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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o Sep 23. 2019

빨간 앵두

< 뻔뻔한 영화평 - 4 >

* '방희'라는 배우 이름을 아십니까? 처음 들어 봤다면 반드시 볼 영화!

* 촌스럽게 시리즈 8편 중 몇 편부터 봐야 되는지 묻지 마시길... 이건 '왕좌의 게임'이 아니랍니다.

* 에로물을 친구들 여럿이 함께 모여 본 적이 있는가? 침묵과 토론(?)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그 분위기.   

  "야들아 니들은 지금 뭐하고 사니? 보고 싶다 친구야! "

* M M = 마릴린 먼로 / B B =  브리짓 바르도 / C C =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그럼 B H = ?         

* 뻔뻔 평점 $ $ $


빨간 앵두와 산딸기의 공통점은?

 정답 중의 하나로 ‘에로 영화(erotic film)’를 떠올렸다면 당신은 아마도 7,80년대 동네마다 있던 동시 상영 극장을 즐겨 찾던 사람이 거의 확실하다. ‘빨간 앵두’ 시리즈는 8편, '산딸기‘ 시리즈는 6편이나 만들어졌다. 7,80년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한국 영화에 숨통을 터 준 게 바로 ‘에로티시즘’이다. 그리고 흥행에 성공한 당시의 야한 영화들은 언제나 ‘예술이냐 외설이냐’하는 논쟁 아닌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마치 유행처럼.  

 사실 영화와 에로티시즘의 관계는 뿌리가 깊다.   

 에디슨이 고안한 최초의 영사기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치가 아니었다. 한 사람씩 어두운 상자 안을 들여다보면 야한 장면이 보이는 그런 수준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에디슨은 충분한 기술이 있었음에도 대형 스크린 용 영사기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재에 밝았던 그는 극장을 상대로 대중용 영사기를 몇십 대 파는 것보다 개인용 영사기를 수십, 수 백 만대 보급하는 게 훨씬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사람들의 은밀한 관음증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최초의 대형 스크린 영화는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손에서 탄생하게 되었고, 에디슨도 뒤이어 대형 스크린용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디슨이 만든 영화들은 다 야한 영화였다. 발명왕 에디슨은 에로티시즘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에디슨의 야한 영화들은  영화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매체의 대중화에는 언제나 에로티시즘이 큰 역할을 해 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빨간 비디오’가 그랬고 ‘인터넷 야동’은 두 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85년에 개봉된 영화 ‘산딸기 2’의 포스터에는 이런 홍보문구가 있다. ‘예술이 있었기에 용서받은 그 사실적 정사 씬! ’ 어쩐지 ‘예술 콤플렉스’에 짓눌린 문구 같아 애처롭다. 

 대중의 기호는 대체로 예술과 외설 사이, 그 중간쯤 어딘가에 존재한다. 요즘은 그래도 에로티시즘에 예술이 없다고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는 세상이다. 산딸기 2의 포스터에는 이런 표현도 있었다. ‘따자, 산딸기를 따자, 사랑을 따자!’ 차라리 이 문구가 더 건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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