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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갱들

<뻔뻔한 영화평 - 14>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고 혁명을 논하다!

by simpo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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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말 다했지?

   둘이 초등학교 동창이었다네. 참 나! 거기 어느 동네야?(라치오, 이탈리아)

# 미국 서부영화를 스페인에서 찍었다고?

   ‘어쩌다 그럴 수 있었겠지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스파게티 웨스턴 또는 마카로니 웨스턴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

   대부분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스페인에서 촬영했다. 심지어 프랑스 산악지대에서 찍은 경우도 있어.

# 이 영화는 개봉 장소에 따라 이름이 달랐다. 미국에서는 ‘A fistful of Dynamite’.

    주인공 제임스 코번이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출신 폭파 전문가로 나와서 Dynamite. 그리고 세르지오의 다른 명작

    ‘황야의 무법자‘ (원제 ‘A fistful of Dollars’)와 운을 맞췄다.

# 유럽에서는 처음에는 ‘원스 어폰 어 타임 in the Revolution ‘. 나중에 ‘원스 어폰 어 타임 in Mexico’로 개봉했다.

   그래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Once upon a time ~ ’ 3부작에 들어간다. (모두 뻔뻔하게 평할 예정임. 뻔! 뻔!)

# 뜬금없이 웬 ‘혁명‘이냐고 의아해하지 마시라. 세르지오 감독은 이런 주제에 진심이었다.

    1989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기 전까지 러시아 혁명에 관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다고.

# 우리나라 개봉 제목은 포스터에 나온 대로 ‘석양의 깽들‘이다. 실패한 혁명가 역을 열연한 코번 형님!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길.     

# 세르지오 영화가 러닝타임이 다 길다. 이 영화 이탈리아 개봉 버전은 2시간 32분.

    그의 다른 영화들이 3 시간을 훌쩍 넘는 거에 비하면 게 중 짧은 편.  

    하지만 우리나라 개봉 시에는 무자비한 가위질을 했는지, 내용이 진짜 깽 영화다.

     어릴 때 두 편 동시상영 극장애서 본 기억이 있다. 그냥 깽 영화였다.(그때 우리 한 참 후진 나라였지? 아마)

#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 석양의 건맨 For few dollars  more,

   그리고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세르지오가 감독한 이 위대한 서부극 모두 주인공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가 나중에 감독, 주연한 명작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에 스승이자 친구였던 세르지오 레오네를

   추모하는 문구를 넣었다.

# 실제 옛날 옛적 미국 서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존 웨인의 서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는 지구와 화성만큼이나 다르다는 거.

    나는 당근 후자에 한표!

# 주제가 중에 ‘숑숑‘하는 코러스가 있다. 극 중 주인공의 아일랜드 이름 ’션’을 부르는 거 라는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숑숑’으로만 들린다. 아닌 사람 손들어!

# 뻔뻔 평점 * * * * * (별 5개. 영화는 별 4개지만 엔니오의 음악이 있잖아? 그래서 +1)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 영화의 배경에는 ‘멕시코 혁명‘이라 불리는 정치적 격변이 자리 잡고 있다.

 후안(로드 스타이거)은 멕시코 농민 출신의 도적이다. 우아하지도, 의롭지도 않다. 그는 단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약탈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나타난 아일랜드 출신의 혁명가 존(또는 션, 제임스코번)은 다른 세계 사람이다.

 카메라는 자주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피로 얼룩진 눈동자, 절망을 감춘 미소, 터지는 다이너마이트의 폭음 사이로 흔들리는 믿음. 엔니오 모리꼬네의 익숙한 휘파람 소리 대신, 한탄처럼 울려 퍼지는 선율이 시대의 비극성을 더한다.

 레오네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나 보다. ‘혁명은 누군가의 이상일지언정,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타고 끌려가는 수레일 뿐이라고.‘

 영화는 후안의 마지막 표정을 통해 묻는다. “그 모든 죽음은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그리고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 없는 그 침묵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아닐까?

 레오네의 카메라는 정치적 슬로건이나 선전 포스터가 아니라, 무너진 시체더미와 조롱당한 민중, 그리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응시할 뿐이다.

 혁명은 어떤 때는 불가피한 폭력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한낱 권력 다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변형시키는가이다.

 존과 후안의 관계는 혁명 자체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존은 이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지만, 결국 그 이념이 사랑했던 동지들을 배신하고 죽게 했다는 기억에 시달린다. 후안은 혁명에 희생된 가족을 통해 비로소 혁명의 무게를 체감한다.

 혁명은 필요했는가? 의미가 있었는가?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후안의 마지막 얼굴을 남긴다.

 침묵과 허무, 그리고 끝없는 질문.

 

 그래, 감독의 의도에 부응하여 질문과 생각 이어간다.

아래 번외 편. 복잡한 얘기 싫어하는 사람… 그냥 읽어보시오. 세르지오 형님이 재미있는 영화 만들어 주셨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브런치 글 이미지 2

       제임스 코번, 세르지오 레오네, 로드 스타이거


## <번외 시리즈 - 1 , 혁명이란 무엇인가? >

  일단 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 이런 개념은 뺀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썰(에세이)인데 , 정신혁명 어쩌고 까지 가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갈터.

일단 ‘다수 민중의 봉기를 수반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여기서 논의하는 ‘혁명’의 필요조건으로 정한다.(내 맘이다. 뻔뻔하니까)

 거기다 플러스. "권력의 교체를 넘어서, 기존 사회의 계급 구조·소유 구조·의식 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변혁"을 수반한다.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대혁명도 수많은 반동과 나폴레옹 시대를 거쳐 완성되어 갔다.

 혁명은 또한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소비에트 공산주의 혁명이 20세기 후반에 걸친 장구한 실험 끝에 실패를 만천하에 알렸지만 실패했다고 혁명이 아니다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독립전쟁을 혁명이라 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탄생은 단순히 대영제국으로부터의 독립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청교도 혁명의 완성판이라 할 만한 이 사건은 이후 온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강력한 패권국가를 탄생시켰다. 게다가 그 국가가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어 온 지구인의 생활패턴까지 바꾸었고 지금도 바꾸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소련 연방의 해체 이후 혁명의 시대는 끝난 듯 보인다. 세계 곳곳의 민주화 투쟁 등이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 변혁으로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진짜 혁명’은 점점 희귀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고, 혁명이라는 언어는 오히려 정치적 수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오늘은 여기까지.


  Once upon a time ~ 3부작을 리뷰하면서 번외 편 2,3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한 번에 다 하면 너무 길고 재미없잖아. 다음 편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가짜혁명‘과 우리나라 촛불혁명에 대해 썰 푼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4.19로 시작한 민주화 투쟁이 촛불 혁명을 넘어 거대한 사회 혁명으로 진화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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