가왈부하다 목소리가 제일 센 친구 주장이 먹혀들었습니다. '멀리건은 티샷에서만 사용하여야 한다'를 결국 마지막 결론으로 도출하였습니다. 범법자들 주제에 자체적으로 토론하고 판결까지 내린 거지요. 입으로 맥주를 들이켰던 주둥이로 소주를 퍼부었던 술 마시고 차를 몰면 전부 음주 운전 아니던가요?



집에 돌아와서 곰곰 되씹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티샷에서만 사용하자'라고 했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어요. 까닭을 알아내려고  머나먼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의 규약집, 세계 연맹 등등의 자료를 구글링을 하여 전수 뒤졌습니다

뭐라도 찾아냈냐고요? 물론 굉장한 사실을 알아내었지요. 

세인트 앤드루스의 모래 벙커


이제부터 주욱 설명드릴 테니 끝까지 읽어 보세요.  

불현듯 의구심이 들어 여쭤보는데 당신은 '멀리건' 무슨 뜻인지나 알고 계신가요

모르신다고요!  그럼 글을 이해하게끔 우선 단어 정의와 어원부터 알려드려야겠군요. 간단히 설명드릴게요. 아시는 분은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멀리간은 골프 용어입니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골프 용어라고 하기도 새삼 멋쩍기는 하네요.

아무튼 뜻은 '처음 친 샷이 좋지 않았을 경우에 벌타 없이 이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다시 치는 행위'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룰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이 말은 용어집에 의당 없습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볼이 현재 놓인 그대로 다음 플레이를 할 것'과 '플레이를 할 수 없을 때는 벌타를 받고 다시 칠 것'을 적용합니다.

영어로는 Mulligan이라 적고 멀리건 또는 멀리간이라 발음합니다. 혹자는 순 한국식으로 발음하여 몰간이라고도 합디다. 심지어는 일본식으로 모루간이라고 까지 하더라고요.



국제 골프 학회 용어 분과위원회에 따르면 멀리건의 어원으로 몇몇 설說이 존재합니다. 모두 다 사람 이름에서 유래된 아래 세 가지로 간추려지지요.

첫째: 철학자 토머스 멀리건(1793~1879)은 골프룰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극단적 원칙주의자로 골프규칙을 집대성했다. 그래서 위반 행위에 상징적으로 그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는 썰.

둘째: 어느 돈 많은 사업가가 골프는 하고 싶은데 파트너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혼자 플레이하기는 싫어 클럽에서 일하는 왕초보인 멀리간을 꼬셔서 라운드 했다. 이 청년은 미스샷을 범할 때마다 새로 치게 해 달라고 사업가에게 요구하였다. 이후부터 이런 행위를 멀리간으로 불렀다는 썰.

셋째: 이름이 멀리건인 플레이어가 동반자를 위하여 골프장까지 오랜 시간 운전하였다. 그 때문에 경기 중 몹시 피곤해했고 실수도 연발했다. 그리하여 그에게만 각별히 미스 샷을 만회할 기회를 주었고 이를 멀리건이라 하였다는 썰.


허나 위의 세 어원 죄다 근거가 희박한 말 그대로 '썰'이라 느껴졌습니다. 성미 급한 나로서는 참지 못하고 영국 골프협회가 소장한 오래된 회의록, 각종 사전과 문헌, 19세기말의 대영박물관 소장 목록, 스코틀랜드 신문과 전문잡지를 다시금 탈탈 뒤졌습니다.  

기어코 며칠 전 새롭고도 획기적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스코틀랜드 쪽은 확실했지만 혹시 실수할까 봐 한국 국립도서관 자료에서도 조선 말기의 역사적 고증을 재차 거쳤습니다. 자못 놀랍게도 이 낱말은 조선시대와 직접 연관되었어요. 



그럼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시방 네 번째 설說로 발표하겠습니다. 

내가 알아낸 사항은 학문적 토대가 탄탄하므로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그냥 썰이 아니고 정설로 여겨주세요. 아직 세계 골프 학회지에 투고하기 전이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제 연구의 첫 수혜자가 된 셈입니다. 고맙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은 1882년 영국英國과 수교하였습니다. 그리고 3년 뒤 영국 해군은 러시아 침략에 대비한다는 구실로 조선반도 남해의 한 섬을 무력으로 점령하였습니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조선朝鮮은 서서히 개화의 길을 모색합니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참신한 기술과 긴밀한 교류가 필요했던 조선 정부는 그로부터 또 3년 후인 1888년 영국에 산업시찰단을 파견합니다

천부영을 단장으로 조준희, 남기헌, 김철주, 이선철, 정덕기, 최봉섭 등 10여 명의 개화파를 중심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각 부문 전문가인 시찰단은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도시와 공장, 의회, 은행 등을 한 달여간 둘러봅니다. 그중에 체육 분과 청년 대표로 최경주(崔傾酒)-현재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경주崔京周 프로 골퍼와는 동명이인-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장원 급제하여 학문에도 물론 조예가 깊었지만 어릴 적부터 스포츠 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영국에 가는 김에 럭비, 축구,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본토에서 친히 경기해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격구(擊毬, 장시라고하는 채를 가지고 말을 타고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넣는 경기)에도 소질이 있었던 최경주는 비슷한 운동인 골프를 처음 보자마자 홀딱 반하였습니다. 더불어 골프의 발상지에서 경기를 손수 접해 보기를 무엇보다 갈망하였습니다. 관리들에게 부탁하여 랭커셔주 '로열 리섬 앤드 세인트 골프 클럽'에서 급기야 영국 대표선수들과 동반 플레이 예약이 잡혔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귀국 날자가 이틀 밖에 남지 않아 시간 관계상 스윙만 겨우 몇 번 해본 채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골프장은 수년 전에 브리티시 오픈이 열렸었기에 이제 우리에게도 낯이 익지요.



현시대의 챔피언 최경주 崔京周


조선인으로서 최초로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 역사적인 티 샷 Tee Shot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운동 신경이 남다른 최경주라 해도 골프는 왕초보였기에 첫 드라이브 샷 Drive Shot에서 공이 약간 휘면서 아슬아슬하게 OB(Out of Bounds)를 범하였습니다.

처음 타석에서 비록 오비는 냈지만 최경주의 공 자체는 아주 아주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함께 플레이하던 영국인 프로 골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거리가 났습니다. 당시 취재를 나갔던 골프 전문 기자들도 이 전무후무한 비거리에 기겁을 하고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했을 만큼 볼이 엄청나게 멀리간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비거리인데 OB라니 참석자 모두 무지무지 기막혀했습니다. 지켜보던 관계자들도 첫 공이 날아가니 탄성을 내지르다 마지막에 슬라이스가 생기자 오히려 자신들이 미안해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들의 탄식에 경기장 주위는 적막감이 흐르고 사위는 온통 숙연해졌답니다. 그런데 하물며 본인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겠습니까?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볼이 날아가 박힌 지점을 바라보며 최경주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우, 씨... 아깝다! 굉장히 멀리 간 볼인데... 멀리간....".

동반자들도 물론 너무 안타까워했거니와 외교적 예의로 주최 측은 최경주崔傾酒에게 다시 한번 티샷을 하게끔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영국에서는 그런 행위를 '멀리간'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888년 당시의 최경주(崔傾酒)의 동반자 3인. 안타깝게도 아너(Honor)로서 이미 티 샷을 마친 그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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