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우울증 환자 생존기]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난다

by 강마

약 한달 전부터 늦어도 1시 반에는 잠들고 아침 5~7시 사이에는 일어난다. 아침이 있는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꾼 수면제가 잘 들어서인지, 혹은 조울증 약의 나른함을 견디고 밤을 맞이해서인지, 조울증 약이 잘 맞아서 신경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때문인지, 낮에 어쨌든 성실하게 일과들을 수행하기 때문인지, 가끔 하는 명상 때문인지, 가끔 하는 기도 때문인지, 가끔 하는 달리기 때문인지, 혹은 몸보신으로 가끔 먹은 흑염소탕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침이 있는 인간이 되고 나서부터는 많은 것들이 안정되었다. 올 초만 해도 하루 10시간은 자야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1시에 자도 5-6시에 일어나고, 그래도 큰 문제는 없고 오히려 편안하다. 요즘은 아무리 늦게 자도 1시 반에는 잠들고 있다.


출근이 없는 삶을 사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아침이 있는 삶은 그 만족도를 200% 올려주었다. 남편이 출근할 때 가끔 마실 차를 챙겨주고, 아침 인사를 하고, 바람이 선선하고 대지가 열에 오르기 전에 사랑이를 산책 시키고, 사랑이 씻긴 후 마르는 동안 나가서 3~4키로 정도를 뛰고, 계단으로 올라와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열을 충분히 식히고 샤워를 하고, 일정들을 해 나가는 시간들이 삶의 만족도를 엄청나게 올려주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다 좋은데 이렇게 돈을 못 버는 건 곤란하지 않아?'


물론 곤란하다. 하지만 날마다 죽고 싶어서 손목과 목을 긋는 칼날의 촉감과 싸우고, 베란다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과 싸우는 것보다는 쇼핑을 줄이고, 먹고 입는 것에 관심을 끊는 것이 더 쉽다. 다행히도 이런 나를 응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고, 우선은 살아가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 감사하고, 주어지는 일에 감사하며 기쁘게 임하기로 한다.


6,7월은 쉬었고, 8월부터 일이 시작되어 다시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구 업무가 좀 있고, 인력 양성 과정 일이 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집필. 객관적으로는 큰 돈이 아니지만, 내게는 소중하고 큰 돈이다. 연구는 좀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어떤 연구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어쨌든 나의 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너무 중요한데 같이 지금처럼 마음 편하게 일하는 것도 너무 좋다.


어제도 11시가 좀 안 되서 잤고, 오늘은 4시가 조금 넘어서 깼다. 꿈을 여전히 꾸긴 하는데, 예전처럼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고, 깨자 마자 잊어버린다. 김영하가 '단 한번의 삶'에서 꿈은 모든 작가에게, 예술가에게 소중하다고 했고, 너무 생생한 꿈을 해석하는 심리상담 과정을 통해 내 꿈의 소중함도 알았지만, 이렇게 잊는 것도 상당히 좋은 경험이다. 나의 꿈인지 꿈 속 또 다른 나의 꿈인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지금의 내가 꿈이라 해도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잘 살겠다.


이렇게 졸려서 밤에 잠들고, 푹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너무 새롭고 소중하다. 마치 처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고 느낀 편안함이 신기하고 낮설었던 것처럼 희망에 차 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그저 감사함에 푹 빠지기로 한다.


조울, 우울, 공황 모든 것이 알러지 같은 것이다. 언제든 발현될 수 있고, 발현되는 순간 상당히 귀찮고, 고통스럽지만 발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대다수가 불면증과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는 걸 알기에 지금의 내가 '남들처럼' 인지 의심스럽지만, 통상적으로 '남들처럼'이라고 생각해본다. 항상 남들과 다르고 싶었지만, '남들처럼'에 기대어 사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겠다.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있다. 오늘은 달리기를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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