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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Dec 28. 2021

40년 동안 끄떡도 없는 국산품

흔히 말하기를 ‘이가 아파 치과에 갔더니 펜치로 잡아 뽑았다.'라고 한다. 둘 다 지렛대 원리에 바탕을 둔 편리한 기구이지만 발치에 사용하는 의료 기구는 펜치 pinchers가 아니고 포셉 dental forcep이라 부른다. 우리 손이 너무 커서 세세한 것을 집어내지 못할 때나 한꺼번에 대상물을 움켜쥐기 어려울 때 다루는 기구이다. 포셉 모양과 접촉면은 각 치아 형태에 맞게 여러 가지로 디자인되었다.

하악 전치용 포셉


나는 치과 개원 초기부터 몇 나라 제품을 구입해서 40년도 더 만져왔다. 미국, 독일, 일본이 주로 포셉을 만들어 파는 나라였다. 물론 국산품도 가지고 있다.

치아 겉면인 법랑질(Enamel)은 인간 신체에서 으뜸으로 단단한 부분이다. 굳기가 6∼7°나 되는 굉장히 강한 물질이다. 광물로는 석영이 비슷한 굳기이고 옷을 꿰맬 때 쓰는 강철 소재의 바늘 경도와 거의 흡사하다. 쇠가 무척 견고해 보이나 이렇게 댕돌같은 치아를 수없이 옴켜잡다 보면 언젠가는 포셉의 접촉면이 무뎌지고 변형이 온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격이다.

 

재미 삼아 기구면이 닳지 않고 오래 버티는 나라별 순위를 매겨주었다. 대충 따져보니 일본제는 10년 만에 표면이 우그러졌다. 미제는 20여 년, 독일제 포셉은 최고로 탄탄하여 30년가량 사용하니 그제야 이가 나가기 시작했다. 선진국 제품이라면 다 같아 보여도 일제는 독일제에 비하면 수명 차이가 많이 났다. 

한국 제품은 40여 년 동안 한 군데도 일그러짐 없이 아직도 포셉의 날이 애당초 그 모습 그대로이다.



지난가을 시내 성안길에 나갔다가 청주에 내려온 아들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몇 해 전에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리 제법 사회인의 티를 내었다. 수줍게 내민 명함을 받아보니 직책이 '양조사'라 적혔다. 관심을 보여주었더니 '현재 김포의 모 맥주회사에서 일하는 중이며, 열심히 배워 내년에는 6,000L 급의 맥주 설비를 도입하여 고향에 크래프트 비어 회사를 설립하려 합니다'라 했다. 참으로 대견하였다.

국내에는 두 맥주 회사가 너무나 오랫동안 독과점 형태로 지내왔기에 품질의 개선이나 향상에 힘써오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국산품의 평가도 시원찮았다. 모든 상품이 그러하겠지만 맥주도 향미를 끌어올리는 데는 경쟁이 필요하다. 다양하고 치열한 다툼 속에서 질의 향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를 잘 탔는지 요즘 들어 몇몇 국산 맥주 맛이 상당히 복합적이고 고급스러워졌다. 클라우드, 테라의 경우 해외 어느 제품과 견주어도 싸움이 될듯싶다. 아이 친구 같은 젊은 양조사들이 부지런히 공부하여 빠른 시일에 풍미를 국제 수준까지 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외국 특히 일본 회사에 일찌감치 내어 준 국내 시장을 되가져 오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하실은 사시사철 온도가 일정하여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겨울철에는 습도도 낮고 온도도 적당하게 선선하여 별 문제가 없다. 여름 철은 반대로 습도가 높고 바깥 기온이 사십도 가까이 육박하기에 결로라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외부와의 온도차가 커져 물방울이 맺히면 곰팡이가 슬고 퀴퀴한 냄새가 난다. 여기서 못 잡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자연 현상을 이겨내기는 만만치가 않다. 

작년 봄에 이사 온 우리 집의 지하실에도 여름철이 되면 이슬이 맺혀 이를 제거하는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했다. 몇몇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제습기를 활용하는 편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했다. 업소용 제습기 2대를 돌리면 금방 습한 기운이 사라지고 침대 시트까지도 뽀송뽀송해진다.

일제 습도기들- 수치가 제각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틀어 놓기는 부담이 된다. 전기 절약을 위해 사방에 습도계를 달고 결로현상 방지작전을 짜야한다. 이제껏 일본 상품 4개를 지하 여기저기에 놓고 재 왔는데 수치가 서로 달라 궁금했었다. 같은 지하더라도 위치가 다르니 각각의 습도계마다 눈금 차이가 당연히 나리라 생각하다가 하루는 실험 삼아 모두 한 군데 모아놓고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동일한 위치에서 쟀는데도 4개 각각 전혀 다른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습도가 낮게 표기된 제품은 38%, 그다음이  42%, 45%를 보이는가 하면 최고 높게 나타난 것은 무려 68%로 표시되는 등 가늠조차 어려웠다. 적어도 3개, 아니면 전부 다 엉터리라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제일 낮은 숫자와 높은 것을 제외하고 중간값 2개의 평균을 내어 43.5%로 어림짐작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일본 제품의 정확성과 정밀함을 의구심 없이 맹신해 온 듯하여 낯이 뜨거워졌다. 현재는 가장 믿을만한 독일제 습도계를 구입하여 중심을 잡는다.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한국제 포셉이 40 년이 지나도록 접촉면의 변형도 없고 날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기뻐하실 애국자님도 분명 계실 것이다. 사정은 이러하다.

국산 포셉을 갓 사 온 날 세척하려고 물에 담가 놓았더니 '술푸게도' 다음 날 녹이 슬어버려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고 더 이상 쓰지 않았을 따름이다.



PS.

현재는 한국산 포셉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국산품이 나온다면 일본제 정도는 가볍게 능가하는 상당한 수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40년 전의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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