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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Feb 22. 2024

내 안이 텅 비었어요

[우울증 환자 생존기] 이래도 되는 건가요

뭔가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데 안에 들어있는 것이 없다. 내 안이 텅 비어있는 것 같다. 오로지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만 살아있는 사람같다. 그와 살을 맞대고 있을 때만 사람같다. 혼자 있을 때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그냥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잠을 자면 꿈을 꾸니까 그 동안은 안 심심하다. 깨어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내가 낯설지만은 않다. 오랫동안 회사 다니면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뭔가 다르다. 예전에는 그런 방황이 기분이 나빴는데 지금은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뭔가 뻥 뚫린 느낌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순간. 


사촌동생에게서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우리가 여행갔던 게 20년 전이라면서.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 마흔 중반을 넘어 오십으로 좀 더 가까이 가고 있는 이 시간. 젊었을 때는 참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 기도하며 보는 내 지난 삶은 참 오만했던 것도 같다. 나만 잘난 줄 알고 살았던 것 같다. 반성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모습도 예쁘다.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았던 지난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나도 있을테니. 


아무 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지낸지 3개월. 나는 지금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서있다. 이런 느낌. 낯설다. 조카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삶. 몇 주 전만해도 나는 사업을 하려고 했고, 뭐든 삶에서 새로운 것을 쟁취해보고자 의지를 다졌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 동안, 몇 년을 아프다는 핑계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나는 우울증 환자니까, 나는 공황장애 환자니까, 나는 환자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본다. 남편은 내가 치열하게 살던 순간은 모른다. 사실 남편과 만났을 때는 엄청 호전된 상태에서 만나서 다시 구렁텅이로 빠지는 과정을 함께 했다. 그에게 미안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 모든 고통스런 과정을 함께 해 줬으니까.


이제 어떤 삶을 살지 마음의 원을 세우고 다시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평생 먹을지도 모른다는 약도 의지만 있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남편을 만났을 때처럼 극도로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운동을 다시 안 하고 있는데 생각같아서는 막 격렬한 운동을 하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은 말을 할 때도 생각이 떠 오르고 말을 뱉어! 라고 명령이 들리면 말을 한다. 생각과 행동에 시간차가 많이 난다. 나는 약을 먹고 있으니 환자가 맞다. 하지만 이제는 약을 먹는게 너무 익숙해서 그저 일상일 뿐, 내가 환자라는 생각은 그리 많이 하지 않는다. 어쩌면 환자의 일상에 내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까지 와버린 걸까. 삶의 의지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열정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냥 나이드는 수순인걸까. 궁금한 것이 많다. 그 많은 일들을 나는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같은 사람일까. 매일 죽고 싶어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렇게 자주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으니 좋아진걸까. 남편은 내가 자살하지 못하게 하려고 신앙을 소개해준 것은 아닐까. 죽음이 아니라 매일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끔 하려고 내게 신앙을 소개해준 것일까. 그럼 나는 이제 스스로 죽을 수 없게 된 것일까. 이건 잘 된 일일까, 아닐까. 


이제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치열하게 사는 것만이 삶의 방식은 아닐진데, 그럼에도 치열하게 살고 싶은 건 욕심은 아닐까. 달라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도 지금의 내가 해야하는 일은 아닐까. 회사에 다시 돌아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나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나는 정말 이 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그저 그런 삶이란 나쁜 것일까. 그저 평온하고 무사한 하루하루는 감사한 일 아닌가. 여전히 나의 삶을 증명하고 싶은 이 마음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죽는 그 날까지 지속될까.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가장 기억하게 될까. 


여전히 방황하는 내 마음 속의 질문들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일상이 계속 지나가고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내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저 남편을 사랑하고 사랑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사람과 한 생명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일까. 텅 빈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질문들이 나를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눈이 많이 왔다. 2월의 눈. 너무 예쁜 눈. 

그저 이 순간에 감탄하고 감사하면서 살기에 나는 이렇게도 부족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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