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뻔뻔한 영화평 - 20> 이게 동방박사 이야기라고?
# '조지 클루니'라는 배우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 봤겠지? 그래도 오래전이니 다시 봐.
'젊은 클루니'를 볼 수 있어.
# 이 영화 상당히 어수선하다. 이 영화의 지정학적 배경인 '미들 이스트'의 현재 상황은 더 어수선하다.
그래도 블랙 코미디 장르의 팬이라면 이 어수선함을 즐기시라!
# 'Three Kings'는 관용적으로 성경의 '동방박사' 3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경의 동방박사들은 황금을 선물로 가져왔고, 이 영화의 쓰리킹즈는 황금을 탈취한다.
#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블랙 코미디답게 여러 가지 현실 비판을 담았다.
그래도 미국영화라 한계가 있다. 영웅은 언제나 미국인이지... 알아서 들 보시길.
# 재치 있는 편집이 가끔 돋보인다. 총 맞는 상상을 몽타주 기법으로 갑자기 끼워 넣는 등 통통 튀는
편집이 즐겁다.
# 뻔뻔 평점 **** 별 네 개. 클루니 덕에 4개임.
할리우드가 전쟁을 진지하게 소비하던 1990년대 말, 데이비드 O. 러셀의 '쓰리킹즈(Three Kings, 1999)'는 미국의 중동 전쟁을 조롱하며 등장했다.
1991년 걸프전 직후의 혼란 속 이라크를 배경으로, 이 영화는 전쟁을 고발하는 대신 싸구려 난장판으로 격하시킨다. 최근 미국의 이란 공습과 중동 정세를 목도하는 오늘, '쓰리 킹즈'는 25년 전의 작품이면서도 여전히 불편하게 현실적이다.
영화의 제목 ‘Three Kings’는 기독교 전통에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사막을 건넜던 동방박사 세 명(Three Wise Men, Three Kings)"을 비틀어 차용한 것이다. 전설 속 동방박사들은 황금과 유향, 몰약을 가져왔지만 영화 속 세 명의 미군은 사막을 건너 황금을 찾는다. 이들의 여정은 신을 향한 경배가 아니라 미국식 탐욕의 전리품 사냥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탐욕의 여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결국 마주하는 것은 현지 민중의 고통과 자신들이 속한 제국의 위선, 그리고 한 조각 남아 있던 본인들의 양심이다.
금괴를 좇던 여정은 결국 이라크 난민을 구출하는 구원의 길로 전복된다.
이렇게 영화는 황금을 둘러싼 동방박사의 신화를, 냉소와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영화의 모티프인 금괴는 전리품 이상의 상징이다. 그것은 탐욕이자 미국의 중동 개입을 지탱해 온 석유와 관련된 전략적 이익의 은유다. 병사들이 금괴를 좇는 동안,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국의 오만한 이익 추구의 대리인이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혼돈과 폭력, 그리고 죽음으로 버려지는 현지인들의 운명은, 오늘날까지 반복되는 중동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쓰리 킹즈'가 25년 전부터 경고했던 이 위선의 연장이 아닐까?
가자 지구 민중의 삶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전략적 개입, 군사력으로 평화를 강요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뒤에 남는 폐허와 복수심.
영화 속 사막의 황량함과, 오늘날에도 중동의 폐허 위를 날아다니는 미사일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쓰리 킹즈'는 블랙코미디다. 할리우드식 약탈극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참혹한 전쟁의 비극과 도덕적 혼돈이 교차한다.
금괴를 훔치러 이라크 사막을 누비는 미군들은 어설픈 탐욕에 휘둘리며, 곧 미국이 남긴 폐허와 마주한다. 탄압받는 민중, 버려진 동맹, 무너진 마을… 모두 ‘민주주의’라는 구호 아래 위대한 아메리카가 선사한 것들.
러셀 감독은 이 불편한 진실을 무거운 설교 대신 농담과 아이러니로 포장한다. 이라크의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대화들, 어딘가 어설픈 총격전, 그리고 상황과 동떨어진 음악들. 그 어긋남이야말로 이 영화의 날카로운 미덕이다. 전쟁이 본래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허망한 것인지를 드러내는 듯!
클루니 못지않게 눈에 띄는 배우는 마크 월버그다. 어리숙한 병사 트로이 벨로이스를 연기하는 그는, 처음엔 그저 돈이 필요한 욕심 많은 병사로 등장하지만, 이라크 민중의 고통과 직접 마주하면서 점차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여기에 아이스 큐브가 연기한 치프 엘긴은 신념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인물로, 영화에 독특한 균형을 부여한다. 힙합 뮤지션 출신다운 무심하고도 단단한 존재감이 허무한 황금 사냥 속에서 묘한 울림을 남긴다.
'쓰리 킹즈'에는 순간의 헛웃음을 넘어 오래 남는 대사들이 있다.
클루니의 대사,
“The way it works is, you do the thing you're scared shitless of, and you get the courage after you do it, not before you do it.”
(“세상이란 게 그래. 겁에 질려서 벌벌 떨던 일을 일단 해버리고 나면, 그때서야 용기가 따라오는 거야. 하기 전엔 절대 안 생겨.”)
또 하나, 이라크 장교가 고문당하는 미군에게 던지는 직설적인 질문도 뼈아프다.
“You Americans always say you're here to help us. But when we needed you, where were you?”
(“미국인들은 항상 우리를 돕겠다고 하지.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필요할 땐, 너희는 어디 있었지?”)
이 질문 하나가 영화 전체를 꿰뚫는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란이나 팔레스타인에서, 누군가 여전히 미국을 향해 던지고 있을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 영화는 동방박사의 신화를 현대의 탐욕과 위선으로 뒤집는다.
사막을 건너는 ‘세 명의 왕들’, 황금, 그리고 구원의 여정. 하지만 이 모든 요소는 블랙코미디라는 렌즈를 통해 어수선하게 희화화된다.
‘구원’을 외치며 중동에 개입한 미국은 언제나 욕망의 전리품을 챙기고 폐허를 남긴다.
영화는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뻔뻔한 농담과 씁쓸한 여운으로 우리 앞에 던지고 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