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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Apr 12. 2022

마침내 술독에다 황(黃)도 태워보았지만...

술 이야기

 어느 여름날 "꺼억, 꿔. 꺼억, 꿕..." 돼지들이 술에 취해 제멋대로 소리를 내지르며 우리를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목재로 얼기설기 지어진 우리는 돼지가 이리저리 마구 부딪히는 관계로 박살 나기 일보 직전에 겨우 정상을 되찾았다. 뛰쳐나온 돼지는 양조장 전 직원이 비상소집되어 한쪽으로 몰아 가며 다시 우리에 집어넣어야 했다.

양조장에는 일꾼들과 배달부등 식구가 적잖았으므로 거기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도 많았다. 또한 술을 걸러내고 남는 찌게미도 처리할 겸 해서 뒤편에서 돼지를 길렀다.

한 여름이 오면 가끔 술이 시어져 팔지를 못하기 때문에 내다 버려야 하나 아까워서 대신 돼지에게 먹인다. 그 쉰 막걸리를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고성을 내뱉고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사육장은 양조장 건물 뒤 비탈길 아래에 위치해 집에서는 좀 거리가 있었다. 200kg 가까이 나가는 요크셔 돼지가 고함을 질러 대면 동네에 한바탕 대소동이 벌어지곤 했던 1962년 우리 집 풍경이었다.


 

이보다 100 전인 1862년, 프랑스의 영웅 루이 파스퇴르는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 한. 이로써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생명으로부터만 생긴다는 ‘생명 속생설’이 정설이 된다.

파스퇴르가 화학자로서 처음 연구했던 주제는 포도주의 부패를 막는 방법이었다. 와인 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국가 경제의 중요한 영역이다. 제1차 산업의 포도 재배부터 2 포도주 양조뿐만 아니라 3 산업인 판매와 유통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생산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포도주가 상하게 되는 일이 자주 나타나 바람에 경제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입어 왔기 때문이다.


Swan-necked flask used by Pasteur.


파스퇴르는 포도주를 산폐되게 하는 원인 미생물을 연구에 매달린 끝에 결국 찾아냈다. 그리고 발효가 끝난 포도주를 낮은 온도(60여도)에서 잠깐(30분) 가열하면 그 미생물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현재까지도 유용한 ‘저온살균법’으로 우유나 맥주 등을 주로 처리하는데 사용한다.

하지만 이 방법을 통하여 살균을 하게 되면 와인의 경우에는 맛이 변질되어 상품 가치가 없어지므로 쓰임이 제한적이다.



 

와인 병의 후면 라벨을 보면 와인에 ‘이산화황’ 또는 ‘무수아황산’이라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쓰여있다.

이산화황은 나쁜 영향을 주는 효모나 박테리아를 자라지 못하게 하여 발효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도와준다. 껍질에서 와인의 색과 폴리 페놀 성분을 추출할 때도 유용하다. 병입 시 극소량 첨가하면 산화를 방지하여 일정한 품질을 지탱하게끔 도움을 준다. 이산화황은 과일주뿐 아니라 껍질 벗긴 채소나 말린 과일 등의 갈변을 방지하고 발색을 견지하기 위해서도 흔히 사용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사용하면 유황 냄새가 나고 코끝이 아리거나 목 부분이 따끔따끔하게 느껴기도한다. 천식 환자나 알레르기에 예민한 사람에게는 더욱 심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주요 와인 생산국들은 법규에 따라 사용량을 규제하고 있으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휘발성이 강하여 산소와 접촉하면 분해되어 사라지므로 포장 야채의 경우 가볍게 데치기만 해도 거의 대다수가 날아간다. 와인도 마개를 열어 놓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대부분 없어진다.

the sulfites in wine

유럽에서는 미생물이 와인을 부패시키고 산패시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았다. 안다 하더라도 질을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미생물의 악영향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몰랐기에 발효조와 숙성 통을 닦아 내는 것에만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산화황의 이러한 효능을 알아내어 마침내 1900년대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우리나라 사정은 한결 열악했다. 한국의 양조장 직원들은 이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날 때 까지도 막걸리의 발효조인 항아리만 열심히 씻어 낼 밖에 다른 방도를 몰랐다. 와인의 발효조인 나무통과는 달리 항아리는 세척의 효과는 조금 높았겠지만 그렇다고 여름철의 유해 세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했다. 씻는 도중에 비싼 항아리가 깨질까 봐 매우 조심스러웠을 것이며 세척제등 제반 사정도 여의치 않아 효과가 제한적임이 자명했다.

1970년대 초 내가 중학생이 되어 시골집에 내려왔던 어느 여름부터는 양조장 직원들이 발효조(항아리)가 들어 찬 방(사입실)에 황을 피웠다. 어디서 어떤 정보를 입수하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황이 술을 산패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저장소에서 황을 태운다 해서 발효되고 있는 술 속으로 황 성분이 들어갈 리 없을 테지만 무작정 시도하였다. 유럽에서 이산화황을 사용한 지 6-70여 년 후에 우리도 이 원리를 써먹으려 하였으나 방법도 원리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건강을 해쳐가면서 까지 황(黃)을 태웠지만 마음에 위안은 되었을지언정 술이 시어짐을 막는 데는 아무런 보람이 없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속된 말로 '말짱황(慌)'이라 하는 것인가!




Sulfites and bisulfites in shallow la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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