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다행을 지나 좋은 상황으로 가는 중입니다
지난 달에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좋아보이시네요!"라고 했다. "좋아요! 좋아요!"라면 진심으로 좋아해주셨다.
한 달만에 다시 처방을 받으러 갔다.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다시 "좋아요!" 라고 선생님이 응답해주었다.
잘 지내고 있다. 라이프 코칭을 받은 후 계획한 아침 루틴을 계속 지키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늦어도 10시에는 업무를 시작하고 피곤해도 낮잠을 자지 않고 쉬면서 컨디션을 조정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4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 속에 일 생각이 그득하고 마음이 쫓기지만 그래도 평정을 찾으려고 매 순간 노력하며서 지내는 내가 나름 기특하다. 한 동안 계획한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고 새벽 2,3시까지 일을 하고 나니 피로감이 너무 몰려와서 최근 며칠은 늦어도 12시에는 자려고 했다. 낮에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운동한 것만큼 피로해서 잠도 통잠을 자고 아침에도 좀 덜 피로하다.
의사 선생님에게 "좋아보인다!", "좋다"는 말을 거의 처음 들은 것 같다. 그 동안 약간의 진전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은 "다행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칼날의 촉감에서 벗어났을 때나 거뭇한 형상을 더 이상 보지 않았을 때, 약을 조금씩 줄여갈 때마다 선생님은 "다행"이라고 하셨다.
회사를 그만두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좋아보인다"라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에게 "좋아보인다"는 말을 들은 건 그 후로도 4개월이 지난 뒤였다. 4년이 넘게 진료보면서 처음 들은 말이다. 이번 달에도 선생님은 내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좋다고 했다. 아침에 먹는 약을 빼먹으면 활력이 좀 줄어들어서 늦더라도 꼭 챙겨먹으려고 한다고 했더니 잘 하고 있다면서 지난 달과 같은 약을 처방해주었다. 아침 약 1개, 수면제 2개, 총 3개다. 가장 많이 먹을 때보다 거의 1/3이 줄었다.
회사를 그만둔 것에서 시작하여, 조금 쉬다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삶이 바뀌니까 치료의 효과가 성격이 바뀐 듯 하다. 그 전에는 자꾸만 나빠지는 상황을 더이상 진행시키지 않기위해서 최대한 방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는데,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는 상황을 최소한으로 도와주는 지원 행위로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약을 먹는 것도 예전과 달리 부담스럽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먹고 있다.
프리랜서 생활도 사실은 쉽지 않다. 스스로 책임 한계선을 정하고 일정을 관리하기 위해서 시간 관리와 멘탈 관리를 수시로 해야한다. 과거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 점점 마음과 몸과 생활이 피폐해진 기억이 있어서 엄청 조심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마음을 다독이는 일이 가장 큰 것 같다. 마감일이 다가와도 당황하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싶다.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푸는데 가장 좋은 것은 남편과 붙어있는 시간이다. 한 동안 남편 귀가후에도 일하느라고 남편 옆에 앉아서 이야기나누고 기대는 시간이 없었는데, 늦은 시간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남편 옆에서 살을 맞대고 대화를 하고 남편 숨소리를 들으며 잠 드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남편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면 옆에 붙어서 힐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4년이 넘는 투약 끝에 찾은 안정이 흩어지지 않게 나를 잘 다독이며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