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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Jan 18. 2022

독일 기차는 왜 이리 늦나? I - Spät...

여행기


2021년 10월 16일 오후 덴마크 오르후스 역.     

오전 10시 53분에 독일 함부르크 역을 떠나 오후 3시 20분 덴마크의 오르후스 역에 닿을 예정이던 직행 열차는 내내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1시간 가까이 지체되어 오후 4시 18분 마침내 도착했다. “4시간여 거리를 달려오는데 정확히 58분이나 늦게 도착했네.”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막내아들에게 미안하여 이렇게 말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1시간 이상 기차가 지연되면 티켓 값을 일부 반환해야 하는 법이 있어서 그래도 2분 남겨놓고 도착한 거야요.”라고 한다.

이처럼 독일 기차에서 정시 도착은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과장되게 말하면 정시에 출발하는 열차는 최초 출발역에서 가끔 있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다 보면 간혹 술에 관한 전문 외래어를 만나게 될 수 있다. 혹자는 와인병의 라벨에 "late harvest'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당도가 더 높아질 때까지 한껏 기다렸다가 포도를 수확함을 뜻한다. 물론 과숙한 상태에서 딴다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고 애초에 힘이 있는 포도여야만 가능하다. 말 그대로'늦은 수확'이라는 의미지만 달달한 와인이라 표시이다. 스위트 와인 Sweet wine으로 읽으면 되겠다.

독일에서는 와인 라벨에 Spätlese라고 적혀있고 Spät이 '늦는다'는 뜻이다.




2016년 8월 어느 날 저녁 독일 프랑크푸르트 역 티켓 창구.

프랑크푸르트-푸라이 부르크: 열차, 푸라이 부르크-콜마르:택시


저희 기차가 연착되어 스트라스부르행 기차를 놓치신 것에 사과를 드립니다.  대안으로 일단 오후 7 30 출발하는 스위스 바젤 Basel 기차를 타세요. 도중에 프라이부르크 Freiburg에서 내려  앞에 서있는 아무 택시나 잡아 타고 콜마르 Colmar 가세요.  증서를 보여 주면 택시 운전사가 공짜로 원하는 곳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플랫폼 7번입니다.”

역무원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내어 주는 티켓을 받아 들고 시계를 흘끗 보니 이미 7시 30분. ‘젠장 지금 기차가 떠날 시각인데 이제 주면 어떡하란 말이야.’라고 불평할 틈도 없이 짐을 둘러업은 채 뒤도 안 돌아보고 7번 플랫폼으로 내처 달렸다.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는 기차역도 꽤 커서 이리저리 돌고 돌아 숨을 헥헥 거리며 2층의 플랫폼에 도착하니 7시 35분, 기차는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고 놓쳤구나. 할 수 없지 뭐.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어질러졌지만 일단 포기를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지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마저 생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차가 떠나가서 썰렁해야 할 곳에 사람들이 제법 웅성거렸다. 휑하니 찬바람이 몰아쳐야 할 것 같은 플랫폼에는 짐을 가진 이들이 여유롭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아참, 여기는 독일 기차역이지!’라는 생각이 번뜩이고 나는 이내 느긋해졌다. 그리고 여유 있게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발차 시각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25 Minuten Spät... '    ('25분 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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