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정의롭다. 진짜... 루?

<The Verdict〉vs〈The Devil’s Advocate>

by simpo

#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없으신 분. 이 영화 보지 마!

# 'devil's advocate'은 관용어로 쓰이는 말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열띤 논의가 이뤄지도록)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사람. 선의의 비판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물론 글자 그대로 '악마의 변호인'이라는 뜻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당근 후자의 의미.

# '샤를리즈 테론'의 팬인데 <데블스 애드버킷>을 아직 못 봤다? 꼭 보시길...

1998년 우리나라 개봉 시 심하게 가위질당해서 그녀의 연기를 다 보지 못했다.ㅠㅠ

# 조연 여배우 중에 '코니 닐슨'이 있다. '글래디에이터 1'에서 루실라 역을 맡았던 그 배우다.

# 주요 대사인 '허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죄악'. 이 말은 원래 프리드리히 니체가 했다.

"Vanity is (definitely) my favorite sin."

# 감독 테일러 헥포드가 너무 힘을 준 게 이 영화의 단점.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현대판 도덕극입니다. 세속 종교와 같은 엄청나게 부유하고 권력 있는 법조계를 배경으로 한

파우스트적 이야기죠"

어깨에 힘 너무 들어갔다. 이 감독의 최고 작은 누가 뭐래도 '사관과 신사'다.

# 알 파치노가 맡은 악마역의 배역 이름이 존 밀턴이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과 이름이 같다. 왜?

# 키아누 리브스는 제작진이 알 파치노를 섭외할 수 있도록 자기 개런티를 자진해서 깎았다고.

키아누 리브스는 확실히 돈이 목적이 아닌 사람 맞다.

# 엔딩 크레디트에 여러 베트남전 관련 콘텐츠에서 나온 것으로 유명한 롤링 스톤즈의

Paint It Black이 흐른다. 왜?

# 한국에서는 폭망 했고, 수입사는 망했다. 19금 부분을 너무 많이 잘랐다.

# 뻔뻔한 영화평 ****+* (별 4개 +1=5개. 원래 4개인데 요즘 검판사님들에게 열받으신 분들 위해서)


# 폴 뉴먼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면 <평결 The Verdict, 1982> 은 보지 마시라!

# 이 세상의 사법 시스템은 대강 2개로 나눌 수 있다. 영미법 체계와 대륙법 체계.

대륙법 체계는 독일, 프랑스에서 발달시켜 온 사법시스템이다. 기본적으로 판사가 평결한다.

영국, 미국 계통에서는 배심원이 평결을 한다. 판사는 재판을 조율하고 형량을 결정한다.

유무죄의 결정은 진정한 주권자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시민의 집단 지성에 따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륙법 체계의 보완으로 주요한 사건에 대해 배심제를 도입하고 있다.

국민 주권 정부라 하니 배심제의 전폭적인 확대를 혹시...?

# 검사의 권한 중에 '기소 독점', '기소 편의' 두 가지가 항상 이슈다.

쉽게 말하면 '검사만이 기소를 할 수 있다.'그리고 '기소하고 말고는 검사 맘대로다' 이런 소리다.

'기소 편의주의'의 반대는 '기소 법정주의'다.

기소 편의주의 원칙에서는 죄가 있어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죄를 논하지도 않는다.

내가 알기로 지구상에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의 권한을 다 가지고 있는 검찰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뿌리를 둔다. 원조인 일본도 일찌감치 바꾼 제도를

우리가 아직도 지키고 있다. 왜?

# 뻔뻔한 영화평 ***** 별 5개!

# 앞으로 뒤에 나올 본문은 '~니다'체로 쓴다. 왜?


법은 정의로운가? ― 〈The Verdict〉와 〈The Devil’s Advocate〉

법정은 영화 속에서 언제나 특별한 공간입니다. 한 사람의 운명이 좌우되고, 진실과 정의가 맞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드니 루멧의 〈The Verdict〉(1982)와 테일러 핵포드의 〈The Devil’s Advocate〉(1997)은 같은 무대를 전혀 다르게 비춥니다. 두 작품 모두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한쪽은 희망적이고, 다른 쪽은 냉소적입니다.


'창녀' 같은 법조계 vs 양심의 기도

〈The Verdict〉에서 폴 뉴먼이 연기한 갤빈은 실패한 변호사입니다. 그는 초반에

“변호사들은 돈만 좇는 창녀와 같다”는 모욕을 듣습니다. 그 말은 법조계에 대한 차가운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갤빈은 달라집니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곧 법입니다. 법은 그저 상징일 뿐이고, 정의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최후변론은 제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양심이 법을 살아 있게 한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따뜻한 시선입니다.

악마의 놀이터가 된 법

〈The Devil’s Advocate〉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존 밀턴은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에게 법은 정의의 집이 아니라, 탐욕과 허영을 합법적으로 꾸며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화려한 로펌, 매혹적인 승리,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유혹해 무너뜨리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법은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악마가 웃으며 장난치는 놀이터로 바뀝니다. 정의를 꿈꾸던 이들을 파멸시키는 악마의 놀이터.

희망과 냉소의 두 얼굴

〈The Verdict〉은 냉소에서 출발해 희망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아직 정의가 있다는 작은 믿음을 전합니다. 반면 〈The Devil’s Advocate〉은 매혹적인 말과 유혹 속에서, 법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키는지를 냉혹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믿음 속에서 피어나는 정의를, 다른 하나는 욕망 속에서 사라지는 정의를 그려낸 것입니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빛과 그림자로 법정을 채웁니다.


법을 움직이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The Verdict〉은 법이 불완전해도 우리가 정의를 믿고 행동한다면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반면 〈The Devil’s Advocate〉은 법이 인간의 욕망을 합리화하며 결국 악마의 손아귀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두 영화가 공통으로 건네는 물음은 같습니다.

“법이 정의로운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정의로워야 하는가?”

법정은 정의의 집이 될 수도, 욕망의 무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무대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제도도, 악마도 아닌, 우리의 선택과 양심에 달려 있습니다.


ps. 1 <The Devil’s Advocate〉의 타이틀 롤은 '샤를리즈 테론'.

여주인공 메리 앤 로맥스는 케빈 로맥스(키아누 리브스)의 아내로, 영화의 비극적 중심인물입니다.

순수와 희생의 상징: 플로리다의 소도시에서 단란한 가정을 꿈꾸던 그녀는 뉴욕의 거대 로펌 세계에 들어서면서 점차 무너져 갑니다.

악마적 공간에 갇힌 희생양: 화려한 맨해튼 생활은 그녀에게 고립과 불안만 안겨주고, 결국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심리적으로 붕괴합니다. 밀턴의 초자연적 개입(거울 속 환영, 육체적 위협)이 직접적으로 그녀를 파괴합니다.

여성의 희생으로 드러나는 진실: 메리 앤은 영화 속에서 남편보다 먼저 “이 세계가 악마의 장난”임을 직감합니다. 그러나 케빈이 법정과 권력의 게임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그녀는 고립무원으로 추락하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자살)을 맞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영화의 전환점으로, 케빈에게 “승리”라는 허상이 아닌 인간적 양심과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즉, 메리 앤은 이 작품에서 ‘법=악마의 놀이터’라는 구조 안에서 파괴된 인간적 순수의 대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ps. 2 프랭크 갤빈(폴 뉴먼)의 클라이맥스 연설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And I believe there is justice in our hearts.”
(나는 우리 마음속에 정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한 문장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응축합니다. 법정과 제도가 아무리 타락해 있어도, 마지막 희망은 제도 바깥, 인간의 양심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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