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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Mar 02. 2022

부숑 Bouchon의 추억

술 이야기

'시뭔. 네가 물어 본 청주 프랑스 식당 이름 '메 부숑 Mes Bouchons' 말이야. 부숑에 s를 붙여 복수複數로 쓰는 건 어색해. 만약 그 레스토랑 주인이 '$%#%...&*2&^' 라고 생각 했다면 괜찮지만...' -부숑은 프랑스 단어로 코르크(마개)를 뜻한다.-

그동안 와인에 나오는 프랑스 단어의 뜻을 잘 모르겠거나 발음이 어려울 경우 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생기면 가끔씩 스위스 친구인 에티엥에게 이렇게 이메일로 물어보곤 해 왔다. 이번에는 내가 자주 이용하던 프랑스 식당의 상호명에 대하여 그에게 질의를 한 것이다. 물론 구글링 Googling을 하거나 불어 사전을 찾아 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불어의 격변화는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서로의 안부도 물을겸 해서 메일을 주고받은 지가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부숑과 나와의 첫 만남은 그 보다 한참 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크라운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겨우 걸어다닐 때의 일이니 60년도 더 전前의 일이다. 선친先親께서는 당시 대전에서 코르크 마개(부숑)를 제조하는 사업을 하셨다. 공장이라곤 하지만 지금 같은 그런 복잡하고 커다란 곳을 상상하면 안 된다. 6.25 전쟁이 끝나고 불과 몇 년 후의 상황이 아주 열악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 공장에는 '한일 왕관 콜크 공업사'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고 주 제조 품목은 왕관(Crown)과 코르크(Cork)였다.

부숑(코르크)


기억이 나는 대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의 공장에 대하여 기술해 보겠다.

직원이  양철판(추정)을 들고 있다.

먼저 왕관은 병뚜껑을 말하며 양철이라고 부르던 재료로 만든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양철판- 안팎에 주석을 입힌 얇은 철판-이 생산될 리 만무했다. 그 대신 주로 미군들이 마시던 콜라나 환타 같은 양철로 된 캔을 넝마주이들이 수집하여 우리 집 뒤 공터로 들여왔다. 살림 집 앞엔 마당이 있었고 뒤편에 공터와 공장이 있었다.

그러고나면 일꾼들이 모아진 캔의 위아래 원형 부분을 작두로 잘라낸다. 그 후 따로 남게 된 휘어진 몸통 부분을 곱게 편 후 양잿물이 들어있는 큰 솥에 넣고 끓인다. 한참을 끓여내면 캔의 양철판에 인쇄되어 있던 상표는 흐믈흐믈해지고 아주머니들이 수세미로 문질러서 이를 깨끗이 제거한다. 이 양철 판을 말리고 난 뒤 옵셑 기계에 걸어 주문받은 회사의 로고를 인쇄한다. 주문처는 대개 규모가 제법 큰 소주나 맥주 회사였을 테지만 지금 정확히 기억은 못한다. 한 판에 십여 개씩 병 뚜껑 모양의 로고가 인쇄된 양철판을 묵직한 휠이 달린 프레스 기계에 올려놓고 핸들을 돌리면 왕관 모양의 병뚜껑이 하나씩 떨어져 나온다. 더불어 일하는 아저씨들의 손가락도 아주 가끔씩 잘려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었을 게다.



그리고 또 하나의 품목은 코르크 마개- 프랑스어로는 정확하게 bouchon de liège라고 한다.-였다.

집 앞마당 한 켠에는 두꺼운 참나무 껍질- 굴피라고 불렀다-이 어린 나에게는 그야말로 산처럼 높게 쌓여 있었다. 굴피 더미에 올라가서 놀다가 싫증 나면 그걸 가지고 집 한쪽 편에 아지트를 지어서 그곳에서 숨어 지내곤 했다.

참으로 귀한 사진이다. 아마도 캔의 휘어있는 양철판을 곧게 펴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참나무 껍질을 일꾼들이 산에서 벗겨오면 일단 뜨거운 물에 삶는다. 삶은 굴피를 볕에 잘 말리고 난 후 원하는 코르크 마개의 규격대로 깍두기처럼 적당하게 자른다. 잘라낸 굴피 조각을 가늘고 긴 칼이 달린 기계 옆쪽에 물려 놓고 발로 페달을 밟아 칼을 회전시키면 한쪽이 가늘고 다른 쪽은 굵은 그런 원뿔형 코르크 마개가 밑으로 부수수 떨어진다. 하지만 요즘 마시는 와인의 코르크 마개처럼 정교하거나 질이 좋지는 않았다. 참나무 껍질의 두께가 프랑스의 리무젱 처럼 그렇게 두껍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벌레가 군데군데 파먹어 어린 내가 봐도 조잡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마도 참기름병이나 간장병 마개로 쓰였음직 하다.

한 편 코르크를 원형으로 얇게 잘라 양철 왕관 속에 덧끼워 병과 마개 사이의 밀폐를 도와주는 용도의 제품도 만들었다. 요즘은 맥주병 마개 내부를 보면 코르크 대신 플라스틱 막이 끼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메 부숑', 식당 이름 참 이쁘게 잘 지었어요. 그런데 내가 아는 프랑스 사람이 그러던데, 가게 이름 부숑 뒤에 s가 들어가면 뉘앙스가 어색해진다던데... 혹시 알고 계셔요?"

며칠 전 와인 모임으로 그 레스토랑에 갔을 때 주인장 부부가 우리 일행에게 인사하러 왔길래 내가 짐짓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에티엥이 알려 준 정답 바로 그대로  '$%#%...&*2&^'였다.


"예, 그 이유는 앞으로 가게를 점점 더 크게 키워서 이 레스토랑 말고도 같은 '메 부숑' 이름으로 몇 개이고 더 늘릴 작정으로 '-s'를 달았습니다."

참으로 똑똑하고 유능한 주인장 겸 세프였다.



p.s.

부숑(Bouchon)의 또 다른 의미는 프랑스 남부 리옹시에 있는 식당+주점의 한 형태이다. 격식이 있거나 화려함보다는 주인과 친숙하게 어울리며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간단한 음식을 먹는 곳이다. 와인은 특별히 까라페 carafes라고 하는 디캔터에 담겨 내온다.

A bouchon is a type of restaurant found in Lyon, France, that serves traditional Lyonnaise cuisine, such as sausages, duck pâté or roast pork. Compared to other forms of French cooking such as nouvelle cuisine, the dishes are quite fatty and heavily oriented around meat.[citation needed] There are approximately twenty officially certified traditional bouchons, but a larger number of establishments describe themselves using the term.

Typically, the emphasis in a bouchon is not on haute cuisine but, rather, a convivial atmosphere and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ow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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