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차이나, 키타이?

< 천룡팔부: 교봉전 > 중국의 셰익스피어 '김용'의 세계

by simpo

이러면 볼까나? TMI

# 소싯적에 무협지 좀 읽어 보았거나 '김용'이라는 중국 소설가의 명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수도 있어.

# 거대한 원작을 압축하느라 스토리 전개가 엉성하지만 액션 장면들은 상당히 좋은 편.

# 견자단이 제작, 감독까지 했다. (음... 감독은 다른 사람이 했으면 어땠을까?)

# 원작자 김용(金庸, 1924~2018)에 대한 평가는 '무협 소설가'라는 틀에 가두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

그는 현대 중국 문학사에서 "동양의 셰익스피어" 혹은 "20세기 문학의 신화"로 불리며,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김학(金學)'이라는 학문적 영역까지 탄생시켰어.(본문 맨 끝에 별첨)

# 중국 북송 초기, 흥기 하는 북방민족 '거란'이 세운 '요'나라가 주요 역사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 '키타이'라는 말, '차이나'와 함께 중국과 중국인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단어. 아직도 중앙아시아, 러시아,

일부 중동 지역에서 널리 쓰인다.

# 키타이는 원래 '거란'을 뜻한다. 원래 '키타이'라는 말이 있었고, 이를 '契丹'이라는 한자로 음차 해서 적었다. '契丹'을 현대 중국어로 발음하면 'Qìdān'. 중세 중국어 발음으로 'Kʰet-tan / Khit-tan'으로 추정된다.

이 한자가 한국어 '거란'으로 변형되었다.

# 홍콩을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을 탈 기회가 있으면 거란족을 떠올리시길. 이 'Cathay'가 바로 '키타이'의 영어식 표기. 캐세이 퍼시픽 항공을 한자로 '國泰' 항공이라고 쓴다.

'캐세이'는 키타이 곧 중국을 뜻하고 '퍼시픽'은 태평양의 '태'를 뜻한다.


# 이름 가지고 뭐 이렇게까지 썰을 푸냐고?

'거란'이라는 북방 민족이 현대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업신 여기는 사라진 열등민족이 아니라,

한 때 중국을 지배했고 중국을 대표했고 지금까지도 중국이라는 문명의 이름으로 남아있다는 엄연한 사실!

# 중국 대륙은 한족 만의 역사였던 적이 없다. 순수한 한족이 중국의 통일 왕조였던 시대는 진, 한, 북송, 명나라 정도다. (수, 당 왕조는 한족화된 선비족이 세운 나라다. 당태종의 뿌리도 북방 유목민족)


# 그래서 등장한 게 '호한합일(胡漢合一)'이라는 역사 사상이다. 한족만의 역사로는 중국 대륙의 정치문화사를 서술할 수 없으니, 북방민족의 역사를 정통 '중국역사'로 통째로 편입시키려는 음모 아닌 음모인 셈이다. 동북공정, 서남공정 등 현재 중국 영토 내의 역사를 중국사로 통합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동북공정'에 의하면 발해사는 중국 역사다. 그렇다고 너무 중국인들 욕하며 열받을 필요는 없다.

국제 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우리 역사를 만주와 중국 북방으로 확장하면 된다. 사료도 많고, 유물도 많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뿌리를 내린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남아 민족의 역사적 광역을 우리 스스로 축소시키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화를 참지 말아야 한다. 분노하자! 아자 아자!!


# 원래 '교봉'이라는 이름은 소설에서 거란족에 귀의한 교봉이 성을 '소'씨로 바꾸어 '소봉'으로 바뀐다.

'소배압'이라고 들어보셨는지? 고려시대 우리나라를 침공한 거란의 장수 이름이다. '소'씨는 거란족의 황후를 배출하던 귀족의 성씨다. '야율'씨는 거란의 황제 성씨. 고구려에도 황후를 배출하던 귀족 성씨가 따로 있었다.

# 원작 소설은 이러한 호한합일의 사상을 품격 있는 문학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다. 영화는 평작.


뻔뻔 평점

**** 4개. (엽문의 견자단이 더 낫다.)

영화 읽기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서사의 밀도는 낮고, 인물의 내적 갈등은 압축되다 못해 평면화되어 있다. 원작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요약본에 가깝고,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세계관의 깊이가 전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영화 자체보다도, 그 배후에 놓인 김용 무협 세계의 거대한 역사 인식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용은 단순한 무협 작가가 아니다. 그는 무협이라는 장르를 빌려 중국사를 다시 쓴 사상가에 가깝다. 특히 소설 '천룡팔부'는 무협의 외피를 두른 거대한 역사철학 텍스트다. 이 소설에서 무공은 부차적이다. 중심에는 혈통, 민족, 국가, 충성과 배반, 그리고 개인이 역사 앞에서 감당해야 할 비극이 놓여 있다.

주인공 교봉은 그 상징적 결정체다. 그는 한족으로 자랐으나 거란인의 피를 지닌 인물이며,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다. 교봉의 비극은 개인의 운명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체성’이라는 질문이 폭력으로 귀결되는 역사 구조에서 발생한다. 김용은 이 인물을 통해 묻는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혈통인가, 문화인가, 선택인가?

역사적 배경이 되는 요나라는 중국사에서 자주 축소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그러나 요나라는 오랑캐가 만든 그저 그런 북방 유목국가가 아니었다. 거란족은 고도의 행정 체계와 문자, 법률을 갖춘 문명 집단이었고, 송과 대등하게 경쟁한 제국이었다.

중국사는 결코 순수한 한족의 단선적 역사였던 적이 없다. 그것은 끊임없는 호(胡)와 한(漢)의 혼종, 즉 호한합일의 역사였다.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만주로 이어지는 북방 민족들은 중국을 파괴한 외부자가 아니라, 중국을 구성한 내부자였다.

'천룡팔부'는 이 사실을 문학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한 작품이다. 교봉이라는 인물은 “중국인인가, 오랑캐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몸으로 증명한다. 그는 어느 쪽에도 충성할 수 없기에, 오히려 누구보다 윤리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김용은 여기서 무협을 넘어 역사에 대한 태도를 제시한다.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영화는 교봉의 고뇌를 서사적 사건으로만 처리하고, 그의 사상적 깊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김용 원작의 철학에 비해 가볍고 순진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 하나다. 이 작품은 적어도 중국사를 ‘한족 중심 서사’로만 재현하지는 않는다. 거란과 요나라를 야만으로 소비하지 않고, 하나의 문명으로 존중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김용이라는 위대한 작가가 평생 천착했던 호한합일의 역사관에는 일정 부분 부응한다.

무협은 더 이상 대중 장르의 중심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김용이 남긴 질문 ― 우리는 누구인가,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 ― 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김용 무협소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 '취현장': 혈통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극적 시각화

영화 속 취현장 결투는 단순히 1대 다수의 액션 시퀀스가 아니다. 이곳은 교봉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한족의 강호'가 그를 '거란의 개'라며 배척하는 잔인한 현장이다.

- 단의주(斷義酒): 한족 질서와의 단절

결투 직전, 교봉이 옛 동료들과 술잔을 깨며 인연을 끊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족적 가치(유교적 의리)와 그의 본성인 북방의 혈통(거란의 기상)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교봉의 액션을 매우 묵직하고 파괴적으로 연출하는데, 이는 정교한 한족의 무술보다 더 원초적이고 강력한 북방 민족의 야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 고립된 영웅, 그리고 '키타이'의 기상

수백 명의 한족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교봉의 모습은 당시 욱일승천하던 요나라(거란)의 기세를 투영한다.

교봉의 무공인 '항룡십팔장'은 황금빛 용의 형상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국 황실의 전유물이었던 용의 상징을 거란인 교봉이 구사하게 함으로써 '누가 진정한 대륙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구권이 중국을 '키타이'라 불렀던 이유—즉, 거란의 압도적인 무력과 존재감을 교봉의 1대 다수 전투력을 통해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 호한합일의 비극적 완성

교봉은 자신을 죽이려는 한족들을 제압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살생을 주저하거나 슬픈 눈빛을 보인다. 이는 그가 거란의 몸을 가졌으나 한족의 마음을 지닌, 즉 '호한합일'의 모순적 존재임을 드러낸다.

- 역사적 용광로로서의 교봉

취현장에서 피칠갑이 된 교봉의 모습은 결국 중국 역사가 순수한 한족의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외세와 충돌하고 섞이며 단단해진 혼혈의 역사임을 웅변한다. '차이나'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키타이'의 강력한 그림자를 교봉이라는 인물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듯...

## 원작자 김용에 대해서.

- 무협을 '성인들의 동화'에서 '인문학적 고전'으로 격상

김용 이전의 무협은 대중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는 저급한 장르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김용은 여기에 역사, 철학, 종교, 예술을 결합했다. 그는 허구의 무협 세계를 실제 역사적 사건(송-요 전쟁, 몽골의 흥기 등) 사이에 정교하게 끼워 넣었고, <천룡팔부>의 불교적 허무주의, <사조영웅전>의 유교적 충의, <소오강호>의 도가적 자유주의 등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 '호한합일(胡漢合一)'의 역사관을 정립한 사상가

김용은 현대 중국인들에게 "누가 중국인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세련된 답을 내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족 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았다. 교봉(거란족), 곽정(몽골 거주), 위소보(한-만 혼혈적 상징) 등을 통해 "피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적 정체성과 대의"라는 호한합일의 논리를 펼쳤다. 사학자들은 그가 흩어졌던 중화권의 정체성을 '문화적 융합'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냈다고 평가한다

- "중국인이 있는 곳에 김용의 소설이 있다"

김용의 문체는 우아하면서도 간결한 백화문(구어체)의 정수로 꼽힌다. 현대 중국어 학습자들이 그의 소설을 교재로 삼을 정도. 정치적 영향력도 대단했는데, 덩샤오핑, 장쩌민 등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도 그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냉전 시대에 대만과 홍콩, 대륙을 문화적으로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기도 했다.

- 비판적 시선: 장르적 한계와 이데올로기

일부 평론가들은 그가 전통적인 가치관(가부장제, 충효 등)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서사 구조가 지나치게 우연에 기댄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에 대한 최고의 평가는 "그는 무협을 썼지만, 사실은 인간의 마음과 역사의 흐름을 썼다"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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