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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Oct 08. 2023

내 몸이라 해도 모두 내 맘 같지 않은...

내 몸이라 해도 모두 내 맘만 같지 않다.

올해 들어서 몸의 변화가 더욱더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떠들어 대도 6학년에 진학하고부터는 신체 여러 쪽의 삐걱거림이 점점 심해진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필요 없던 손까지 짚게 되고 한두 차례 멈칫하는 순간도 필요하다.
근육은 근육대로 뻣뻣해지고 관절은 관절대로 빳빳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불협화음마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허리는 허리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제각기 몰려가서 '아구구, 으그그' 합창을 쏟아낸다. 


이런저런 불편한 심기로 정형외과를 개원한 선배에게 하소연하여 본다.
"황 선배. 오늘 침대서 일어나는데 뼈마디가 아파서 아그그 소리를 내며 손을 짚고 일어났어요. 이거 관절이나 근육에 이상이 생긴 거 아닌가?"
"너도 이제 늙었나 보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는데..."
"아니, 저번에 제주 가서 일박했을 때도 선배 죽는소리는 못 들었는데... 나랑 같은 방에 자지 않았나요?."
"그냥 꾹 참는 거야. 신음 소리 낸다고 누가 알아주나? 그저 속으로 삼켜야지."


 '와인 스피릿' 모임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에 청주 상당산성 등반을 한다. 작년에는 큰 어려움 모르고 모임에 따라다녔으나 이 번 겨울 들어 운동을 제대로 못하였기에 다음 주 등산을 위해 우선 몸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지난 2월 세 번째 일요일 오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인 용암동 뒷산을 트레이닝 장소로 정했다. 한 시간여를 오르락내리락 걷기만 하는 야트막한 산길이다.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제법 힘이 드는 코스여서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곳이다. 얼어 죽기는 싫어 옷을 잔뜩 껴입은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몸뚱이가 후끈 달아올랐다. 별 다른 방도가 없으니 웃옷을 벗어 걷는 내내 껴안고 다녔다. 파카 윗도리에 군밤장수 모자까지 한 짐 가득 지고 다니는 꼴은 자업자득, 매를 벌어도 한참 번 셈이었다.

크낙새. 자료 사진

산을 거의 다 내려오는 도중에 누군가가 나무에 망치질하는 듯 '따악딱 따악딱' 소리가 났다. 늦은 오후라 인기척은 없는데 분명 머리 위쪽에서 들려왔다. 얼어붙은 땅에까지 동시에 진동이 울려댔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무 끝쪽부터 세심히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중천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참이라 눈이 부셨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바로 옆나무에서 새 한 마리가 기둥 가운데를 연신 쪼아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크낙새였다! 벌레를 잡는지 집을 짓는지 알 수 없었으나 가볍게 고개를 젖혔다 펴면서 사정없이 부리를 내리꽂는 정경이 재미있었다. 귀엽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조그만 게 나무에 딴딴히 붙어 머리통을 저렇듯 힘차게 움직이다니 근육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말 그대로 잠깐동안 고개를 꺾었는데도 느닷없이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져 왔다. 아차 싶어 목덜미를 대뜸 세웠으나 순간 머리가 텅 비며 맥이 풀리고 몸이 휘청거린다. 여타 사람들 같았으면 어지러워서 대부분 땅바닥에 내처 고꾸라졌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난 운동신경이 남다르고 허벅지 힘살이 바위처럼 단단하여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면서 당당히 버텨 냈다. 크낙새만큼은 아니었어도.


요즈음이야 '한국산'하면 무엇이든지 대단한 평가를 받는다지만 내가 태어난 1950년대만 하여도 국산품의 질은 보잘것없었다. 그때 만들어진 나의 몸뚱아리도 물론 순 한국산일 터이다. 그 국산품을 60여 년 썼으니 참으로 오래도록 사용했다. 5살 때부터 하루에 최소한 평균 2km씩만 걸었더라도 지구를 한 바퀴도 더 돌은 셈이니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요즘처럼 하루 십리 이상을 걸었다면 두세 바퀴를 돈 셈이다. 그러고도 심하게 고장 나서 수리하거나 부품도 갈지 않고 이런 정도 유지했으니 대견하기만 하다. 글을 만들려다 보니 그렇지 사실은 아침나절 처음에만 좀 삐그덕거릴 뿐 일단 움직이기 시작 후에는 별문제 없이 똑바로 나다닌다. 괜찮은 중고 자동차 마냥 시동이 걸릴 때는 쫌 걱걱거려도 주행을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올바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현재는 그렇더라도 안심만 하기는 이르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 레커 wrecker에 실려가는 신세가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끌려가지 않으려면 스스로 정비소를 가든지 공업사를 가든지 하여 애초에 없던 나만의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야 한다. 군데군데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여가면서 훌륭하게 살아내도록 자신을 다독거리자. 지구를 두 바퀴 걸어온 육신이니만큼 나의 정신이 잘 이해해 주자. 아울러 몸은 되도록 움직이고 마음은 쉬게 할 일이다. 



그러나 내 몸이라 해도 모두 내 맘 같지만은 않다.
한해 한 해가 지나면서 몸 전체가 뻣뻣해지기는 해도 전부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유독 아래쪽 한 군데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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