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 "족구"

< 주성치의 병맛과 무술과 축구와 그들...>

by simpo

# 2001년 개봉한 주성치의 첫 감독작! 각본도 주성치가 썼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 월드컵 직전 축구붐에 맞추어 개봉했다.

# 중국에서는 축구를 '족구'라고 부른다. 그래서 원제는 '少林足球(소림족구, Shaolin Soccer)'

# 주성치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럼 모든 게 계산된 코미디?

# 주성치와 오맹달의 환상 케미를 좋아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봐도 좋다. 오맹달이 2021년 69세로 죽기 전

주성치와 함께 나온 마지막 영화다.

# 주성치 병맛 영화의 매력은 '웃다 울리는 것'.

"이 유치한 코미디가 뭐라고 내가 울고 있지?" 라며 자기 비하를 하실 필요는 없겠다. 다들 그러지 않아?

# 축구단을 놀라게 하는 두 명의 수염 난 스트라이커는 파이란의 '장백지'와 한때 주성치의 애인이었던 '막문위'다. 수염 달아도 예뻤다는 데, 확인해 보든지 말든지.

# 골키퍼 소룡 역을 맡았던 '진국곤'은 원래 안무가인데 외모가 이소룡과 너무 흡사해 주성치가 즉석에서 캐스팅했다. 선글라스도 그렇고 복장부터 이미 '사망유희'의 이소룡을 오마쥬.

# 2002년 홍콩 금상장(香港金像裝)상 영화제 13개 부분에서 후보에 올라

각본, 감독,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7개 부분을 수상했다. 주성치 1타 3피! 그를 쉽게 보지 말자.

# 이 영화는 중국본토 광조우와 상하이에서 로케이션 했다. 경기장 임대료 등 제작비 때문이었는데,

이를 빌미로 중국의 간섭이 들어왔다. 중국 정부는 소림과 축구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불교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며 본토 상영을 위해 제목을 바꿀 것을 요구했으나 주성치가 거부했다.

그를 쉽게 보지 말자.

# 러닝타임이 다른 3가지 버전이 있다. 오리지널 1시간 52분, 극장판이 1시간 42분, 해외수출용 1시간 27분. 우리나라 개봉은 당근 1시간 27분이다. 넷플릭스는 1시간 52분 버전이다. 다시 봐? 말아?

# 뻔뻔한 영화평 ***** 별 5개(너무 평점이 후하다고? 후진 영화를 굳이 리뷰할 필요 없으니까...)


ps. 아 참, 월드컵에 홍콩이 나갈 수 있는지 없는 지 궁금하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시압.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 있다고 치자. 그가 인류를 관찰하다가 이런 글을 썼다.

(뻔뻔한 영화평 '지단'참조)

'나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 성운에서 날아온 외계인이다. 나의 임무는 인류를 관찰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런던의 펍(PUB)에 들렀다. '뒷 담화'를 좋아하는 인류의 사교 행위를 지켜보는 것은 이제 지겹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라며 돌아 나가는 순간, 대형 TV가 켜졌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든 시선이 작고 동그란 단 하나의 구체를 향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기뻐하다가 갑자기 분노하고, 울다가 웃었다. 다들 미쳐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관찰을 시작했다. 혹시 저 구체에 모든 인류를 흥분시키는 페로몬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저 구체 안에 보물지도라도 들어 있는 걸까? (사람들은 그 구체를 축구공이라고 불렀다.)

화면 안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사력을 다해 투쟁하고 있었다. 내 고향 안드로메다에서는 저딴 일로 목숨을 걸진 않는다! 이 미개한 인간들이라니...'


축구란 이런 짓이다.

이런 축구를 주성치가 영화로 만들었다.

2001년 개봉한 주성치의 '소림축구'는 지금 다시 보아도 신기하게 촌스럽지 않은 영화다. 오히려 만화책 한 권을 그대로 스크린에 펼쳐놓은 듯, 여전히 유쾌하고 통쾌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몰락한 소림 무술인들이 팀을 꾸려 축구에 도전한다. 그리고 무술의 기예를 경기장에서 마음껏 발휘한다. 말이 안 되는 설정이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그 ‘말도 안 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있다. 킥 한 번에 공이 유성이 되고, 슛이 태풍을 몰고 오는데도, 관객은 어이없기보다 속이 시원하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사회에서 밀려난 ‘루저’들이다. 실패하고 잊힌 그들이지만, 축구라는 놀이터 위에서는 다시 뛸 수 있다. 관객은 폭소를 터뜨리다가도, 이들이 재기하는 순간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웃음과 감동을 오가는 이 리듬이야말로 주성치 영화의 진짜 힘이다.

축구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주성치는 여기에 중국 전통 무술을 섞어 넣어, 세계화 속에서 “홍콩적 상상력”이 어떻게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홍콩에서만 히트한 게 아니라, 서양 관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소림축구'는 “웃다가 눈물이 나는 영화”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도 끝내는 놀이터 같은 경기장에서 가능해진다. 주성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포기하지 마. 인생은 끝까지 뛰어야 하는 경기라고.”

뭐 꿈같은 얘기이지만 홍콩이 월드컵에 본선에 나갈 수 있을까? 실력 여부가 아니라 자격에 관해서다. 홍콩은 엄연히 중국의 일부다. 그런데 매번 월드컵 예선에 참가한다. 홍콩뿐만이 아니다. 마카오도 참가한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 '푸에르토리코'는 독립국가가 아니다. 미국의 자치령이지만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

아니 그럼 제주도는 왜 안되는가?

사실 월드컵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FIFA가 승인한 축구협회 대항전'이다.

홍콩 축구 협회(HKFA)는 FIFA와 AFC(아시아축구연맹) 정식 회원이다. 마카오 축구 협회(MFA)도 FIFA와 AFC 회원으로, 월드컵 예선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한마디로 FIFA 맘대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 영국 때문이다.

20세기 초 국제축구연맹(FIFA) 결성을 주도한 나라는 프랑스다. 축구 종주국을 자처하는 영국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FIFA가 개최하는 월드컵을 3회까지 보이콧했다. 영국은 물론 영연방 국가들이 빠진 월드컵이 진정한 세계대회로 발전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FIFA는 영국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면서까지 FIFA 주도의 월드컵에 동참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4개 협회(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 아일랜드)를 독립적으로 인정하는 예외적 지위를 보장하게 된다.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월드컵에 영국 네 팀이 따로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론적으로는 FIFA의 승인만 있다면 '제주도 축구협회'도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선수도 마찬가지다. 국적이 없어도 A라는 국가의 축구협회에 소속되어 있으면 A라는 나라의 축구협회를 대표해서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외국 선수들을 귀화시켜 국적을 바꾸도록 할까? 그건 그 축구협회의 사정 때문이다. 가령 중국 축구협회가 자국 선수만을 협회 회원으로 받아들인다면 외국선수를 귀화시켜야 만 할 것이다.

'정대세'라는 축구선수가 있었다. 재일동포 3세인 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그는 월드컵 북한 축구 대표로 남아공 월드컵에 나섰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시 FIFA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대세가 북한 축구 협회 대표로 뛰어도 좋다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 대표의 유니폼을 보면 가슴 쪽에 호랑이 마크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FIFA에 가입한 ‘대한축구협회(KFA)'의 엠블럼이다. 다른 나라도 자국 국기가 아니라 축구협회의 엠블럼을 가슴에 단다. 월드컵은 각국을 대표하는 ’ 축구 협회 대항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02년 월드컵 이전에는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다. 2002년 이전 대한축구협회의 엠블럼도 국기가 아니고 호랑이 마크였다. 2002년 이전에는 가슴에 엠블럼대신 국기를 달았다는 얘기다. 2002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촌스러운 국가주의에 아직 경도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그냥 FIFA에 대해 잘 몰랐다가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알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식했던 거...

올림픽은 다르다. IOC가 주관하는 올림픽은 당연 국가 단위로 참가한다. 협회 단위로 참가하는 월드컵과 다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축구협회가 없는 영국은 2012년까지 올림픽 축구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통일된 아마추어 축구협회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세상 참 재밌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거다.

keyword
이전 14화성난 황소와 돌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