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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Dec 22. 2021

참으로 희한한 미국 사람들.


"미국사람들 참 희한하네. 왜 야밤에 사용하라지?"

집사람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자꾸 가로저었다.     

"뭔데 그래?"

나도 오랜만에 밟은 미국 땅이 새로웠고 신기하였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으뜸인 나라이므로 조금도 달라질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었다. 베트남이나 중국 같은 조금은 뒤쳐진 나라만 더 발전하고 변해가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10  만에 만난 이곳 많이 변했. 도로나 교통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내면세계도 과거와 달랐. 각종 시설에는 청결함, 편리함 거기에 더해 약자에 대한 배려까지 담뿍 담겨있었다. 미국인 일상에 여유까지 덧붙인 자부심이 흠뻑 묻어났.     



"저기 안내판을 봐요. '밤 10시 이후에나 그릇을 닦으라'잖아. 오밤중에 개수대를 사용하라니 이게 말이나 돼?  정말로!."

DISHWASHING  AFTER 10 PM

오늘은 안텔로프 캐년에서 워낙 늦은 시간에 출발하였기에 이곳 캠핑장에 저녁 무렵에나 도착했다. 서둘러 캠핑카를 세팅하고 차 안에서 음식을 간단히 차려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주위는 어둑어둑하였다. 집사람이 가리키는 차창밖을 쳐다보니 개수대 벽 안내판에 쓰인 굵은 글씨의 대문자가 아래와 같이 어슴프레 보였다.

'DISHWASHING 

 AFTER 10 PM'








우리가 오늘 묵는 곳은 애리조나주 모뉴먼트 밸리 근처의 KOA 캠핑장이었다.

캘리포니아부터 줄곧 캠핑카(미국에서는 모터홈 Motorhome이라 한다.)를 끌고 다녔지만 아무 데나 주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시설이 잘 갖춰진 캠핑 사이트에 대부분 머물렀다. '안전제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물과 전기가 필요했다. 물은 탱크에 비축한다지만 전기를 쓰려면 차내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그 소음이 만만치 않아 사용하기가 엄청 불편했다. 그런 연유로 한국에서 예약해 둔 전용 파킹장에서 주로 머무르고 꼭 필요한 경우만 한적한 곳에서 지냈다. 차 내부에 주방설비와 싱크대가 갖추어져 있었으나 반납 시 뒤치다꺼리가 번거로워 설거지는 가능하면 외부에서 했다.     



"그러네. 이상한 양반들이네. 한밤에 그릇을 닦으면 시끄러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무지 줄 텐데...."

"설거지하는 것도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잖아. 미국 사람들은 귀보다 눈이 더더욱 귀한가 보지!."

"완전히 반대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맞아. ㅋㅋ. 여기 미국은 주유할 때 녹색주유기가 경유고 검은색이 휘발유잖아? 그것도 우리랑 완존 반대야. ㅎㅎ"     

우리는 고분고분한 아이처럼 설거지감을 차 안에 쌓아둔 채 어서 빨리 10시가 오기를 바랐다.




 모터홈 내부에서 바라다본 모뉴먼트 밸리


이렇게 한참을 이바구를 날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창문 밖 저편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8시 30분이나 되었을까 일러도 한참 이른 시각에 웬 동양인 둘이 식기를 개수대 가득 올려놓고 닦고 있었다.  "쟤네들 좀 봐. 미친 거 아니야?. 1시간 반이나 앞질러서 개수대를 사용하네."

"글쎄 말이야. 누구는 냄새 풍기는 반찬그릇을 이 안에 두고도 얌전히 기다리는데." 용감하게도 반시간 이상이나 딸그락 거리던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우리 둘은 규정을 준수하는 모범시민이 되기로 작정했다.

" 인간 아마 중국인  거야. 아까 낮에 셔틀버스에서도   듣는 중국인들 보았잖아."     



그날 국립공원 내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상황이 다시금 떠올랐다.  

버스에는 '차 내부에서 음식물을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여럿 붙어있었다. 그러다 중국어만 구사하는 부부와 영어를 쓸 줄 아는 아들 하나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버스에 오르더니 햄버거와 콜라를 꺼내 먹는 것이었다. 운전기사가 일어나 부부에게 제지를 하였건만 중국어로 뭐라는지 대꾸를 하면서도 계속 먹어 댔다. 영어가 통하는 아들에게도 기사가 따로 언질을 주었으나 그네는 막무가내였다. 기사는 강제로 내리게 할 권한이 자기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만 한두 번 으쓱하고는 운전석에 되처 앉았다. 당연히 차는 멈춰 선 채였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부 돌려가며 먹고 마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끝장을 내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혀를 끌끌 차며 기다릴 도리 밖에 없었고.


KOA(Kampgrounds of America)는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500개 이상의  캠핑장을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로 시간을 때우다 보니 마침내 밤 10시에 다다랐다. 오늘 하루 일정이 원체 빡빡했기에 졸음이 눈썹 밑까지 밀려왔으나 우리는 약간 더 기다렸다. 아직 자지 않는 주위 캠핑족 눈에 띄지 않도록 좀 더 미루기로 했다. 미국인에겐 눈이 소중하다니까!

참고  참아 최대한 늦춘  그릇을 부여안고 조용히 개수대로 갔다. 역시 미국이라 싱크 시설은 고급지고 뜨신 물도 잘 나왔으나 웬일인지 전등불이 켜지질 않았다. 금방 9시 무렵에도 들어왔던 전기가 이상하게도 끊어진 모양이었다. 어두컴컴한 별빛 아래서 어렵사리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오니 11 가까이가 되었다. 무척 피곤했으나 규범을 엄수하는 선진시민이  만족감에 가슴이 충만한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규범을 엄격히 따르는 모범시민인 나는 아침 일찍 캠핑장 곳곳을 시찰하듯 우아하게 둘러보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성수기여서 100여 캠프 사이트가 만원이었다. 우리 집(?) 주위에도 크고 작은 모터홈이 꽉 메워 빈틈이 없었다.

캠핑카로 들어오기 직전에 나를 어젯밤부터 '선진국 시민'으로 만들어 준 그 규칙을 자랑스럽게 되새기려고 개수대 안내판 가까이 다가가서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어젯밤에 차창 밖으로 내다볼 때는 어두워서 자세히 못 보았지만 개수대 지붕을 받치고 있던 시멘트 기둥이 안내문의 단어 하나 ‘NO’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NO DISHWASHING

        AFTER 10 PM’     

NO DISHWASHING AFTER 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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