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후회하지 않아
아침 30분 글쓰기는 빼먹지 않고 하고 있다. 명상은 종종 빼먹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 타이머를 틀어놓고. 오늘은 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잘 살고 있는건가? 나 잘 살아왔나? 나 잘 살 수 있을까? 그 답을 누구한테 듣고 싶은 걸까? 누구한테 또 인정받고 싶은 걸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떤가?
나 잘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실수도 많았고, 잦은 거짓말도 있었고, 게으르고, 남을 미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들을 어렵게 했고, 어쨌든 결정에 책임을 지면서 살았다. 괴롭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행복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순간들도 많았다.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은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만큼 살아냈다. 장하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겠다. 오늘 마주치는 사람들이 내 인생에 마지막을 기억해줄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다정하게 대하고, 오늘 하는 일이 내 마지막 일인 것처럼 정성을 다 하고, 오늘 한 마디 나누는 것이 내 마지막 말인 것처럼 예쁘게 말해야지. 오늘 내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살아야지. 너무 멀리 내다보고 살지 말아야지. 미래에 주눅들지 말고 그냥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지.
뭔가 더 해볼 걸. 그런 생각은 안 든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해 보고 싶은 일도 몸과 마음을 바쳐 20년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고, 다 했다. 대단히 바라는 것도 없다. 그저 내 가족과 친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고, 그 안에서 나도 평화롭게 살다가 조용히 죽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는 죽음은 자살을 생각하던 죽음과는 다르다. 그저 운명처럼 다가오는 죽음이라면 맞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고 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의 내 마음 같은 거 아닐까. 내가 10분 뒤에 버스타고 나가서 사고로 죽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사는 거. 매 순간 그저 마음을 다해서 살아가는 거. 당장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이 일분, 일초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더 이상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좋다.
이런 마음으로 회의를 갔다가, 잘 마치고 돌아왔다. 기분이 홀가분하다. 모든 사람에게 마지막인 것처럼 다정해야지 마음 먹은 걸 내가 오늘 잘 실천했는지 돌아보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지 돌아볼 기준이 생긴 것 같다.
회의 때 마신 커피 때문에 밤을 새우고, 사랑이 산책을 나갔다가 사랑이가 할머니 집에 가겠다고 해서 엄마를 보고 왔다. 엄마는 여전히 아빠가 차려준 아침과 약을 먹지 않고, 애를 먹이고 있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불편해서 점심 때 온다는 언니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 밤이 되어 이 글을 다시 이어쓰려고 보니 그 새 또, 하루만에 어제의 다짐을 잊어버렸다는 걸 알았다. 엄마한테 좀 더 다정하게 하고 올 걸.
매일이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써 붙여 놔야겠다. 잊지 않도록. 30분 글쓰기 다이어리에 붙여놓고, 매일 되새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