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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Dec 22. 2021

마시지 않으면 바라나시를 보여주지 마라.

과음한 다음날 아침 해장으로 복어국 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무를 두툼하게 잘라 넣고 미나리를 송송 썰어 놓은 깊고 시원한 복어국을 들이켜면 속이 확 풀어진다. 특유의 고소함 뒤에 오는 미묘한 단맛이 채소의 향긋하고 톡 쏘는 향미와 어울려 술꾼의 숙취를 없애 준다. 

국도 물론 일품이지만 이 생선의 진수를 느끼려면 회로 맛봐야 한다. 복어의 살은 눈같이 희고 광채가 난다. 넓은 접시에 종잇장처럼 얇게 저미어 펼쳐놓으면 얼마나 맑은지 그림이라도 그려 넣어야 할 성 부른다. 솜씨 좋은 요리사가 회를 쳐 놓으면 투명하여 마치 아무것도 없는 빈 그릇처럼 보인다. 

향은 진하지 않고 담담하다. 그러면서도 맛이 심심치는 않아 천하일미이다. 

장미에 가시가 돋듯 복어에는 독이 들어있어 다루는 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조금만 남아있어도 치명적이므로 '복어 한 마리에 물 서 말'이라는 속담처럼 독을 제거하려면 물로 충분히 씻어내야 한다.

투명할 정도로 얇게 썬 복어회

일부 미식가는 맛의 정수를 제대로 느끼려고 회에 아주 미량의 독을 일부러 남겨두며 즐기기도 한단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극찬하였다는 그 맛은 '혀가 살짝 쌉쌀하고 까슬까슬해지는 감각'이다.

복어회로 유명한 청주 모식당에서 나도 그 맛을 본 적이 딱 한 번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왔다. 함께 회를 먹던 일행 대부분도 약간이나마 경험한 것 같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하지만 복어회에 진짜 남아있던 독성분 때문인지 아니면 지레 겁을 먹어 생기는 뇌작용인지 나로서는 지금도 단언하기 어렵다.    당시 요리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으니 낭설에 불과하리라 믿어야겠지만. 

 


‘이식위천 以食爲天-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오죽하면 한자어로 식사라 했겠는가! 중국인은 책상을 뺀 네발 가진 짐승, 비행기를 제외한 날개 달린 동물은 다 먹는다 할 정도로 음식에 열성이다. 

이처럼 수많은 요리가 발달한 중국에서도 최고로 치는 8가지 진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원숭이 골 요리이다. 야생 원숭이의 보호 차원에서도 요리 방법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도 현재 이 음식은 사라졌다. 광둥성 지역에는 식당이 성업 중일 때 원숭이를 가두어 두었던 우리가 아직도 남아있다. 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주인은 손님을 이 우리로 모셔가 맘에 드는 놈을 고르게 한다. 이들 포식자가 나타나면 수십 마리의 원숭이는 자기가 간택되지 않으려고 우르르 구석으로 몰려가 잔뜩 웅크려 숨는다. 그러다 일단 한 마리가 선택되면 나머지 원숭이들은 앞다투어 희생양의 등을 떠밀어 문쪽으로 내보낸단다.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이자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힌두교도의 성지이다. 이곳에서 화장하여 뼈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내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신자들의 믿음 때문이다. 죽음의 도시임에도 생명은 여전히 태어나서 삶을 계속 이어주는 그네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발가벗고 물구나무를 서거나, 긴 수염을 늘어뜨리고 경전을 읽거나,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해대거나, 갓난아기를 둘러메고 관광객을 쫓아다니거나 온갖 천태만상의 짓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말로만 들어온 난장판, 글로만 읽어 온 아수라장터가 바로 여기가 아닐까? 누구 하나 가만히 있지 않지만 무엇 하나 달라지지도 않는다. 가까이에서 보면 혼돈이 밀려오고 멀리서 보면 정적이 흘러간다.

인도만 생각해도 카오스가 저절로 떠올려지는데 하물며 '인도의 블랙홀'은 더 언급해 무엇하겠는가.

그 바라나시를 가 보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과제였다. 

인도의 블랙홀 바라나시


어느 겨울  미뤄둔 숙제를 해치우려고 드디어 바라나시로 향했다. 

여행 둘째 날 저녁인가 한 허름한 현지 식당에서 식사 전에 종업원이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잽싸게 마셨다. 술이 고팠던 관계로 집사람 몫까지 연거푸 두 잔을 홀딱 마셨다. 항아리 소주고리로 증류한 전통 소주에 테킬라를 섞은 듯 헤아리기 어려운 미묘한 맛이었다. 

밀주 제조 현장

때 마침 빈 속이다. 금방 짜릿한 감각이 울대를 지나 식도를 타고 위까지 줄줄 내려간다. 곧바로 뜨거운 기운이 구석구석 퍼지더니 온몸이 싸해진다. 취기가 가슴에 차오르다가 팽 돌며 머리로 올라간다. 몸이 붕 뜨고 살짝 어지럽다. 예의 '혀가 살짝 쌉쌀하고 까슬까슬해지는 감각'까지 찾아온다. 

아차 싶었다! 

종업원에게 술의 상표를 물어보니 여염집에서 제조한 걸 사 왔기에 이름은 모른단다. 밀주인 셈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들은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싸구려 밀주를 마시고 인도에서 100여 명이 사망'이라는 보도가 새삼 기억에 떠오른다. 인도 도착 후에도 현지 언론이 '어제 동북부 아삼주에서 무허가 술을 나눠 마신 차 농장 근로자 가운데 84명 이상이 사망했다'라고 연이어 뉴스를 내보낸 터였다. 

같이 여행하는 일행을 둘러보니 아무도 마시지 않고 잇따라 두 잔을 비운 나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고는 자기들 술잔을 슬며시 내게 떠밀어준다.     

 

    

일본 속담에서 '복어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후지산을 보여주지 마라'했다고

인도에서도 '밀주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바라나시를 보여주지 마라'하지는 않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저지른 일, 나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일행들의 나머지 공짜 술까지 다 마셔버린다.                  



그 날밤 바라니시 화장터 신세를 지고 갠지스 강에 재로 뿌려지는 불상사는 다행히 면했지만 입안이 온통 텁텁한 채로 잠들기 전까지 조마조마하며 지내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한동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도의 한숨'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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