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조울증 환자 생존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넘기는 법

by 마담 J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바람없는 바다처럼 고요하게 지냈다. 컨디션 점수는 남편과 내 점수 모두 20점대를 회복했고, 엄청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엄청 나빠지지도 않는 상태에서 평범한 하루들이 지나갔다. 일은 하나둘 마무리되고 큰 산 하나만 남았고, 역시나 할 일이 있으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갖가지 소설과 인문학 서적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 병원 다니는 일로 바빴는데 그 중에서 아빠 치료에 대한 두 병원의 의견이 다르고, 하필 두 병원을 일정 때문에 나와 오빠가 따로 모시고 가면서 내가 모시고 간 병원의 치료를 중단하고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눈물도 나고, 화도 나고, 복장도 터지고, 억울하기도 하고, 아빠도 걱정되고, 그래도 우애는 지켜야겠고. 하다보니 뒷목이 뻣뻣하고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팠다. 속도 계속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며칠동안 계속 마음과 몸이 힘들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을 일인가?"

"그럼. 아버님 일이니까 당연하지. 다만,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관건이겠지"

"그런가.."


남편은 나의 입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잘 이해해주었고,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정리할지 제안해주었다. 이성적으로 남편이 하는 말이 다 맞았다. 오빠도 아빠를 생각해서 한 결정이라는 점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다만 그 의사결정 과정이 좀 미흡했던 건 맞다. 무엇보다 아빠가 "복잡하게 하지 마라" 라는 한 마디를 했고, '그래, 어쨌든 아빠 마음 편하게 하는게 최고니까, 내가 마음을 접자'고 다짐했다. 더 이상 나도 어떤 토를 달지 않았다.


한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사건이 일어나고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가, 마음을 풀고, 사태를 수습하기까지. 남편과 같이 54일 묵주기도 첫 세션을 시작한지 한달 즈음 되가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같이 기도하면서 마음을 풀자"는 남편 말에 기대서 따라갔다. 이 묵주기도는 중간에 하루를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해야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하기에 어떻게든 마음과 몸을 버텨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를 했고, 컨디션을 조절하고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몸을 좀 게으르게 두었다. 회의와 일정을 소화하기에 너무 벅찼고, 그래서 꼭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중간에 정신과 정기진료를 다녀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의사 선생님이 "저번에도 말했지만, 배우자 복이 있으세요. 지난 5년간 배우자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짜 든든한 배우자를 만나신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큰 복이에요. 배우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병은 치료에 한계가 분명하거든요. 그런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런데 배우자가 매일 같이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주고, 컨디션 관찰 일기를 매일 써준다는 건 정말 고마운 겁니다. 꼭 고맙다고 표현하세요" 라고 했다. 그랬다. 나는 배우자 복이 있다. 나의 회복탄력성을 이렇게까지 올려놓은 건 9할이 남편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상담을 권한 것도 남편이고, 치료를 중단하고 최악으로 치닫던 나를 정신차리게 해서 상담사와 의사 앞에 다시 데려다 놓은 것도 남편이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걸 지지하고 이 모든 상황을 버텨주는 것도 남편이다. 치료 과정에서 신앙을 소개한 것도 남편이고, 같이 날마다 기도를 해주는 것도 남편이다.


아마 혼자였으면 이번에도 이렇게 빨리 헤어나지 못했을거다. 스트레스 상황과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시간을 견뎌내는 법을 훈련할 수 있도록 옆에서 러닝 메이트가 되어준 남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거다.


어릴 때 나는 무척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현상을 보는 시각은 비판적이었지만, 미래와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뜻모를 자신감과 긍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꽤 오래 나는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늘 뭔지 모르면 부딪혀서 해보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마음이 동하면 어떻게든 그걸 해보는 사람이었다. 나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고 믿었고, 그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우울증이 온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망감.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는 1도 없고, 자존감이라는 건 부서지는 햇빛처럼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었으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나날들을 꽤 오래 보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인내의 아이콘'일 수 있었던 건 그래도 힘든 가운데, 내가 이 시간을 지나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그랬고, 그래서 힘든 시간 이후에는 타고난 긍정성과 자신감이 붙어서 신나게 살았고, 부당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서 이동하는 나의 행동에 자신이 있었는데, 해가 거듭되고 나이가 들수록 '버텨야한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살면서 한번은 버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전과는 다른 대응방식으로 부당함과 어려움을 이겨내보려고 했는데, 그것이 깊은 우울과 조울로 발전할 때까지 버티는 지경이 되었다. 칼빵을 맞아도 끄떡없던 내 정신력은 이제 바람만 불어도 유리가루가 온 몸에 박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수준으로 나약해졌다. 그건 마치 표피가 벗겨진 채로 해안가에서 모래와 소금기를 다 받아내는 기분이었다. 회복을 하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고통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모든 것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날마다 죽고 싶었고, 죽으려고 했고, 환각통으로 매일 죽었다. '회복'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돌아갈 나의 원자리가 어디인지, 그런 것이 있기나 했던지, 나는 원래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시간이 10년이었다. 물론 그 10년 동안 한결같지는 않았다. 극적 고통 이후, 극적 회복이 있었고,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썩어갔고, 어느 순간 이후로는 썩은 부위가 내 삶 전체를 먹어버렸고, 진짜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순간들이 계속 되었다. 그 10년을 곁에서 지켜주고 함께해준 상담사와 남편이 있었다. 나를 해안가에서 데리고 나와 새살이 돋게 하려고 애써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타고난 긍정성을 어디까지 회복할지는 모르겠다. 조증을 몇 번 겪고 난 이후로는 이것이 나의 타고난 긍정성인지, 조증 이벤트인지 헷갈리고 의심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도 지난 상담에서 상담사가 말한 것처럼, 적어도 우울하고 힘들어졌을 때, 그것이 지나갈 것이라고, 거기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된 것 같다.


쉽지 않다.. 요즘은 자꾸 울컥울컥하는데, 갱년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몇 년을 울지도 못하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살았던 시기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찬 바람이 분다. 그래도 햇빛이 나서 좋다. 새살이 아주 조금 돋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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