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안내판을 봐요. '밤 10시 이후에나 그릇을 닦으라'잖아. 오밤중에 개수대를 사용하라니 이게 말이나 돼? 정말로!."
오늘은 안텔로프 캐년에서 워낙 늦은 시간에 출발하였기에 이곳 캠핑장에 저녁 무렵에나 도착했다. 서둘러 캠핑카를 세팅하고 차 안에서 음식을 간단히 차려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주위는 어둑어둑하였다. 집사람이 가리키는 차창밖을 쳐다보니 개수대 벽 안내판에 쓰인 굵은 글씨의 대문자가 아래와 같이 어슴프레 보였다.
'DISHWASHING
AFTER 10 PM'
이렇게 한참을 이바구를 날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창문 밖 저편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8시 30분이나 되었을까 일러도 한참 이른 시각에 웬 동양인 둘이 식기를 개수대 가득 올려놓고 닦고 있었다. "쟤네들 좀 봐. 미친 거 아니야?. 1시간 반이나 앞질러서 개수대를 사용하네."
"글쎄 말이야. 누구는 냄새 풍기는 반찬그릇을 이 안에 두고도 얌전히 기다리는데." 용감하게도 반시간 이상이나 딸그락 거리던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로 시간을 때우다 보니 마침내 밤 10시에 다다랐다. 오늘 하루 일정이 원체 빡빡했기에 졸음이 눈썹 밑까지 밀려왔으나 우리는 약간 더 기다렸다. 아직 자지 않는 주위 캠핑족 눈에 띄지 않도록 좀 더 미루기로 했다. 미국인에겐 눈이 소중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