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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Feb 27. 2024

잘 쉬었습니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참 잘 했습니다!!!

복귀 전 마지막 상담을 다녀왔다. 이제 다음 상담은 회사 복귀 후 상담이 될테다. 컨디션 점수가 47점까지 올랐고, 한달동안 계속 40점 대에 머물렀다. 상담 선생님은 그냥 잘 쉬기로 한 것을 이뤘다며, 목표달성하게 된 연유를 찾아보자고 했다. 


남편과 함께해서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고

하루가 아무리 요상했어도 매일 저녁 컨디션 일기, 칭찬 일기, 감사 일기, 기도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루틴이 있어 수면도 잘 할 수 있었고

외부 자극이 없었고

지루하고 심심해도 사랑이 베이커리도 듣고, 성당을 다니는 루틴이 있었다.


이 외에도 내가 도합 8가지나 말했단다.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것이, 이런 일상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 내 마음이 어디까지 평안할 수 있는지 알았다는 것이, 죽을 때까지 견디는 역치가 아니라 마음의 평안의 역치를 높였다는 것이 이번 휴가의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살려고 명상도 하고 운동도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내 표현대로라면 '뇌에 주름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심심한 가운데 해야할 일들이 있고, 또 매일 저녁을 일기를 쓰면서 마무리하고 잠드는 루틴을 만들어 수면을 잘 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감사기도와 칭찬기도의 효능에 대한 논문도 많다고 했다. 나한테는 엄청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벌써 7월, 8개월 이상을 컨디션 일기를 쓰고, 6개월 이상을 감사일기와 칭찬일기를 쓴 것이 마음의 안정, 생활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큰 효과를 준 것 같다. 낮에 아무리 이상한 일(회사를 다닐 때와 같은 자극은 아니었지만)이 있어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고 나면, 그 날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잘 마무리된 것 같아서 좋았다. 


하루종일 잠을 잔 날도 종종 있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한 날에도 감사하고 칭찬할 일 3가지를 찾아서 썼다. 세수한 것도 칭찬했고, 하루 잘 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3개월 전만해도 컨디션 점수가 10점대와 40점대를 오갔는데 이번달은 꾸준히 40점 대를 유지했다. 죽을 것 같이 끝간 데까지 가야 다음 스테이지 문을 열려는 나를 불러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이제는 그런 감정으로 다음을 선택하지 않고 좀 더 차분하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다음을 준비해가자고 말했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돌아와서는 강아지 케이크 얼굴그리기 연습도 했다. 미루던 일을 하고 나면 시원하다. 미루는 마음이 불편해서 빨리 해치워버리는 성격을 발견하게 된 것도 이번 휴식의 묘미다. 이건 운동을 하면서 배운 거기도 하다. 하기 싫은 걸 미루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부스터를 달고 빨리 해버리면 마음이 편하다. 베이커리의 아기자기함을 담기에는 나의 디테일과 인내심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버렸다. 뭐 강아지 베이커리를 차리지 않더라도 한번 배운 기술을 평생 사랑이한테 쓸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투자인 것 같다는 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상담을 하면서 묵주기도가 나의 평안에 정점을 찍어줬다는 생각이 든다. 신랑이 사람에게 기댈 수 없는 것들을 신에게 기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나에게 신앙을 소개해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조금 알 듯도 하다. 밤마다 묵상하며 기도를 드리는 20여분이 나에게 하루 마무리의 루틴을 잘 마무리지어주었다. 기도를 하고 나서 책을 좀 읽다가 자는 습관이 들어서 수면에 힘든 과정을 잘 넘어선 것 같다. 꿈은 매일 꾸는데 꿈을 꾸고 나면 하나도 못 잔 것 같았었는데, 어느 날, '재미있었으면 됐지' 하고 넘겨보니 꿈을 꾸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다. 


잘 쉬었다. 이렇게 잘 쌓인 에너지를 어디에다가 쓸지는 이제 또 다른 문제다.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좋은 에너지를 통해서 넘어가기를 바란다. 오늘 상담은 그 동안의 내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충분히 쉬고 잘 쉬었다는 걸 알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를 잘 준비해보자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하며 갔는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제 다음을 잘 준비하자. 여기까지 잘 왔으니까, 다음도 잘 할 수 있을 거다. 잘했고, 수고했어.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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