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sky y golf
젊은이들 사이에서 요즘 왜 이렇게 위스키가 뜨고 있는지 정말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에 너도나도 다 싱글 몰트 위스키만 찾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류 판매에 종사하는 후배 말로는 맥캘란 쉐리 캐스크 18년 가격이 70만 원 가까이라니 눈이 휘둥그레질 법도 하다. 갑자기 그 위스키 맛이 전 보다 더 훌륭해지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품귀 현상으로 밖에 설명해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도 간단치 않은 것이 대체제 위스키가 쌓여 있는데 품귀라니 말이다. 아무튼 MZ 세대에게는 위스키 마시는 일이 '힙한'일이 되어 버린 모양새다.
주) 영어 단어인 '힙(hip)'에 한국어인 '-하다'를 붙인 말로, 원래 '힙은' 허리와 다리가 만나는 지점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형용사로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한다. 비슷한 말로는 '핫하다', '트렌디하다' 등이 있다.
사실 위스키는 만들기가 그리 어려운 술도 아니다. 증류주인 데다가 원주가 와인처럼 재료의 질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막걸리 같이 발효 과정이 많이 민감하지도 않다. 곡류의 단맛 부분을 추출하여 발효와 증류를 거친 후 나무통에 저장해 두면 될 뿐이다. 말은 쉽지만 그래도 이러한 위스키를 제대로 맹그는 나라는 한쪽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나열해 보면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및 일본이다. 이들을 굳이 두 부류로 나눈다면 캐나다와 일본은 스코틀랜드 쪽이고 미국은 아일랜드 파이다. 증류주의 시발은 당연히 아랍이지만 잘 나가는 스코틀랜드에 대립하여 아일랜드가 원조임을 자처하고 있다. 아일랜드 파는 위스키의 표기까지도 ‘e’ 자를 하나 더 넣어 Whisky 대신 Whiskey로 사용한다. 아니 스코틀랜드 파는 ‘e’ 자를 하나 빼서 Whiskey 대신 Whisky로 사용한다고 해야 할까 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러한 신경전에 무관하게 스카치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대세이다. 타산이 맞지 않아 유명무실해졌으나 서울 올림픽 시절에 정부의 주도로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스카치위스키를 제조 판매한 적이 있다. 단서가 있기는 하나 스코틀랜드에서 증류 후 그곳에서 최소 3년 숙성시킨 원액을 들여와 라벨을 붙여 판매하면 스카치위스키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위스키를 만들려는 몇몇 회사가 생겨나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위스키 제조 지역을 몇으로 나누고 있다. 지리적으로 편의상 나눈 것이기에 위스키의 성격을 구별 짓지는 않지만 지역의 사회 문화적 특성이 어느 정도 담겨있기는 하다. 나열해 보면 하이랜드, 로우 랜드, 스페이사이드, 아일라 그리고 캠벨타운 등이다. 이번 여름에 다녀온 캄벨타운 (Campbeltown, 현지 발음으로는 캠벌턴)에는 전성기에 수십 개의 증류소가 있었으나 현재는 3개밖에 없다. Springbank, Glen gyle, Glen scotia가 그것이다. 하물며 앞의 두 개는 주인이 같아 회사 수로 보면 2개 밖에 안된다.
위스키 말고 스코틀랜드에서 또 하나 유명한 것을 꼽으라 하면 단연 골프이다. 양치기들의 놀이로부터 시작된 골프의 발상지이기도 하지만 코스 레이아웃이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달라 골퍼들이라면 하넌 가보고 싶어 하는 성지이다. 그중에서도 해안가의 모래 언덕과 황량한 들판을 따라 조성된 링크스 코스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매력적이다. 나는 요즈음 골프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캠벌턴을 방문한 김에 한번 플레이를 해보고자 구글링을 했다. 그랬더니 마을 이름과 똑같은 ‘Campbelltown Golf Club’이 화면에 제까닥 떴다. 거기에다 링크스 links course라고 쓰여있는 것이 아닌가! 대박이다. 더 이상 볼 것도 잴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구글 검색 화면 밑부분에 떠있는 전화기 표시를 눌렀다. 이렇게 급박하게 부킹을 할 수밖에 없던 연유는 다음날 오전 중에는 라운드를 끝마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오후엔 카덴 헤드 웨어하우스 시음 약속이 잡혀있고 모레 새벽에는 런던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골프장으로 전화가 재까닥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시뭔 박입니다만, 캄벨타운 골프장이지요? 내일 오후 시간에 부킹이 가능한가요?”
“네, 물론입니다. 몇 시로 해 드릴까요?”
“가능한 늦게 오후 2:30 즈음으로 주세요.”
“요즈음은 해가 짧아 오후 1시가 마지막 티오프 시간입니다만.,”
“네?”
'이토록 여름날이 긴데 해가 짧다니 그것 참 이상하군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라도 잘못 대들었다가 부킹을 거절당할까 봐
“네, 그렇군요. 아무튼 제일 늦은 티 타임으로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해드리겠습니다”
“혼자고요. 오른손잡이 클럽도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래전 아일라 링크스에서 왼손잡이 클럽을 빌려 받아 혼이 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아예 예약 시부터 못을 박았다.
“오케이. 미스터 박. 파워 카트는 필요하신 가요?”
“필요 없습니다.”
“네, 그럼 월유일 오후 1시 Mr. 박으로 예약되었습니다,”
월유일! 게일 어식 발음이라 그런지 골프장 직원의 말소리가 참 특이했다. 해가 짧은 것이 아니고 혀가 짧은 직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다 된밥에 재빠뜨리기 싫어 입을 꼭 닫았다.
그 날밤,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에서 라운드 할 것을 생각하니 흥분되어 잠도 제대로 못 이루었다. 몇 년 전 세이트 앤듀 루스에서는 예약하느라 밤새 줄 서다가 못 잤지만 마지막 18홀에서 파를 하여 그 많은 관중 앞에서 박수를 받은 영광스러운 기억도 떠 올랐다. 그냥 파도 아니고 드라이버 티샷이 훅이 걸려 옆 홀인 1번 홀 정 중앙으로 날아간 것을 그린에 올려 마무리 지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내일은 18홀 1 라운드 내내 갤러리는커녕 개미새끼 하나 구경도 못할 것은 뻔했다.
다음 날 10시에 시작한 위스키 시음은 진지한 시음자들 때문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12시 30분 가까이 되어서나 끝이 났다. 하지만 시음 전에 미리 불러 달라고 했으므로 기다리고 있던 택시에 바로 올라탈 수 있었다.
“캄벨타운 골프 클럽으로 가 주세요.”
“캠벨타운 골프장이라고요? 혹시 건너편 읍에 있는 매키하이쉬 골프 클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닌데요. 분명 이 마을 캠벌턴에 있는 캠벌턴 골프 클럽입니다.” 현지 발음으로 해야만 하나 싶어 발음을 바꾸어도 보았다.
“이 근처에는 그런 이름 가진 골프장은 없는데요”
“그럴 리가요? 어제 전화로 부킹까지 했는데요”
“다시 전화해서 주소나 우편번호를 알려 달라 해 보세요.”
“네, 구글에서 알아볼게요. 미안합니다만 좀 기다려 주세요.”
다시 급하게 구글링을 하여 화면에 떠있는 전화기 표시를 힘껏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마음이 급하여 신호를 끊고 다시 몇 번을 시도해봐도 허탕이었다.
“기사 양반. 내 전화가 한국 번호라 지금 잘 안 터지는 모양인데 대신해 봐 주시겠어요?”
“예, 그러지요. 번호를 알려주세요. 제가 전화를 해 볼 테니..”
“가만있자… 몇 번이더라, 예 여기 있네요. 2 4622 ….”
내가 또박또박 불러주는데도 기사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잘 안되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몇 번 더 시도해 보더니 이제는 나에게 주소를 읽어 달라한다.
“예 그러지요. 주소가... 여기 있네... Campbelltown Golf Club... 1 golf course drive, Glen Alpine...
우편 번호가 NSW 2560, 음... 이건 좀 이상하네요… 으악. 이런!
오스트레일리아넹!”
P.S.
당시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영국과 호주에 있는 두 마을은 확연히 달라 구글에서도 구별이 된다.
혹시 어떻게 다른지 눈치챈 분은 있으시면 연락 주시기 바란다.
캠벌턴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한잔 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