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뻔한 영화평 - 16 > 영화 예술의 극치를 보라!
# 이 영화에서는 하찮은 파리 한 마리도 폼을 잡는다. 진짜다.
오프닝 시퀀스의 긴장감! 기차역에서 하모니카를 든 남자와 세 명의 총잡이가 대치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9분 동안 대사 한마디 없이 음악과 배우들의 표정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는 레오네 감독의 연출력에
박수를! (팝콘 먹는 것도 잊게 만든다!!)
# 찰스 브론슨의 하모니카 불기.(이 영화에서 그냥 그를 '하모니카'로 부른다.)
등장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그 음산한 멜로디는 소름 그 자체.
혹시 하모니카 불다가 숨 막힌 적 있어? 부는 거 보다가 숨 막힐 수도 있어.
# 전에 영화 '빨간 앵두'에서 얘기했지? 세기의 여배우 3인방!
M M = 메릴린 먼로 / B B = 브리짓 바르도 / C C =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이 영화에 C C와 헨리 폰다의 베드신이 나오니까... 알아서 들.
퀴즈 하나. 그럼 B H는 누굴까? (정답은 뻔뻔한 영화평 4편, '빨간 앵두' 읽어 보시라.)
# 헨리 폰다가 무척 애처가였나 봐. C C와 베드신 찍던 날, 그의 부인이 촬영 현장에 왔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 헨리 폰다의 섬뜩한 변신! <분노의 포도>의 그 순박한 아저씨 맞나 싶을 정도로 냉혈한 악당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지. 당시 팬들의 반발이 엄청 심했다네. 그래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도 있어.
# 미국에서는 '하모니카 맨'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려고 했다가 흐지부지됐다고.
하마터면 촌스러운 제목으로 기억될 뻔... 뻔.
# 모뉴먼트 밸리의 웅장한 풍경은 빼놓을 수 없지.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에서 자주 등장했던 그곳을
레오네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담아냈어.
그전에 제작비 아끼려고 스페인에서 주로 찍던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투자받아 진짜 로케이션을 했지. 근데 당시 흥행은 별로였지 아마?
# 뻔뻔 평점 ****** (그냥 별 6개! '서부극의 새로운 지평...' 이 정도가 아니라 영화예술의 극치라고 본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1968년 걸작 'Once Upon a Time in the West'는 단순한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틀을 넘어, 영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황량한 서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와 욕망,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장엄하게 그려냈다. 전통적인 서부극의 관습을 버리고 독창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했다.
레오네는 철도라는 진보의 상징 뒤에 숨겨진 자본의 냉혹한 폭력성을 날카롭게 포착해 낸다.
광활한 서부의 풍경을 동양화의 여백처럼 활용하여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영상미를 창조했다.
영화의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압도적인 음악이다.
모리코네는 악보를 쓰기 전에 인물의 내면을 해석했고,
레오네는 음악에 맞춰 장면을 찍었다. 이 순서의 역전 자체가 영화 형식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하모니카의 애절한 선율은 주인공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며, 각 인물의 테마곡은 그들의 내면 심리와 극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하모니카’의 테마곡은 배경 음악을 넘어, 복수라는 감정의 깊이를 더하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운명적인 멜로디로 작용한다.
이처럼 음악은 레오네의 독특한 연출 방식과 어우러져, 이미지와 사운드가 완벽하게 조화된 종합 예술로서의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내 친구 중에 영화감독이 있는데, 그는 영화 예술의 최고봉으로 감독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시나리오 작가도 아닌 음악가, 모리꼬네 형님을 꼽는다. 나도 동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는 또한 전형적인 서부극의 인물 구도를 비틀어, 예측 불가능하고 다층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주인공은 과거의 깊은 상처를 안고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반면, 헨리 폰다가 연기한 '프랭크'는 푸른 눈빛 속에 냉혹함과 잔인함을 감춘 채 등장하여, 기존의 정의로운 영웅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한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냉철한 악당으로, 서부 개척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남성 중심의 서사 속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연기한 '질 멕베인'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기존 서부극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단순한 사랑의 대상으로 머무르지 않고,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명력과 회복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우물’이다. 메마른 서부에서 물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질이 새롭게 건설되는 도시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땅과 우물이다.
우물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서, 폭력과 갈등으로 점철된 서부에서 희망을 상징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질이 철도 노동자들에게 물을 나누어주는 모습은 낡은 서부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총과 폭력의 시대에서 벗어나, 생명과 노동, 연대의 가치가 존중받는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감독의 의도라고 해석된다.
헨리 폰다
이 영화는 빠른 편집이나 총격전의 박진감보다, 침묵과 응시, 기다림의 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자가 움직이는 소리, 파리의 날갯짓, 바람 소리 —
이 모두가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서부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토록 정적인 긴장을 끌어낸 작품은 거의 없다.
레오네는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서사의 밀도를 높이는 유일한 감독이었다.(그래서 러닝 타임이 긴가?)
느린 호흡과 긴 롱 테이크, 인물의 미세한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방식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깊은 감정적 울림을 선사한다.
특히 광활한 서부의 풍경을 담아내는 와이드 숏은 숭고한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의 나약함을 대비시키며, 삶과 죽음, 문명과 야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하모니카는 고독한 복수자이지만, 영웅이라기보다는 상처 입은 과거 그 자체다. 프랭크는 악당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의 얼굴이다. 돈을 위해 살인도, 땅도, 철도도 필요하다. 그가 죽는 순간, 시대가 끝난다. 또 한 명 흥미로운 인물은 '셰옌(제임스 로바즈)이다. 그는 악당이지만 동시에 아이러니한 휴머니스트다. 그는 폭력을 끌고 등장하지만, 끝내는 자기 시대와 함께 조용히 퇴장한다. 말 위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슬프고도 장엄하다. 시대가 사라지는 방식은 언제나 그렇게 쓸쓸하다.
전통적인 서부극의 문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탐색한 이 영화는 철도와 우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문명의 진보와 그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하고, 탈전형적인 인물들을 통해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히 여성 주인공 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서사는 기존의 남성 중심 서부극의 한계를 넘어, 미래를 향한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하며 영화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이 영화는 단순한 장르 영화를 넘어,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예술적 정점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번외 시리즈 - 2 , 진짜 혁명을 위하여 > 혁명에 진심이었다는 세르지오 레오네를 위해...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은 2014년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부정부패와 권위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거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도 뿌리 깊은 부패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친서방과 친러시아 진영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결국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혁명의 주체였던 시민들의 염원과는 달리, 구체제를 완전히 혁파하지 못하고 지배층의 오판과 외부 세력의 개입에 의해 변질된 ‘가짜 혁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지배층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거나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등 전략적 오판을 거듭했다. 또한, 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기존 정치 세력 간의 권력 다툼에 매몰되면서 혁명의 순수한 의미를 퇴색시켰다. 결과적으로 유로마이단 혁명은 낡은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우크라이나를 건설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내전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가짜혁명의 전형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자발적으로 모여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쾌거였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시민 주도의 평화적인 혁명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촛불혁명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촛불의 염원을 담아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사회 곳곳의 적폐 청산과 개혁을 추진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적 양극화 심화로 인해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더 나아가, 촛불혁명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검찰 중심의 권력 강화, 노동 및 언론 탄압 논란, 과거 회귀적인 정책 추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우려를 낳았다. 급기야 윤석렬 대통령은 계엄령 발동이라는 시대착오적 '역사의 반동'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4.19 민주화 투쟁 이후 끊임없이 진행되어 온 거대한 혁명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4.19 혁명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곧바로 군부 쿠데타로 인해 좌절되었다. 이후에도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통해 한국 사회는 조금씩이나마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촛불혁명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이는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이 세계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혁명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첫째,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촛불집회 당시 보여주었던 뜨거운 열정과 참여 정신을 일회성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시민사회단체 등 자발적인 조직 활동을 통해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둘째, 낡은 정치 시스템과 관행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 정당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 관료 사회의 보수적인 문화 등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고,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셋째,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의 배경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특정 세력의 부정축재와 권력 남용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뿐만 아니라,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불공정한 구조를 개선하고, 모든 시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성숙한 시민 의식과 비판적 사고 능력 함양이 중요하다.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존중하며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경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가 요구된다. 4.19 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 이어져 온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함께 꿈꿀 수 있는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혁명의 실패 사례는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함께 지배층의 현명한 판단, 그리고 사회 시스템 전반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비폭력적인 시민운동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지만, 진정한 혁명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된 다양한 과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4.19 혁명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온 한국 민주주의의 긴 여정 속에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잊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한국 사회는 더욱 성숙하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