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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Oct 10. 2023

이와인이끌리네요.

'샤또 삐숑 롱그빌- 꽁떼스  라당드'를 아시나요?

이 와인은 보르도의 뽀이약 마을 출생인데 불어로는 Chateau Pichon 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랍니다. 참 복잡하지요? 맛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이름이 너무 길어 기억하기가 쉽지 않겠어요. 땅이나 사람 들어간 와인명은 외지인으로서는 외우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반면 '샤또 뻬뜨뤼스'나 '샤또 딸보'는 어떤가요? 간단해서 좋지요. 더구나 프랑스 알파벳 p, t, c 뒤에 모음이 있으면 영어와 달리 격음화(ㅃ, ㄸ)되어, 뻬뜨뤼스 딸보 이렇게 발음한다니 신나더라고요.

김정일이나 히딩크가 찾지 않아 유명세는 못 탔어도 아래 이름 역시 친해지기 쉬어요. '샤또 피작 (Chateau Figeac)', 샤또 몽로즈( Chateau Montrose) ', '샤또 끌리네 (Chateau Clinet)' 등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이 닿습니까!



와인 용어 '벤데미야'는요? 알듯 모를 듯하시지요?

이탈리아어로 Vendemmia라고 적습니다. 영어로는 빈티지(Vintage)라고도 하며 '어떤 것이 생산 또는 창조된 후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났음'을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성숙도, 고전미, 세련됨'을, 와인업계에서는 '포도열매를 수확한 해'를 뜻하지요. 간혹 오래됨과 무관하게 '날씨가 좋아 포도가 뛰어나게 잘 영근 해에 만든 품질의 와인'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마다 의미가 다르니 올바로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빈티지 타령이냐고요? 

작년 마눌님의 생일에 가깝게 지내던 분들과 식사를 했어요. 근데  분이 축하주로 1962년 산을 들고 오셨어요. 무려 60년이나 묵은 와인이지요. 사람도 와인도 회갑을 맞는 진기한 자리였답니다.

Chateau Latour 1962, 본문과 무관

맛이 어땠을까 아주 아주 궁금하시지요? 가득 뿜어져 나오는 베리향과 감초, 잼이나 건포도향으로 보아 탁월하게 자란 포도 알맹이로 발효한 게 분명했습니다. 탄닌과 산도가 부드럽게 숙성되어 다양한 과일 풍미와 균형을 이루며 고상한 벽돌색 빛을 한껏 발했습니다. 그 자리에 세련된 자태의 귀부인과 우아한 기품의 빈티지와인이 함께 했더랍니다. 환갑 여인과 회갑 와인이 서로 매무새를 뽐내다니 인간도 술도 이제는 명실상부 백세 시대인 모양입디다.


와인은 좋은 빈티지냐 아니냐 여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날씨의 변덕이 심한 보르도 지역 특히 빈티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에는 무지하게 컸습니다. 전설적인 1945년 산을 비롯하여 1962, 1982 빈티지는 여느 해와 비교하면 가격이  배 높지요. 21세기 들어와서는 '05, '09 빈티지를 알아주고요. 최근에는 '15년이 괜찮 점수를 받고 있답니다.




우째 이런 말씀을 장황하게 드리냐 내가 2019년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협회가 주관한 '엉 프리머(En Primeur)'를 극비리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그 해 4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린  프리머 주간 둘째 날과 셋째 날의 스탠드  시음회에 초대받았더랍니다. 엉 프리머란 영어로 말하면 "와인 퓨처 (wine futures)"입니다. 발효 직후 오크 배럴 속에서 막 숙성이 시작되는 와인을 미리 맛보고 평가하고 구매하는 일이지요. 일종의 선물先物 거래지요. 제대로 고르면  가격에 귀한 와인을 대량으로 구입하니 나중에  차익을 남기는 선물膳物이 되겠어요. 하지만 잘못 택하 크게 낭패를 당해 쓴 물을 들이켜야 하니 신중히 다뤄야 합니다.

Relais de Margaux Hotel 전경


시음회는 샤또 마고가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릴레 드 마고 (Relais de Margaux)의 빈세트 홀에서 열렸습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세련되기 그지없는 호텔이지요. 청주 와인스피릿 멤버들이 2015년 와이너리 투어 중에 사흘간 묵으며 평생 잊지 못할 파티까지 즐겼던 터라 나에게는 마땅히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엉 프리머에는 그랑크뤼 협회 회원(Union des Grands Crus members)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로버트 파커나 잰시스 로빈슨 같은 대가에겐 3월 하순에 혼자만 먼저 조용히 테이스팅 하게끔 해줍니다. 그에는 못 미치지만 나에게도 전 세계에서 초청된 수십 명의 전문가들 틈에서 최고급 그랑크뤼 와인이나 숨어있는 보물들을 배럴 숙성 단계에서 만나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흔하지 않다기보다는 차라리 일생일대의 행운이라 해야겠지요.



그런 중요한 행사에 어떻게 초대받았나구요? 물론 다 사연이 있지요.

2015년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열린 '보르도 와인 페어 살롱 두 뱅 (Bordeaux Wine Fair Salon du Vin)'에 오셨었나요? 주최 측이 초대한 국내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품질을 미리 평가하고 수입할 와인을 선별하는 행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린놈을 일찌감치 골라 사놓으면 보르도 현지에서 숙성이 끝난 다음에 보내주지요


나는 당시 '샤또 뽀세떼 (Chateau Fausseté)'를 추천하였는데 이 와인이 나중에 초대박이 터졌어요. 구석에 처박혀 아무에게서도 눈길을 받지 못하던 초라한 어린애였지만 내 눈에는 후광이  들어왔습니다. 지롱드  우안의 대표적인 동네인 생떼밀리옹 남서쪽 구릉이 이 아이 고향인데 진흙 속에 숨어 있던 보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내가 추천한 이 샤또 뽀세떼 2014는 샤또 뻬뜨뤼스만큼이나 아니면 그보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현재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 보답으로 뽀세떼 와이너리에서 항공권 및 체제비를 일체 부담하여 이번에 보르도 다녀온 것이랍니다.



보르도 7,000여 개 와이너리 가운데 단지 116개 와이너리만 2019년  프리머에 선별 초대되었어요. 당연하게도 2018년에 수확한 포도로 발효시킨 즉 '18 빈티지가 대상이었지요. 서리로 인해 피해가 극심했던 전년도 2017과 달리 그 해는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2018년에는 7월 초까지 마침하게 비가 내려주어  수분이 고루  보존되고 수확 시기까지도 따뜻하고 건조한 날이 지속되었답니다. 따라서 포도 알맹이엔 산도가 적당히 유지되고 당분 또한 알맞게 축적되었습니다. 밤낮의 온도차가 크게 벌어져 산뜻하면서도 복합적인 향기가 고스란히 포도에 들어찼습니다. 현지에서는 어느 해보다도 훌륭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음자 가슴에도 자부심이 한가득 부풀어 올랐습니다.



시음 행사장의 많은 와인 중에 다음 8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역별 샤또 목록(List of châteaux by appellation)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발음은 약간씩 다를 겁니다.

1. 샤또 까르보뉴 2018 (그라브와 페삭 레오냥) Ch. Carbonnieux 2018 (Graves & Pessac-Léognan)

25. 샤또 라 도미니크 2018 (생트-에밀리 옹 그랑 크뤼) Château La Dominique 2018(Saint-Emilion Grand Cru)

49. 샤또 끌리네 2018 (포메롤) Château Clinet 2018 (Pomerol)

52. 샤또 보몽 2018 (메독, 오메독, 무리 & 리스트라크) Château Beaumont 2018(Médoc, Haut Médoc, Moulis & Listrac)

65. 샤또 페리에르 2018 (마고) Château Ferrière 2018 (Margaux)

82. 샤또 랑고아 바르똥 2018 (생 줄리앵) Château Langoa Barton 2018(Saint-Julien)

95. 샤또 린치-바주 2018 (포이약) Château Lynch - Bages 2018(Pauillac)

109. 끌로 오 뻬라게 2018 (소테른) Clos Haut - Peyraguey 2018 (Sauternes)



49번 '샤또 끌리네 Château Clinet 2018'가 그중 한결 돋보였습니다. 지롱드 강의 우안 뽀므롤에 자리한 이 와이너리의 토양은 그냥 진흙이 아니고 산화철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미네랄 성분이 아로마와 부케에 다양한 뉘앙스와 복합미를 선사합니다. 오묘한 송로버섯(Truffle) 향과 낙엽향이 살짝 올라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아직은 어설펐으나 동물성 식물성 향이  짜인 단단한 구조감을 안겨 주었고 산미 또한 날카롭지 않고 둥글게 다가왔습니다. 검고 붉은 과일향과 부드럽고 중후하게 숙성될 탄닌이 훌륭하게 어울려 똑바르게 균형을 잡아 주겠더라고요. 

크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옛말에 한치도 어금남 없는 어린 와인이었습니다. 

90%의 절대 메를로 품종이지만 보르도 좌안의 캡(cab)과 일대일로 대적해도 남을 깊이와 두께는 탁월한 숙성력을 예상케 하였습니다. 말랑말랑 제대로 익어 순화된 탄닌, 달콤한 터치와 풍부한 아로마, 길디  여운, 진득한 보디감의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한국 남자들의 입맛에  맞아떨어지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아직 숙성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원숙한 정신을 가진 애 늙은이는 배제한다.', '앞으로 2-3년의 기나 잠을 버텨내야 하므로 신체는 농밀하고 두터워야 한다.'는 나의 소박한 원칙에도 온전히 부합하였습니다. 몇 년 후 끌리네가 동면에서 깨어나 세상에 나오 즉, 출세하면 대한민국 술꾼만큼은 어마어마한 호응을 보내리라 내다봤습니다.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를 테고  와인을 구하기보다는 하늘의 별을 따기가 쉬우리라 판단했습니다. 시음 당시는 리터 당 € 15 정도의 저렴한 가격이지만 끌리네 2018년 빈티지가 마침내 출시되면 최소한  € 1,500 가리라 장담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 주당 특히 젊은 남성에게 인생 선배로서 강력하게 조언해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든 '끌리네 18년'을 만나면 보는 즉시 그녀를 얼른 당신 집으로 모셔가세요.

애먼 놈이 채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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