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
"우리 덕산 약주는 자체 발효 만으로도 알코올 도수 16도까지 나옵니다." 와인 스피릿 수강생들과 함께 진천의 덕산양조장에 견학차 갔을 때의 알코올 도수에 관한 사장의 말에 내가 보충 설명을 이었다.
"네, 그렇군요. 일반적인 와인은 알코올 15도 이상이면 효모가 죽게 되어 더 이상 발효가 되지를 않습니다."
와인은 셰리나 포트에서처럼 증류주의 첨가 없이는 16도 이상을 올리기가 어렵다. 약주가 이렇게 알코올 도수를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담금의 횟수를 늘려주기 때문이리라.
"원장님, 저희 양조장에 언젠가 한 외국인이 와서 이 약주를 시음해 보더니 어떤 서양술과 맛이 비슷하다고 술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까먹었어요. 혹시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시음이 끝난 나에게 사장이 넌지시 물어보았다.
"네, 나도 마침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스페인의 셰리주 '아몬티아도'와 흡사하네요."
그러고는 메모지에 'Amontillado'라고 스펠링까지 써서 드린 기억이 있다.
스페인의 헤레스 지방의 특산품인 셰리주는 주정강화 와인이다. 와인에 브랜디(증류주)를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게 만든 와인으로 만드는 방법에 따라 피노와 올로로소로 나뉜다.
이중 피노 계열의 술은 알코올 15도로 강화하여 숙성 중에 와인 표면에 플로르 Flor라는 효모층을 생기게 하여 산화를 방지하고 와인의 신선함을 유지시킨다.
이에 반해 올로로소 계통의 와인은 플로르가 안 생기게 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18도 이상으로 알코올 함량을 높이고 공기 중에 와인을 노출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와인은 산화되어 색이 짙어지고 견과류 풍미를 강하게 내게 된데.
아몬티아도는 피노로 6년 숙성하다가 올로로소 스타일로 변환시킨 셰리로 피노와 올로로소의 중간으로 보면 된다.
그러면 서양술 '아몬티아도'와 우리 술 '약주' 이 둘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나는 '야생 효모'라는 끈으로 엮어보았다.
한약재 내음이 풍기는 누룩의 맛(누룩취)인 약주와 플로르라는 자연 효모가 내려앉아 향이 밴 셰리의 맛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아가베로 만드는 멕시코 술 풀케(pulque)와 쌀로 빚은 막걸리는 뿌옇고 탁한 색으로, 쥬니퍼 베리(Juniper Berry, 杜松)를 첨가시켜 송진 냄새가 나는 서양의 술 '진 gin'과 소나무의 새순을 사용한 우리 술 '송순주(松筍酒)'는 소나무라는 끈으로 엮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포트와인과 과하주, 압생트와 애주 등등의 서로의 특징을 엮어 비교 시음하면 되겠다.
비교 시음은 왜 필요한가?
술을 시음하게 되면 그냥 마실 때 보다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어 제대로 음미를 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시음 과정이 반복적인 과정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잠재된 습관으로 몸에 배게 된다. 인간의 감각을 언어로 표현하면 기억에 더욱 오래 남게 되며 다른 이에게도 그 술의 인상이나 특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술의 생산, 유통, 판매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개개인이 시음에서 느끼는 단맛, 신맛, 쓴맛 등 맛과 향에 대한 반응은 아주 주관적이다. 술의 성분에 대한 민감도는 개인마다 다르고 그 경험도 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대상을 놓고 시음을 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것이 더 단지, 어느 편이 더 신지 어느 쪽이 더 쓴지 의견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음 경험을 계속 쌓다 보면 전문가들이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참조하여 비교 시음을 않더라도 특정 성분의 강하고 약한 정도를 감정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균형(Balance)과 조화란 무엇인가?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희석된 맛과 향은 대개 저품질의 술에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강한 풍미를 가진 술이 반드시 품질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술에 과일이나 곡물 등 원재료의 풍미나 당분만 있다면 쉽게 질리게 된다. 산이나 탄닌만 있다 해도 불쾌하거나 떨떠름한 맛을 내게 된다. 좋은 술은 풍미와 단맛, 쓴맛, 고소한 맛, 구수한 큰 맛 등 복합적으로 맛과 향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균형 잡힌 맛과 향이 한동안 지속되는 여운까지 있으면 뛰어난 술이라 할 수 있다.
술꾼들 ‘평등’ 외면, 치우친 사고에 충격.
술은 당분과 효모, 물만 있으면 적당한 환경 아래 주조를 할 수가 있다. 원료가 무엇이든 누가 만들었든 다 같은 발효 과정을 거쳐 이산화탄소와 열을 동반하여 자유롭게 알코올이 생성되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사회와 아주 흡사하다
서로 다른 재료로 빚으면 물론이지만 같은 원료를 사용한다 해도 술을 만드는 공정과 환경이 다르면 색, 맛과 향이 상이한 술이 탄생하게 된다.
로마네 콩티 와인이 만들어지는 부르고뉴의 포도밭의 가격은 럼이 생산되는 바하마 군도의 어느 사탕수수 농장에 비해 수천만 어쩌면 수억 배 더 비싸기도 할 것이다.
같은 보리에서 만들어진 맥주라 해도 제조 방법에 따라 아일랜드의 스타우트는 흑색, 영국의 에일은 금색 그리고 체코의 필스너는 흰색(액체의 경우 무색을 흰색으로 표현)으로 나타난다.
보드카의 원료는 주로 곡물이지만 나라와 지방에 따라서는 과일과 감자, 심지어는 채소까지도 사용한다.
이렇게 제조하는 환경, 방법과 원료에 따라 그 술 자체에 성격이 부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술마다 개성이 다른 것이지 술 자체가 귀하고 천하거니, 이롭고 해로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의 술꾼들은 부드럽고 오래되고 비싸면 최고로 친다. 서로 개성이 다른 술만이 존재할 뿐인데도...
술은 인간이 마셔주어야 비로소 그 존재를 보여주게 된다. 그 가치를 발휘할 시기가 있는 것이지 아무 때나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숙성의 개념으로 인하여 컴컴한 지하실의 저장소나 차가운 냉장고 안에서 갇혀서 발휘할 시기를 놓쳐버리고 스러져가는 술들의 운명은 너무 가혹하다. 물론 막걸리나 와인과는 달리 소주나 브랜디로 마치 초저온 캡슐 속에 잠든 냉동인간처럼 그 시기를 연장시키려 해볼 수는 있어도 언젠가 존재를 나타내야 하는 순간 모든 술에 다시 적용되는 자연법칙이 있다.
술도 사람처럼 태어나서 늙으며 병들고 마침내 죽는 생로병사에 따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생각 차이
‘포도밭과 위스키와 와인'의 그림을 놓고 둘씩 엮어 보라면, 서양 사람들은 같은 주류인 위스키와 와인을 같이 묶는다. 그런데 동양 사람은 많은 경우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을 와인과 한데 묶을 것이다. 실제 해본 것은 아니고 심리학자의 실험 결과를 술에 접목시켜 유추해 본 것이다. 이 실험으로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훨씬 관계 개념이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다. 어떤 배경을 보거나 안 보는 것에서도 동양인과 서양인은 다르다. 사람을 환경 속에서 보는 쪽이 동양인이라면, 사람을 환경과 독립시켜 보는 쪽이 서양인이다. 동양인은 배경을 잘 기억하는데 반해 서양인은 앞의 사람만을 주로 기억한단다.
적어도 이천 년 동안 동서양은 다르게 생각해 왔다. 그렇다면 이 둘은 만나 이야기하며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 서로에게 배울 것은 없는지, 서로 섞어 볼 것은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미 서구화되어 있다. 언어와 개념이 곧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언어의 예를 '철학'이라는 단어를 통해 들어 보자. 철학은 막바로 영어의 Philosophy와 연결된다. 영어뿐 아니라 불어의 philosophie, 스페인어의 filosofia와도 직결되며 서구인과 똑같은 내용으로 단어를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시기에 서양문물을 들여오기 위해 의미를 새로 부여한 기존 어휘나 새로 만든 조어에 무임승차한 덕분?으로 이렇게 단어뿐 아니라 우리의 개념도 곧 서구화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것에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동양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술의 영역에서 보면 동양과 서양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사고방식으로 빚고 마셔 온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서양술이 대세가 되었고 단어와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 술에 오히려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서로의 개념이 달라 완전한 대응이 불가능하므로 따라서 이제는 동양 술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동서양 술에 대해 서로 비교를 통한 대화를 하여야 같은 점과 다른 점, 취할 것과 버릴 것,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알아내고 또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이 바로 한국의 술이다.
蛇足: 아래 정세근 교수(철학 충북대)의 글 '균형과 조화... 비교철학은 동서양의 전통을 만나는 길'을 패러디했습니다. 같이 보아 주면 인문학 발전에 함께 기여하시는 거구요.
https://inmun360.culture.go.kr/content/357.do?mode=view&cid=2368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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