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조이고, 숨이 안 쉬어진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다시 찾아온 공황

by 마담 J

며칠 동안 필요시 약을 먹었다. 진정이 안 될 때는 두번 먹었다. 약은 보통 복용 후 3-40분이 지나면 효과를 보인다. 약을 먹고 누워있다가 잠이 들고, 깨어나서 좀 괜찮은 것 같다가 다시 증상이 시작된다. 그럼 다시 복용을 하고 누웠다.


연말에 엄마, 아빠 밥 해주면서 체력과 에너지를 다 쓰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보름 정도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나타난 건, 직장오퍼였다. 객관적으로 무척 좋은 기회다. 마흔 후반, 정년이 보장되는 새로운 직장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팀의 팀장이 되어서 새로운 판을 짤 수 있고, 분야 특성상 좋은 사람들이 많은 곳. 내가 좋아하는 기획을 할 수 있는 곳. 50이 넘으면 조직에 들어갈 기회가 많지 않은데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기회.


하지만, 오퍼를 받은 순간부터 공황이 오기 시작했고, 설마 설마 하면서 이력서와 증명서를 준비하고 제출까지 하고,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일까지 받은 상황에서 완전히 드러누웠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기회라면서 한번 해보라고 했고, 나도 동의했지만 나의 몸은 동의하지 못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매일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조여왔다. 당장 50이 되는 3년 후에는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참고 도전을 이어갔는데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박살났다. 자면서는 온 몸이 아파서 끙끙 앓고, 온 몸이 땀에 젖어서 속옷은 물론 겉옷까지 갈아입어야 했다. 땀이 너무 나서 추워서 일어날 정도가 되었다.


공황으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팠다. 이런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3년 후가 아니라 지금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어제는 약을 먹고 누웠는데 눈물이 줄줄 났다. 엉엉 울었다. 나는 왜 이런가 싶으면서, 삶이 다시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어디든 칼로 그어서 피를 나게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잠이 들길 바라면서 누워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저 양말만 세탁기에 넣어주면 그것으로 내 할일을 다 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경제적인 활동이 아니어도, 운동이나 집안 일이어도 좋으니 일상을 계속 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가 좀 더 아껴쓰고 살면 살 수 있다고,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요즘 읽는 책에 '악마의 유혹'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라며 그걸 떨쳐버리라고 했다.


공황은 종종 찾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다.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거부하는 것일까. 왜 나는 일반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꾸리면서 잘 살고 싶을 뿐인데, 그 평범한 것이 왜 나는 안 되는 것일까. 생각의 꼬리가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나를 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이 공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야말로 씻고, 먹는 것은 커녕 숨 쉬는 것 조차도 불가능하다. 내가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된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어쩌다 삶이 이렇게 흘러왔는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릴 때 부터 학교 가는 걸 싫어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가 아침 등교 인사였다고 했다. 초등 1학년 때부터 그랬단다. 내가 기억하기에도 고3때까지 아침마다 엄마, 아빠와 뽀뽀를 하고 등교하면서도 인사는 "학교가기 싫어" 였다. 결국 대학생활에서도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회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나는 모범생이었고, 꽤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취직도 했고, 회사도 열심히 다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는 학교처럼 부조리함의 온상이었고, 거기서 그런 일들을 겪어내며 일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일은 또 잘 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서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지만 여전히 회사 생활은 힘들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들과 8시간 이상을 함께 보내는 것 자체가 나는 힘들었고, 매일 같은 에너지를 쓰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부조리함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싸우거나 참거나 설득해가며 일을 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모두 상처가 되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20년 넘게 했다. 학교의 집단 생활에 버거웠던 것까지 치면 40년 가까이 그걸 견뎌온 거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집단 생활을 해낼 힘이 없는 거다. 온 몸으로 거부하는 거다.


사회가 제시하는 일반적인 삶의 틀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냥 나는 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내가 살 수가 없다. 미래는 지금 살지 못하면 오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전에 지금의 내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옷이 흠뻑 젖은 채 일어났다. 어제 밤에 이번 면접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말 너무 아픈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포기해야 한다는 절박함만 남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몇몇에게 포기 의사를 알렸다. 다들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나의 선택을 응원해줬다. 무엇보다도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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