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거리는 순간들

[조울증 환자 생존기] 그러나 슬픈 사람이 되지는 말자

by 마담 J

9일 기도, 총 54일간의 묵주기가 끝났다. 청원기도 27일, 감사기도 27일로 구성된 기도를 남편과 함께 마쳤다. 한번이라도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서 정말 빠지지 않고 했다. 청원을 명확히 들어주신 것도 있고, 이미 들어주셨다고 굳게 믿는 것도 있다. 어쨌든 모두 들어주셨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마주하는 작은 파도를 기도로 넘어서 가을을 지나 겨울에 왔다.


자주 소화가 안 되고, 가끔 토하기도 하고, 가끔 울렁거리고, 머리가 터질듯이 아팠다가, 가슴이 답답했다가, 목이랑 어깨랑 날개죽지가 아팠다가, 다리도 아프고. 스트레스 받아서일거라 생각하며 넘어가지만, 심장이 안 좋았던 아빠 생각이 나는 증상들이 몇 개 있어서 걱정도 조금 된다. 그래도 뭐.. 괜찮겠지. 가슴이 답답한 건 얕은 공황증상이 아닐까 싶어서 좀 참으며 넘겨보는 중이다. 소화야 원래 소화제를 달고 살았었으니까. 이러다 말겠지.


그보다는 뜻없이 울컥거리는 순간들이 더 신경을 길게 긁고 지나간다. 몸이 안 좋아서 마음이 가라앉나? 싶어서 나름 카페인 끊은지도 벌써 한달도 넘었는데. 적어도 두달은 된 것 같은데, 최근 잠을 2~4시 정도에 자서 그런건지, 아니면 목이 말라서 마신 남편이 먹다 남긴 맥주 한잔의 여파인지, 이런 저런 개인사 때문인지, 돈벌이 걱정 때문인지, 아니 그냥.. '괜찮다, 잘 지낸다' 생각하고 있지만, 또 뭔가 과부하를 걸고 있는 것이 있는건지. 날씨가 안 좋은 날은 기분이 더 안 좋고, 그나마 햇빛이 나면 비교적 괜찮다.


울컥거리는 순간들은 묵주기도 묵상을 하다가 찾아오기도 하고, 그냥 혼자 멍때리고 있을 때 찾아오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들이 막 흘러가는 가운데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아직도 사람들에게 서운할 것이 남았다는 사실에 울컥하기도 하고, 무심코 들여다본 릴스 문구에 울컥하기도 하고. 마치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오가며 덜컥거리는 자동차에 탄 승객같이 멀미가 밀려오듯 울컥함이 온다.


판공성사 기간이다. 지난 번에 죽겠다고 난리친 건, 이미 고해성사를 봤는데.. 그러고는 죽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혹시 내게 죽음이 온다면 의연하게, 수선떨지 말고 받아들여야지.. 정도는 생각했는데.. 선물받은 바티칸 묵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써준 작은 엽서가 들어있는데,


"슬퍼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좌절하지 않도록 언제나 그분께 의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좋은 친구이시고,

인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라고 적혀있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드시면서.


뜻없이 울컥거리다가도 이 엽서를 보면, 브레이크가 걸린다. 뭔지 모르면서 그냥 마냥 슬프고 공허함에 빠지지 말아야지, 슬퍼하지 말자.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행동하고 살아가라던 이야기에 기대어 또 한번 늪에 빠지려는 발을 조심스레 빼본다.


우울증이 호전되면서 그래도 인지와 사고 능력이 꽤 좋아졌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가끔은 알츠하이머를 두려워할 정도로 떨어졌던 거라 충분하지 않고, 집중력도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거라서 예전의 40~60%정도 밖에 못 쓰는 것 같고, 체력이라는 밧데리는 8년된 내 핸드폰처럼 수시로, 가끔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지만, 그래도 어쨌든 예전보다는 충전 시간이 좀 단축된 것 같고,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지치고 힘들어서 만사 눈, 코, 입, 귀 다 막고 싶지만 그래도 고맙고 감사한 사람들이 있고. 뭐.. 그렇다..


그래도 컨디션 점수는 20점대를 유지하고는 있다.

조금이라도 술은 마시지 말고, 카페인도 계속 금지, 뭐라도 몸을 좀 움직여서 체력이 아니라 유연성이라도 기르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일 듯 하다. 뭘 할 힘이 없을 때는 뭘 안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그리고 뭐든 영상은 좀 그만 보고 책을 읽어야겠다. 12년 동안 핸드폰 없이 산 사람의 시간 감각이 다르단다. 쪼개진 시간 감각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된 시간감각. 그런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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