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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Jan 04. 2022

혹시 엘베강의 추억을 간직하고 계신가요?

술 이야기

런던에서 콜레라가 크게 발생했습니다.

콜레라의 전염원이었던 수도 펌프

요즈음이 아니고요. Covid-19'  세계를 강타하기 100년도 훨씬 전인 1854 또다시  돌림병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원인을   없었기에 런던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저 죽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사  스노우 (Dr. John Snow) 물을 통해  역병이 퍼진다는 생각을 해낼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던 것입니다.

오염원이었던 런던 브로드 윅 거리에 있던 수도 펌프를 폐쇄한 후 곧 콜레라가 잡히기 시작하였고 런더너들은 그를 기념하여 그 지역에 '존 스노우'라는 펍 pub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한 공적을 기려 술집을 만든다는 아이디어 참 기발하고도 기특합니다.




존 스노우가 있는 소호 Soho는 런던 중심부의 작은 지역이지만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특색 있고 유명한 펍과 바가 많이 있습니다.

The French House.  펍 왼쪽은 한국식 주점 '소호 포차'

그중 하나인 '더 프렌치 하우스 The French House'는 2차 세계 대전 때 저항을 위한 프랑스인들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요즘도 이곳에서는 휴대폰이 금지되고 텔레비전도 없습니다. 런던 한 복판에서 프랑스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곳이지요. 30여 종 이상의 샴페인과 사이더(Cidre)를 잔술로도 마실 수 있으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지요.

'드 헴스 De Hems'는 1,2차 세계 대전 때 추방된 네덜란드 저항군들의 집합소였습니다. 딸기향이 가득한 프루리 Fruli 맥주와 귤껍질 내음의 화이트 비어를 마시면 마치 네덜란드에 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몸이 성하고 싶으면 네덜란드 축구팀 경기가 있을 때는 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혹시 펍 크롤(Pub Crawl)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영어 단어라서 그렇지 우리나라 주당들이라면 본의 건 아니건 간에 2차, 3차 다니면서 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우리말로 하면 ‘술집 순례’ 라고나 할까요?

하루 아니면 한 나절 동안에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마셔대는 것을 영국에서는 펍 크롤 혹은 펍 크롤링(Pub Crawling), 미국에서는 바 호핑(Bar Hopping)이라고 한답니다.

말 그대로 펍 크롤은 몇 차례 술집을 들려서 홀짝이다가 나중에는 취해서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는 뜻이고 바 호핑은 메뚜기(Grasshopper)처럼 뛰어다니며 술집을 찾아 나선다는 뜻이겠지요.


내력이 있는 술집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유명인의 발자취가 서린 곳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펍이 많은 곳에서는 거리를 미리 정해두고 그에 맞는 곳을 찾아가 마시기도 하지요.

때로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각 정거장 옆의 펍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재미 삼아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찾아다니면 됩니다.

단지 술을 마시는데 이렇게 까다로울 것이 뭐냐고 하시면 할 말이 없지만 술 마실 또 다른 구실과 재미를 주기 위해섭니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기존의 펍 크롤 투어에 참가해도 됩니다.


나는 영국의 런던과 리버풀에서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런던에서는 역사가 있는 펍을, 리버풀에서는 비틀스와 관계있는 펍을 다니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예닐곱 집을 다녀야 했으므로  술집에서  파인트 half pint 정도만 마십니다. 이는 300cc 정도 되는 양입니다. 덩치  영국인들에게는 새발의 피이겠지만 모두 모으면 나에게는 적지 않은 양입니다. 한국과는 달리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되니 비용이 그다지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익산에서 한 번 시도해 봤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오래전 익산에서 살았을  자주 들려 맥주를 마시곤 했던 호프집을 대화중에 끄집어내었습니다. 듣고 보니  술집은 본점 외에 익산 시내  군데 동일 상호를 달고 영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순간  크롤이  올라  주점들을 들러 500cc 맥주 한잔씩 하자는 데에 재기 발랄한 친구와  자리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드디어 우리는 오송발 익산착 KTX 열차에 올랐습니다.

첫 대상은 익산역 바로 앞의 조그마한 호프집. 이름하여 '엘베강'의 원조이자 본점입니다.

허름하고 좁디좁은 입구

생뚱맞게 독일에 있는 강이름을 상호로 내세운 이 호프 집은 한 장소에서만 40여 년 가까이 성업 중이랍니다. 익산 시민뿐 아니라 경향 각지 웬만한 주당들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장소입니다.

3층 건물의 1층의 계단 옆 조각 공간에 자리한 술집은 내부가 워낙 협소해 널찍한 사각 테이블을 여유 있게 펼쳐 놓을 처지가 못됩니다.

그래서 가게 한 편 벽 쪽으로 붙인 길고 좁다란 나무 테이블에서 스탠드형 의자에 걸터앉아 마시게 되어 있습니다.

천년만년 사용해도 견뎌 낼 두께의 원목 테이블이지만 어지러히 얽혀있는 칼자국과 술꾼들의 낙서는 반세기 세월의 흔적을 보여 줍니다.

호프집 풍경을 묘사한 한 화가의 그림

술은 500cc의 생맥주만 팔고 있는데 시원함을 살리기 위해 냉동고에 통째로 보관하던 얼어붙은 케그 keg에서 맥주를 직접 내려받아 잔에 담습니다. 물론 잔도 차디찬 냉장고 안에 보관하다가 마시기 직전에 바로 꺼내 가져다줍니다.

일명 '얼음 맥주'라고 하지요.

꽁꽁 얼어 있던 컵의 손잡이가 손가락에 쩍쩍 들어붙으면 우리는 맥주 맛의 진수인 청량감의 극치를 느끼게 됩니다.

특이한 안주 오징어 입


메뉴는 노가리, 참 쥐포, 땅콩 등 소소한 것들로 채워지는데 특이한 안주로 '오징어 입'이 있습니다. 많이들 오징어 눈이라고 알고 있는 다리와 몸체 사이에 붙어 있는 도토리 만한 크기의 기관을 말합니다. 살짝 구운 후 가운데 붙어있는 검고 날카로운 손톱 같이 생긴 부분을 도려내고 먹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입은 오징어 특유의 시큼 짭짤한 대신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을 보여줍니다.


그다음은 원광대 앞 엘베강, 그리고 역으로 걸어오면서 서너 군데의 엘베강을 더 찾아내어 차수 고치기를 하고는 술이 꽤 취한 채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다음날 숙취로 고생 꽤나 하였답니다. 제대로 펍 크롤을 하였으되 제대로 행 오버에 시달린 겁니다.



이제 짜릿한 그리움이 다시금 가슴 한 귀퉁이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까닭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지금 당장이라도 같이만 해 준다면 오 년 전의 그 알싸한 낭만에 더해 또 하나의 추억을 새기고 싶습니다.

누구 안 계신가요?



p.s.

기존 '엘베강'은 옆 골목의 넓은 신식 가게로 옮겨 영업 중이며 옛 자리는 '더 호프 The Hope'로 상호가 바뀌어 성업중입니다. 

아무려나 옛날의 허름하고 좁다란 골목집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던 풍취는 더 이상 즐겨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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