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어제 조카의 대학 입학 소식을 들었다. 최근 내가 간절히 원하던 유일한 것이 조카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묵주기도를 배워서 매일 기도했다. 기도가 통해서인지 조카가 드디어 대학에 입학했다. 뛸 듯이 기뻤다. 뱃속에서부터 15년을 같이 산 조카다. 신랑이 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학부모 같다고 했다. 이제 인생의 큰 관문을 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대학이 다는 아니지만, 심지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 하는 거 해보는 것도 중요하니 대학을 갔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다. 사실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해도 기적이고 감사하다. 살아보니 그렇다. 몸 건강, 마음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보다 감사한 일이 뭐가 있으랴.
사랑이 케이크를 만들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떠한가. 내가 결혼을 결심하면서 다른 무엇보다 사람을 보고 결정한 이 결혼은 나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주었나. 돈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을 읽고, 내 컨디션을 매일 점검하면서 집안일도 잘 해주는 이 남자를 만나서 나는 얼마나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다른 무엇보다 이 사람을 만나서 나의 40대는 달라지지 않았나. 경제적인 이유와 나의 건강상의 문제로 아기 낳는 것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태에서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회사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내게 3개월의 휴식시간을 준 것도 역시 회사 아닌가. 너무 적은 돈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여기서 많은 보람을 느끼지 않았나. 내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을 안전하게 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남편과 회사 덕분에 엄마 아빠가 아팠을 때도 잘 돌볼 수 있지 않았나. 그렇게 건강을 회복하고 두 분이 지금 건재하신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 아닌가.
매일 묵주기도를 하면서 기도 일기를 쓰고 있는데,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돈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평안이었다. 모두의 무탈함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지, 돈을 바라게 되는 건 아니었다. 최근 내 월급에 현타가 와서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내 선택 중 하나였으니 받아들이고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를 하면서 기존의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에 감사하면서도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주가 휴가의 마지막 주다. 상담가고 사랑이 미용 맡기고 마지막 사랑이 간식 만들기 수업을 듣고 나면 휴가가 끝난다. 무엇이든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 겨울에 쉬기를 잘 했다고 생각된다. 봄은 새로운 기운이 생동하는 시기이니 마음을 새롭게 먹기도 좋은 계절이다. 나의 기억력은 너무 잘 지워지기 때문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3개월을 잘 보냈다 생각된다. 여행을 가거나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삶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 것 같다.
3월에는 훌라댄스도 새로 시작하고, 세례 받기 전 혼배성사도 치룰 예정이다. 성지순례도 있고. 햇빛만 나도 감사한 요즘처럼 3월에도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매일 감사한 일 3가지를 적는 걸 하는데, 매일 감사한 일이 생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삶에 감사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욕심보다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상의 평안을 주고 있다. 휴가의 마지막을 보내며 감사한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회사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요즘 회사와 일에 관련된 꿈을 많이 꾸는데 어쩌면 싫었던 사람들과의 마음도 조금 풀어져서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목요일에는 새로운 매장을 여는, 사랑이를 예뻐하는 카페 주인장을 만나러 간다. 미용하고 예뻐진 모습으로 새로 시작하는 사람을 축하하러 간다. 늘 새로운 시작에 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사랑이가 새로운 미용실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존 미용실 선생님이 그만 두셔가지고. 얼마 전 새로 개업했다는 미용실에 사랑이를 맡겼는데, 놀아주면서 미용을 하고 있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사랑이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니. 겨울동안 털이 많이 자라서 털이 뭉텅이로 빠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미용하면 시원해할 것 같다.
날씨가 완전 봄이다. 파카점퍼를 입고 나가면 이제 땀이 난다. 시간이 또 흐르고 나는 나이 먹고 있지만,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이 덕분에 아픈 것도 많이 호전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는 중간 점검을 해본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생기겠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젠 조금 더 도전하는 마음을 가져보겠다, 용기도 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