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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Dec 22. 2021

금산사의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사는 이야기

새벽 3시.

내 집에서라면 이제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금산사寺니 하루를 시작한다.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더해 같은 방에 머무르던 도반들의 휴대폰 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마구 터져 나온다. 

오늘은 4박 5일 일정의 전북 김제 금산사의 '도徒란도道란 구들방에서 쉬어가는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이다.

장작을 때어 뜨겁게 달군 절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세속을 버리고 놀다 가라는 뜻으로 마련한 행사이다.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닷새 전 입소하던 날부터 몸이 으스스하더니 내내 몸살을 앓아 예불을 비롯한 이른 아침 행사에 참석을 못 했던 터라 더욱 갈등이 인다. 마음 한쪽 구석에 똬리를 튼 비겁함이 몸 어디엔가 머무르고 있던 게으름과 또다시 손잡으려 한다. 결국은 호기심이 망설임을 물리친다. 방안 어둠 속에서 옷을 찾아 잔뜩 껴입고 맨 마지막으로 문지방을 나선다. 밖은 흰 눈이 온 경내를 덮어 책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환하다.     


법당 안에는 스님 몇 분과 우리 일행뿐이다. 옆 사람 따라서 부처상에 대고 연신 절을 해본다. 형상으로서 볼 수 있는 부처님이 아님에도 한껏 몸을 낮춰 본다. 격식을 통해 나 자신의 공경심을 끌어낸다. 일념으로 성심성의를 다 한다면 스스로를 모시고 구하게 될 것이다. 약이색견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不能見如來, 예불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새벽 찬 공기가 성치 않은 허파꽈리를 긁어 대었으나 이제는 참을 만하다.     



아침 공양(식사)도 아니하고 못 잔 잠을 채우려 방으로 돌아와 누워 있는데 누군가가 같이 세배를 가자한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세배야? 누구신지 몰라도 새해 인사를 하려면 이리로 오시라고 해!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다.

그래, 올해는 성질 좀 죽이고 한껏 낮춰 보자.

남이 하자는 대로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자.     


먼저 큰 스님이라는 분을 뵌다. 절 안에서 가장 높은 집에 계신다. 연세도 제일 많으신 분이란다. 

방이 아주 크고 방바닥은 뜨겁다. 말씀은 의외로 평범하다. 도道란 일상 속에 있고 진리는 절대적으로 평범함 속에 있다 하지 않던가?

'새해에는 말과 생각과 행위로 복을 짓자.'라고 하신다. 어떻게 내 마음을 아셨는지. 그로 인해 주위에 상처만 주어온 나는 이 말씀을 가슴속 깊이 새겨 둔다.     


다음은 주지住持 스님. 식사 시간에 한두 번 뵌 분이다. 절 안에서 가장 멋진 야트막한 언덕집에 계신다. 방도 크고 뜨거우나 큰 스님만큼은 못하다. 유명한 절을 운영하느라 바쁘신지 사무적이다. 세뱃돈을 서둘러 그냥 주기에 얼떨결에 저냥 받는다. 돈을 받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동안 주기만 했지 받아 본 적은 없지 않았던가!     


이어서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 차례다. 우리 숙소 바로 위에 외따로 자리 잡은 조그마한 기와집이다. 방은 아담하고 방바닥은 따습다. 스님쪽 뒷벽의 열어젖힌 창문을 타고 온 풍경이 한꺼번에 방 안으로 들어온다. 산중 무채색 설경을 뒤로하고 앉은 스님이 차를 끓여 낸다.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이 스님에게 역광으로 작용하여 그러잖아도 윤기 찬란한 머리가 더욱 반짝거린다. 거친 종이 벽지와 흑갈색 창틀이 액자가되어 바깥에 펼쳐진 자연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스님 뒤로 삼백 호는 됨직한 아름다운 설경의 한국화가 한가득 펼쳐진다. 참으로 보기 드문 정경이다. 멋을 아는 분이다!

"스님 후광後光이 큰 스님과 주지 스님 것보다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내가 슬쩍 농弄을 쳐 본다.

"사실은 제가 그게 없어서 억지로라도 만드는 겁니다." 멋쩍어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다.

다기茶器를 사이에 두고 막힘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창을 여니 스님 뒤로 자연이 한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젊은 스님. 실은 나도 누구신지 모른다. 크지도 않은 방에 침대와 컴퓨터까지 놓여 있어 좀 옹색한 느낌이다. 침대와 절집의 조합이 어색한 느낌이 들어 물어보니 허리가 좋지 않아 들였다고 한다.

방과 방바닥...... 타령은 이제 그만하자. 재미있는 것은 내려 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차가워진다는 사실.

반대로 우리에게 해 줄 말씀은 더 많아진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총명聰明한 초등학교 3학년 생처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잘 듣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실제로 없다. 

‘총명하다’에서 총聰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환자를 치료할 때 이야기를 잘 듣기는커녕 문진과 동시에 처방을 내리는 급한 버릇이 있다.

귀를 밝게 하자. 올해부터.

총명해지자. 지금부터.

전문 지식인일수록, 많이 안다고 할수록,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더 필요한 덕목이지만 더 실행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젊은 스님의 옷이 정갈하게 걸려있다.



도낏자루를 잡아 본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하여 장작을 패야 한단다.

한두 번 내리 찍어보니 도끼질에 대해 다 알게 된다.

내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렇다. 진즉에 탐진치嗔嗔癡를 알아채야 했다.

탐嗔하는 마음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성嗔을 내게 된다. 화火를 내면 몸과 마음에 또 다른 화禍를 입는다. 탐욕은 어리석기癡 때문에 나오게 되는 것. 어리석지 않으면 탐하는 마음은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이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낏자루 하나로 득도得道한 느낌이다’라는 어리석음을 가져서도 물론 안된다. 


도끼 대신 빗자루를 잡는다.

이걸 잡아본 게 언제였던가. 몇 겹의 세월이 지났던 것인가.

밤새 수북이 내려 온통 천지가 눈이다. 숙소와 식당 사이를 이어주는 계곡의 돌계단이 무척 미끄러워 눈을 쓸어보려 작정한 터이다.

일은 벌였으나 경사가 가파르고 길은 멀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왕지사 시작한 것 말끔히 완수하리라 다짐해 보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내 힘으로 끝을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몰려온다. 금강경 구절 '다가오면 응하고 지나가면 머무르지 않는다.(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以生其心)를 다시 한번 되뇌며 마음을 비우고 빗질을 하는데 구세주가 나타난다. 도반 중에 어느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 오더니 나머지 중간부터 쓸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절에서의 도徒란 빗자루를 함께 드는 분인가 보다.     



이제 길이 전혀 미끄럽지가 않다. 내가 봐도 썩 잘한 일이다. 마음이 날아갈듯이 시원하다. 

작은 일이지만 남에게 이렇게나마 봉사를 해 본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진정한 이타利他가 있을까? 선이고 봉사고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 행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계단 눈 치우기는 운동도 되었고 기분도 개운했고 그 무엇보다도 이 울력으로 공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어 좋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절의 규칙이다.

참으로 위대하게도 절집 5일 동안 딱 한 끼 빼고는 전부 다 찾아 먹었다.     


마음 홀라당 비우러 갔다가 밥그릇만 훌러덩 비우고 왔나 보다.     





글. 사진: 박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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