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관리능력과 조절능력 키우기
이어서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1형 조울증(양극성장애)는 극도의 에너지 항진 상태다.
2형 조울증(양극성장애)는 보통 경조증, 즉 약간의 에너지 항진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것이 조증이라고 판단하기 매우 어렵다. 실제로 나도 첫 양극성장애 진단 전에 2개월 정도를 더 지켜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우울증에서 상태가 좋아지는 것과 경조증을 분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도, 의사도 쉽사리 판단하지 못한다.
에너지 항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증의 이미지처럼 매우 기분좋은 상태가 극에 달하는 경우도 있고, 과민해지거나 화를 내면서 사람들과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과민해지고, 화를 내고, 싸우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껴서다. 특히, 1형의 경우 주변에서 사람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환자의 열정적이고 이상적인 환상(큰 사업을 하겠다, 나라를 바꾸겠다 처럼)에 위험요소가 있으니 말리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주 일어난다. 자신이 억압받고, 저항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과민해지고, 화를 내는 것이다. 2형도 비슷하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다. 내 말을 상대방이 제대로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다.
유형과 상관없이, 조울증의 조증 삽화에서는 대표적으로 충동조절이 되지 않고, 무엇이든 갑자기 의욕이 과하게 높아지며, 잠을 거의 자지 않아도 피곤함을 못 느낀다. 나는 한 때, 밤을 새면서 갑자기 암벽타기처럼 익스트림 스포츠를 당장이라도 하고 싶었다. 마루에서 운동선생님한테 배운 운동들을 서재, 부엌과 번갈아 장소를 바꿔가며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에너지가 뚫고 나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반찬을 만들어 아침 꼭두새벽부터 사랑이와 걸어서 엄마집에 갔다. 거기서 자는 언니를 깨워서 2시간 동안 산책을 하고, 집에 와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최근에도 잠을 거의 자지 않았는데,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져도 피곤하지 않았다.
조증 삽화에서는 사람이 엄청 활동적이 되는데, 식욕과 성욕처럼 기본 욕구들이 엄청 갈급해지면서 조절력을 상실한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어떤 여성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게 갑자기 술집 호스트를 스토킹하고, 왜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냐며 울부짖다가 결국 병동으로 들어오는데, 이 사람이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양극성 장애였던 것 같다. 좀 많이 극단적이기는 했고, 상당히 스테레오 타입을 따르긴 했지만.
나는 식욕을 조절하지 못했다. 워낙에도 살이 올랐다가 내리는 폭이 커서 실제로 55~77까지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조증 삽화에서는 (복기해보니) 과자를 미친듯이 먹었다. 편의점에서 한 두개씩 사는 걸로는 모자라서 노브랜드 과자를 종류별로 사서 하루종일, 며칠을 먹었더니 4~5키로가 쪘다. 울증에 빠지면서 몸무게는 빠졌고, 심지어 더 빠졌다.
조증 삽화는 몇 개월간 지속되기도 하고, 1~2주 정도 지속되기도 하며, 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조증과 평상시, 조증과 울증을 오가기도 한다. 나는 첫 조울증 시기에는 가장 마지막 유형에 속했는데, 진짜 널을 뛰었다. 그래서 내 상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췌 알 수가 없었다. 두번 째 조울에서는 1~2주 정도 지속되었던 것 같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잘 먹고, 신나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짜증도 내고 했던 것이다.
자기 조절능력의 실패는, 자기 관리능력의 실패이며, 이는 어떤 일 또는 상태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첫 조울증 시기에는 갑자기 강아지 간식 사업을 하겠다면서, 400만원이나 내고 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학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막상 수업가는 날이면 가기 싫어서 죽을 것 같지만 억지로 다녔고, 가서는 또 재미있게 만들었는데, 그러고 나면 갑자기 상가를 알아봐야겠다고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학원이 끝나고는 완전히 흥미를 잃어서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제빵 도구들을 잔뜩 샀는데, 다 당근했다. 상담 선생님은 4,000만원, 4억으로 사고를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했다.
조증이 왔을 때, 물어보는 것 중 하나는 '쇼핑을 많이 하냐?'는 것이다. 많이 한다. 솔직히 나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사람이라서 구분이 힘들기는 한데, 첫번째 조울에서는 택배상자가 대문을 다 가릴 정도로 쌓이거나 100만원 짜리 반코트를 갑자기 사고, 그 색에 맞춰 구두와 옷을 산다거나 했다. 사실 여자 옷 외투 100만원은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결혼하고 그렇게 비싼 옷을 산 적이 없던 나한테는 꽤 큰 돈이었다. 암튼 이 때 매일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생필품부터 식재료, 의류, 소품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두번째 조울에서는 매일 홈쇼핑을 시키고, 매일 반품했다. 상담 선생님은 그나마 반품으로 수습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많은 조증 환자들이 자신이 매우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으며, 자기는 그걸 살 충분한 능력 또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봐서 전혀 필요하지 않고, 자기 능력 밖의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와 다른 소비패턴을 보이는 거다. 역시 조절력의 실패다.
사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가와 리더 중에 약간으 조증을 가진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 같은 경우에도 우주사업이니, 로봇사업 등을 하는 바탕에는 그런 기질? 같은 것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그들의 다른 점은 그 조증에 기반한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하며, 관리와 수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어쨌든 조울병의 깊은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스스로를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조절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얘기했다.
1편에서 말했듯이 약을 먹고 많이 편안해졌다. 항우울제가 아니라 조울증 약을 먹고 이전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질곡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 일요일에는 트리거가 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난 후, 운전하면서 쌍욕을 서슴치 않았다. 불과 얼마전에 앞지르기 하는 차를 보고 뭐라하려고 하니 이미 그는 신호등을 건너가버려 아무말도 않고 잊어버릴 정도로 즉각반응이 없었는데, 일요일에는 조그만 자극에도 미친듯이 화를 내며 쌍욕을 했다. 평소에도 욕을 거의 하지 않는 나는 또 한번 놀랐다.
새로운 공부를 할까, 사업을 할까, 막연하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생각하는 중에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증 삽화에 의한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상담 선생님이 저 그림을 주면서 남편과 공유하라고 했다.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관리능력과 조정능력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봐주는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지금 쓰고 있는 컨디션 일기를 좀 더 객관적으로 써봐야겠다고 했다.
명상, 30분 글쓰기(손으로), 기도와 묵상은 뇌의 같은 영역을 활성화 시키면서 신경계를 안정시키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는 것을 권장했다. 명상이 신경계 안정을 어떻게 가져오는지에 대한 설명은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 혹은 내면소통 명상수업에 잘 나와있는데, 후자가 더 쉽고 실용적이다. 30분 글쓰기만 하면 나는 절반 시점이 되었을 때 쯤 졸린데, 상담 선생님은 아마 글쓰면서 이완이 일어나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사실 조울에서 조증은 본인이 에너지를 엄청 쏟아내기는 하지만 총체적으로 힘들다고 느끼지 못하는데, 그 다음에 찾아오는 깊은 우울증이 상당히 고통스럽다. 쓸 에너지가 없고, 죽고싶고, 괴롭다. 숨도 안 쉬어지고. 그러니까 내가 우울증이 깊고 오래되었다면, 그런데 어느날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걸 즐기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조울로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2형 조울증은 자신을 꾸준히 기록하지 않으면, 의사도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입추가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햇빛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한 여름의 햇빛하고는 또 다르다. 11월까지 더울 거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을이 왔다. 올 한해도 이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