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황소와 돌주먹

< 'Raging Bull' vs ' Hands of Stone>

by simpo

# 영화 'Raging Bull'은 드니로에 의한 드니로를 위한 드니로의 영화다.

# 'Raging Bull'을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성난 황소'쯤 될 거야.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고, 처음 소개 될 때에는 '성난 황소'로 알려졌었다. 지금은 네이버에 한글로 검색하면 '분노의 주먹'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다.

# '제이크 라모타'라는 실제 인물의 이야기다. 권투 선수 라모타의 닉네임이 'Bull'이었다.

# 로버트 드니로는 라모타라는 인물에게 제대로 꽂혔다. 라모타의 자서전을 읽고 스콜세이지 감독을 졸라 연출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단다.

# 드니로는 이 영화에서 메쏘드 연기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진짜 온몸으로 보여준다.

영화 속에 나오는 살찐 드니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체중 증가 27kg. 젊은 시절의 근육질 신체에서, 타락한 중년의 뚱뚱한 코미디언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실제 몸으로’ 수행했다.

# 로버트 드니로는 이 영화를 위해 복싱 훈련을 1년 넘게 받으며 프로 수준에 도달했다고.


# 영화 'Hands of Stone'에도 드니로는 나온다. 그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영화는 뭔가 빠져있다.

영화는 역시 감독의 예술이다.

# 두 영화는 닮은 구석이 많다. 권투 영화이고 실제 권투 선수의 이야기다. 영화 제목도 두 선수의 닉네임에서 따 왔다. 두 영화 다 로버트 드니로가 열연했다.

권투 역사상 로베르트 듀란은 정말 위대한 선수다. 제이크 라모타와는 비교될 수 없다.

그러나 두 영화를 비교하면 상황이 역전된다. '돌주먹'은 그냥 그저 그런 영화지만 '성난 황소'는 영화 역사의 명예의 전당에 반드시 들어가는 위대한 영화다.

# 'Hands of Stone'에 정말 풋풋한 '아나 데 아르마스'가 로베르트 듀란의 부인으로 나온다. 그녀의 팬이라면 벌써 봤겠지?

# 뻔뻔 평점 ***** (Raging Bull만 5개다)



Raging Bull의 오프닝은 오프닝만 순위를 매긴다면 존재하는 모든 영화 중에 최고다! 아래 링크...

https://youtu.be/3N4uXfnH2aA?si=Mtnpj4INvhGox96z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로, 작곡가 Pietro Mascagni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유명한 곡이다. YouTube+2Facebook+2

이 몽환적이고 긴장감 있는 오프닝은 복싱이라는 세계뿐 아니라, 그 안에 갇힌 인간의 내면을 암시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Raging Bull(1980)'과 'Hands of Stone (2016)'은 같은 링 위에서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은 두 영화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했지만, 전자는 영화사의 교과서가 되었고, 후자는 흥행에서도 비평에서도 묘하게 잊혔다.
그 차이는 단지 배우나 스토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시선이 어디까지 도달했느냐의 문제였다.

'Raging Bull'은 마틴 스콜세이지의 신앙 고백서처럼 보인다.
실존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일대기를 통해 그는 “폭력으로 죄를 짓고, 고통으로 속죄하는 인간”을 그렸다.
라모타가 “I’m not an animal”이라 외칠 때, 우리는 인간의 본능과 신의 심판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영혼을 본다.
슬로모션, 과장된 사운드, 그리고 어두운 조명의 질감으로 그는 복싱을 스포츠가 아닌 영혼의 의식으로 바꾼다.


반면 'Hands of Stone'은 복싱을 넘어 영화가 감당하지 못할 역사의 무게까지 짊어지려 했다.

로베르트 듀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서사시다.
게다가 1980년 듀란과 슈거 레이 레너드의 리턴 매치는 복싱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였다.
정치적 긴장, 인종, 자존심, 민족의 상징까지 얽힌 그 경기의 의미는 실로 거대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Hands of Stone'의 약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화의 무게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듀란의 일생은 너무 방대하고, 리턴 매치는 역사적 상징이 너무 크다 보니,
영화는 그 사실을 재현하느라 드라마를 빚을 여유를 잃어버린 셈이다.
라모타의 이야기가 인간 내면의 탐구라면,
듀란의 이야기는 파나마라는 나라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래서 스콜세이지는 라모타를 “한 사람의 죄”로 압축했지만,
야쿠보위츠는 듀란을 “한 국가의 상징”으로 다뤄야 했다.
그 차이가 영화의 밀도를 갈랐다.

드니로의 연기 인생은 폭력과 속죄의 순환이다.
'Taxi Driver'의 트래비스는 분노의 화신,
'Raging Bull'의 라모타는 자기혐오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Hands of Stone'의 드니로는 다른 존재다.

이번엔 듀란의 트레이너, 레이 아셀로 등장해 젊은 파이터를 이끌고 달랜다.
젊은 시절의 자신이 연기했던 폭력을,
이제는 통제하고 가르치는 쪽으로 옮겨간 셈이다.
그는 여전히 링 위에 서 있지만,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결국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두 영화의 대비는 한 가지 명확한 진리를 드러낸다.
배우가 아무리 위대해도, 감독의 시선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한다.

스콜세이지는 한 인간의 추악함을 미학으로 승화시켰고,
야쿠보위츠는 위대한 실화를 기록하느라 정작 ‘인물의 진실’을 놓쳤다.
'Raging Bull'은 “복서를 통해 인간을 본 영화”이고,
'Hands of Stone'은 “복서를 기록하다 인간을 놓친 영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변명할 수 있다.
로베르토 듀란의 삶은 너무도 거대했고,
그 리턴 매치는 역사 그 자체였기에,
아무리 좋은 감독이라도 그 모든 무게를 영화 안에 온전히 담기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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